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독일에서 ‘소설’ 쓴 기자가 받은 벌금
독일에서 ‘소설’ 쓴 기자가 받은 벌금
[이유진의 베를린 노트]

독일 법원이 지난 1월 기사가 아니라 ‘소설’을 쓴 기자에게 벌금 1만2000유로(한화 약 1600만원)를 선고했다. ‘가짜뉴스’를 처벌한 것이지만 적용된 법 조항은 독일 형법 126조 ‘범죄위협에 의한 공공 평온 교란죄’다. 최근 독일에서 알려진 ‘가짜뉴스’ 처벌 사례 및 관련 법안을 보면 독일 사회의 고뇌가 엿보인다. 

만하임 온라인 미디어 ‘라인넥카블로그(Rheinneckarblog.de)’는 지난해 3월25일 ‘[단독] 만하임에서 대규모 테러공격-사망 136명, 부상 237명으로 도심 대혼란, 테러대응팀 투입’이라는 기사를 출고했다. 기사에 따르면 테러리스트 50여 명이 마체테 칼 등을 들고 도심을 공격, 도시를 피바다로 만들었다. 해당 미디어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도 기사를 공유했다. 

이 기사는 100퍼센트 허위 정보, 한마디로 ‘소설’이었다. 만하임 경찰은 기사가 발행된 지 15분 만에 이 정보가 가짜임을 밝혔지만 너무 늦었다. 기사는 SNS를 타고 약 2만 번 공유되었다. 

독일의 언론 자율규제기구인 언론평의회는 해당 기사(소설) 발행은 언론의 신뢰성을 떨어트리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제재인 ‘공개경고’ 결정을 내렸다. 만하임 검찰은 라인넥카블로그 편집장인 하르디 프로트만(Hardy Prothmann)을 사기와 인격권 침해 및 공공의 평화를 해친 혐의로 기소했다. 

프로트만은 실제 테러 발생 시 대응을 위한 기사로 경각심을 주기 위한 저널리즘의 한 형태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만하임 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만하임 법원은 공공 평온 교란죄로 프로트만에게 벌금 1만2000유로를 선고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법원은 문제의 ‘기사’가 진짜라고 믿을만하게 작성된 사실에 주목했다. “공식적으로 136명이 사망했고, 237명이 부상 당했으며 그중 일부는 생명이 위급하다”고 쓴 부분이나 “시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보도나 소셜미디어 사용이 통제되고 있다”고 밝힌 부분이 일례다. 기사가 올라간 카테고리도 ‘뉴스/정보’ 항목이었다. 

이번 ‘가짜뉴스’가 명확한 피해자를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기사를 읽은 만하임 시민들은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떨었다. 만하임에 가족이나 친지가 있는 타 도시 거주자들도 실제로 두려움을 가졌다. 그 결과 실질적인 테러 경고나 협박이 아니라 ‘가짜뉴스’만으로도 범죄위협으로 공공의 평온을 교란시킨 죄가 적용됐다. 

전에도 ‘가짜뉴스’를 퍼뜨렸다가 500유로를 물어낸 사례가 있다.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제게베르크(Segeberg) 지역에서 강력 사건이 발생했는데 SNS상에서 여러 형태의 ‘가짜뉴스’가 확산됐다. 경찰은 바쁜 와중에도 ‘가짜뉴스’를 바로잡기 위해 추가 인력 2명을 투입해야 했다. 이후 경찰은 ‘가짜뉴스’를 퍼뜨린 사람에게 비용을 청구했다. 공무원 2명분의 임금이었다.  

두 사례 모두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자가 특정되지는 않았지만, ‘가짜뉴스’가 초래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다. ‘가짜뉴스’ 생산이나 확산에 대한 명시적인 처벌 조항이 없음에도 어떻게든 ‘책임’을 물리려는 독일 사회의 고민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2016년 10월에는 한 난민이 대학생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매일 난민 이슈와 혐오발언이 오르내리던 시기였다. 이때 극우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 뉴스가 올라왔는데, 녹색당 정치인 레나테 퀴나스트(Renate Künast)가 “트라우마를 가진 난민 청년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그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이었다. 

명백한 ‘가짜뉴스’였지만 페이스북에서 이 글이 사라지기까지 3일이 걸렸다. 이 일로 퀴나스트는 ‘가짜뉴스’ 생산자뿐 아니라 ‘가짜뉴스’를 방치한 페이스북을 더 강하게 비판했다. 변호사 출신인 퀴나스트는 당시 연방의회 법사위원장이었고, 이 일은 독일 정치권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논의가 급속히 시작된 계기가 됐다. 이듬해 6월 ‘소셜 네트워크상의 법집행 개선을 위한 법률(네크워크집행법)’이 연방의회에서 의결됐다. 

이 법은 허위 뉴스 생산자와 같은 개인보다는 ‘가짜뉴스’ 및 위법정보가 확산되는 플랫폼의 책임을 더 강조하고 있다. 개개인을 처벌하게 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크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플랫폼에 책임을 묻는 이 법에 대해서도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비판이 일면서 벌써 개정안 이야기가 나온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가면서도 ‘가짜뉴스’ 확산을 막기 위한 독일의 노력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평화 2019-09-21 16:07:55
과거에는 싱가포르 언론 자유도가 독재국가 급(151위)인데, 왜 잘 사람들은(ex 짐 로저스) 싱가포르에 이주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제 그 고민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독재국가 언론은 통제되고 있지만, 기자는 자기 발언에 책임을 진다. 즉, 최소한 가짜뉴스는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처럼 언론자유가 높은 나라는 기자도 많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아이러니하게 언론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카더라와 선동이 많고, 그에 대한 책임은 없다. 이것이 현재 한국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