최근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들고 나오는 서비스들이 있다. 바로 ‘옛날 방송 다시보기’다. 멀게는 1980년대, 가깝게는 2000년대나 2010년대 초에 방송된 프로그램들을 부분별로 쪼개거나 5분-10분 내외의 영상으로 나눠 서비스 한다. 과거 제작한 방송 프로그램에 새롭게 홍보 이미지와 문구를 붙여 업로드하는 것이 전부이지만, 근래 ‘옛날 방송’ 서비스에 대한 인기는 급속도로 뜨거워지고 있다.

가장 대대적으로 이러한 흐름에 대처하는 방송사는 KBS다. 과거 예능 전문 채널 ‘깔깔TV’, 코미디 전문 채널 ‘크큭TV’, ‘가요톱10’을 비롯하여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음악 프로그램 전문 채널 ‘Again 가요톱10’, ‘역사스페셜’, ‘한국사전’ 등 과거 방송된 역사 교양 프로그램을 서비스하는 ‘역사 한 방’, 과거 뉴스를 재편집하여 서비스하는 ‘뉴본사’(KBS 뉴스9로 본 오늘의 역사), 그리고 시청자가 기증한 과거 영상을 비롯하여 다방면으로 과거 프로그램을 선별 제공하는 ‘KBS Archive : 옛날티비’ 까지 무려 6개의 옛날 방송 전문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MBC는 ‘MBC Classic’을 제외하면 별도의 옛날 방송 전문 채널은 없지만, 각각의 장르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분순삭’ 등의 명칭으로 과거 인기를 끈 예능이나 시트콤, 드라마 프로그램을 5분-10분 내외로 편집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SBS는 ‘스트로 : SBS 복고채널’과 ‘SBS Catch’를 통해서 과거 인기 프로그램의 재편집 영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 채널은 SBS의 ‘SBS KPOP CLASSIC’ 유튜브 채널이다. 본래 2007년 ‘SBS MUSIC’으로 시작한 이 채널은 본래는 과거 방송되었던 ‘인기가요’나 ‘TV가요 20’ 같은 음악 프로그램을 올리는 역할을 넘지 못했다. 별도로 홍보용 썸네일을 제작하거나 적극적으로 홍보에 임하지도 않았었다. 그나마도 2010년대 초중반에는 지상파 방송 3사가 광고 수익 분배 등을 이유로 유튜브 영상은 일부 홍보용 영상을 제외하면 철저히 해외 위주로 서비스하여 더더욱 한국 내 사용자가 접근하기엔 문턱이 컸다.

그렇게 창고처럼 방치되던 채널에 SBS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초 전면 개편하여 기존 ‘SBS MUSIC’ 채널에서 서비스하던 기존 음악 영상은 ‘뉴트로 : SBS 복고채널’에 모두 이전한 뒤, ‘SBS KPOP CLASSIC’ 채널이라는 명칭으로 재탄생하였다. 해당 채널은 철저하게 매주 특정 시기 영상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방송하는 것을 컨셉으로 삼았다. 무척이나 단순한 서비스이지만, 서비스에 대한 반향은 압도적이었다. 어린 시절 해당 영상을 보고 자란 지금의 30-40대들이 뜨겁게 열광하며 ‘온라인 탑골공원’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다양한 매체들 역시 해당 유튜브 채널에 대한 인기에 다양한 기사를 내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SBS 'KPOP CLASSIC'에서 '인기가요'를 스트리밍 하는 장면 중 일부.
▲SBS 'KPOP CLASSIC'에서 '인기가요'를 스트리밍 하는 장면 중 일부.

이러한 서비스가 원래 하나도 없었다가 지금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니다. MBC의 경우, 현재는 퇴사하여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최일구 앵커가 2007년 뉴미디어 에디터로 근무하던 시절 ‘20년 뉴스 보기’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부터 방송한 ‘뉴스데스크’ 영상을 인터넷으로 제공한바 있다. 동시에 방송 3사 중에서는 가장 발 빠르게 ‘대학가요제’나 ‘강변가요제’를 비롯한 과거 특집 프로그램을 서비스하거나, ‘제3공화국’이나 ‘아들과 딸’ 같은 과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를 유료 판매 형태로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유튜브 서비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일찌감치 지상파 방송 3사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옛날 인기 방송을 다시 제공하곤 했었다. 어떤 의미로는 유튜브를 통해 제공된 과거 프로그램들이 201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주목을 받고, 그 흐름에 방송사들이 뒤따라 대처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대체 왜 갑자기 ‘옛날 방송’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가장 쉽게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201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했던 ‘레트로 열풍’이다.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나 JTBC의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와 같이 과거 대중문화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 것과 함께 1980-1990년대 대중문화가 서서히 대중들 사이에게 매력과 흥미를 주는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거나 잊힌 대상들, 또는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인기를 얻고 있는 대상들의 과거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 하나의 유행으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은 음료수나 과자가 옛날 포장으로 되돌아가는 이벤트는 이젠 별로 놀랍지 않는 캠페인이 된지 오래다. 1980년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트로트 가수 김연자가 2013년에 발표했지만 철저하게 묻혔던 노래 ‘아모르파티’가 다시 10-20대 사이에서 화제를 얻고, ‘가나다라마바사’나 ‘리베카’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수 양준일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미국 본토의 뉴잭스윙 장르를 시도한 ‘시대를 앞서간 천재’ 가수로 칭송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최근에는 윤수일이나 빛과 소금 같이 1980-1990년대에 도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시도했던 이들의 음악을 한국의 ‘시티 팝’(일본에서 버블 시대 붕괴 이전 현대적인 이미지를 주는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넓은 차원으로 통칭하던 용어)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움직임까지 함께 진행 중이다.

▲'레트로 열풍'의 중심이었던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 가운데 '응답하라 1994'.
▲'레트로 열풍'의 중심이었던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 가운데 '응답하라 1994'.

그러나 이러한 레트로 열풍은 결국 다시 돌려 생각하면 ‘과거에 대한 향수’가 뒷받침되는 움직임이다. 30-40대 이상의 시민들에게 1990년대 이전은 IMF 경제위기가 찾아오기 전의 찬란한 영광이다. 비록 그 영광은 자세히 살펴보면 제대로 뿌리가 박히기도 전에 경제적-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빠르게 사라지거나, 또는 미국이나 일본 같이 해외의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 것들이 다수였다. 하지만 여러 한계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1980-1990년대는 한국 경제가 압도적으로 성장하고, 다시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뽐낸 ‘개척기’와도 같았다. 특히 미디어의 차원에서는 지금보다 접근과 향유의 폭이 훨씬 좁았던 상황에서, 국민적인 인기를 자랑한 프로그램들이 여럿 배출된 시기기도 했다. 장기 경제 불황과 저성장 국면이 찾아오기 전, 압도적인 열광을 낳았던 프로그램을 다시 확인하는 행위는 결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찬란함으로 돌아가고 싶은 회귀적인 심리가 담겨 있다.

한편 이러한 과거를 경험하지 않았던 10-20대에게 레트로 열풍은 30-40대 이상의 시민들과는 다른 맥락에서 전개된다. 30-40대 이상에게 레트로한 표현물은 자신들의 과거이자 추억이지만, 10-20대에게 이러한 표현물은 일종의 ‘파격’이다. 곧 2020년을 맞이하는 지금 이 순간 1980-1990년대 한국 문화의 모습은 무척이나 거친 인상으로 가득하다. 허나 이 거칠고 투박한 모습은 같은 한국이지만 자신들이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미지의 존재’라는 점에서 흥미가 발동한다. 동시에 현재 아이돌 위주의 대중음악을 즐기는 어린 팬들에게는 자신들이 즐기는 음악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이 된 ‘과거’를 탐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과거 제작된 방송 프로그램을 소유한 방송사들은 이 열풍을 완전히 주도하는 존재는 아니지만, 몇 안 되게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과거 프로그램들의 공개 여부와 공개 순서를 결정할 수 있는 문화권력을 지닌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과거에는 그저 시청자를 위한 단순한 서비스에 불과했던 ‘옛날 영상’은 다양한 양상으로 제기된 레트로에 대한 소구를 맞이하여 방송사들이 유튜브 환경에서 새롭게 경쟁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KBS2TV '덕화다방'.
▲KBS2TV '덕화다방'.

그러나 레트로 열풍은 어디까지나 ‘과거’가 뒷받침되는 움직임이다. 방송국들은 자신들이 만든 프로그램이 직간접적으로 레트로 열풍에 영향을 주었던 것에 착안하여 다시 경쟁적으로 레트로를 활용한 TV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 열풍에 오르려 했다. KBS의 ‘덕화TV 2 - 덕화다방’이나 MBC의 ‘다시 쓰는 차트쇼 지금 1위는?’ 등이 이에 착안하여 제작된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과거를 활용한 프로그램’은 ‘과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레트로 열풍이 더욱 거세게 불기 전인 2015년부터 방송한 SBS의 ‘불타는 청춘’과 과거 폐지된 프로그램을 다시 부활한 KBS의 ‘TV는 사랑을 싣고’를 제외하면 레트로 열풍을 재해석하는 형식으로 제작한 신규 프로그램들은 유튜브를 통해 제공한 옛날 영상의 인기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형국이다. 시청자들은 어디까지나 ‘과거’를 원할 뿐, 2019년의 맥락에서 다시 구성한 과거는 젊은 시청자는 물론 중장년 시청자들에게도 외면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지상파 방송국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오로지 유튜브를 통해 제공되는 옛날 방송 정도만이 주목받는 현실은 결국 어떤 의미로는 한국 방송과 문화가 놓인 하나의 난맥상을 상징한다. 방송사들은 과거에 대한 추억을 제공하는 이상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문화를 창조하는 것을 점차 버거워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시청자-향유자들은 최근 제작된 프로그램들에 흥미를 서서히 잃고 과거 프로그램이 낳는 기묘한 복고주의의 감각에서만 흥미를 찾는다. 30-40대 이상의 시청자들 역시 자신들이 과거 즐겼던 프로그램에서 향수를 느끼는 이상으로 새로운 경향성을 만들어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자신들이 과거 어떤 매체도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시절이자 지금보다 좀 더 손쉽게 프로그램 제작에 자본을 투여할 수 있었던 시절에 제작한 옛날 프로그램을 통하여 얼마 남지 않은 문화 권력을 다시 행사하고자 하지만, 이 권력에는 결국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다. 방송국들은 과거를 넘어 지금 현재와 살아 숨 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제작하며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가. 다양한 연령과 취향에 걸쳐있는 시청자들은 얼마나 새로운 틀을 주체적으로 구축하며 움직일 수 있는가. 레트로 열풍에 그저 만족하며 ‘지금 현재’에 제기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레트로 열풍은 그야말로 몰락 전 가까스로 반짝이는 몸부림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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