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의 1.6배가량인 36개월로 제시한 정부안을 국제인권기구 등 권고를 고려해 다소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19일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관련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6월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올해 말까지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도록 결정했다.

진석용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청회에서 육군병 복무기간인 18개월에 1년을 가산한 30개월을 대체복무 기간으로 제안했다. 진 교수는 “외국 사례를 보면 현역의 약 2배, 짧게는 현역기간과 같은 기간의 대체복무를 하도록 한다. 처음에 2배에서 시작해 나중에 1.5배 혹은 그 이하로 줄여간 나라도 있다”며 “유엔(UN) 인권이사회와 자유권규약위원회 권고안은 대체복무기간을 특별히 명시하지는 않지만 현역 1.5배가 넘으면 ‘징벌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보며 ‘현역보다 더 긴 경우 그 차이를 설명할 합리적 객관적인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가 지난 4월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은 대체복무 기간을 병역의무 최장 복무기간인 36개월로 명시했다. 정부안 관련 진술자로 참여한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은 “대체복무자만을 위한 별도 복무기간을 설정하거나 특정군의 몇 배라는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고 현재 병역의무 이행자들 복무기간 전체를 종합 고려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2020년 기준 현역은 육군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2개월이며 예비역 중 상근예비역은 18개월, 보충역인 사회복무요원은 21개월, 예술·체육요원과 산업기능요원은 34개월이다. 공중보건의사·공익법무관 등 5개 보충역은 36개월을 복무하고 있다.

▲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관련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맨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병역거부자 대체복무 관련 법률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맨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 여부의) 심사를 악용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가려낼 것인가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데 실제로 굉장히 어려울 거 같다. 결국 군복무보다 힘들고 무겁게하는 것으로 심사의 곤란성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1년 정도 가산한 30개월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양심이나 신념에 의해 병역거부를 하지 않는 한 그 안을 선택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제성호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교수의 경우 “병역 주권 및 외국의 입법례, 현역병 복무기간의 2배는 36~44개월이고, 공중보건의 등 다른 대체복무자의 복무기간은 34~36개월이고, 헌재 결정이 지적한 병역기피에의 악용가능성 차단 필요 등을 종합 고려할 때 국방부가 정한 36개월 기간은 대체로 적정하다며 ‘과도하거나 징벌적’이라 단언하기는 곤란하다”고 봤다.

다만 제 교수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입장이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건 아니지만 이를 일부 존중하는 취지에서 영내 복무는 33개월, 영외 복무는 36개월 안도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국회에 발의된 18건의 관련 법률개정안 가운데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들의 발의한 40개월(장제원 의원), 44개월(김학용 의원), 60개월(김진태 의원) 안 등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36개월·교정시설·합숙’ 대체복무 분야·형태 다변화 필요성 제기

복무 내용과 관련해서는 ‘교정시설(교도소 등)’로 제한한 복무 분야와 합숙 등 근무 형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질의가 있었다. “유엔 인권위 등에서 비전투 분야의 대체복무가 가능하다고 명시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이종명 자유한국당 질의에 진 교수는 “유엔인권위나 자유권규약위에 따르면 영내 비전투업무도 대체복무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과거 그리스, 러시아 같은 곳에서 영내 비전투적 업무를 수행하게 한 결과 군내에서 현역들과의 갈등이 아주 심하게 일어난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이 의원이 대체복무 분야로 유해발굴단 업무를 제안하자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은 “유해발굴이 국가보훈처 업무로 조정(이관)되거나 하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법안에도 대통령령에 따라 복무기간 등 조정 여지가 있으니 장기적 발전방향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독고 부원장은 “지뢰제거나 유해발굴 등 군 비전투분야의 경우 모두 군인(군무원)이 직접 수행하는 업무로, 민간인 신분으로 수행이 곤란할 뿐만 아니라 군부대와의 연계없이 수행이 불가하다. 무엇보다 병역거부자들이 군 관련 업무는 본인들의 양심에 저촉된다는 입장이므로 도입되더라도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복무형태를 합숙으로 해야 하느냐에 대해 현역과 비교했을 때 사회복무역도 출퇴근한다. 보충역인 방위병도 출퇴근한다. 굳이 현역과 비교해 합숙만 고집한다는 것도 다소 징벌적이라는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같은 당 홍영표 의원도 “복무 형태에 있어서 영내 복무냐, 합숙 형태냐, 외부에서 출퇴근하느냐가 문제인데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게 대체복무제 도입하는 취지와 맞지 않나 생각한다”며 국방부에 대해 “제도 마련에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고 물었다.

합숙 시설 증·개축 비용 지적…“교정직 부족한 상황, 효과 볼수 있어”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은 “논의를 시작하면서 첫째 국제규범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징벌성을 배제하고, 둘째 병역기피 수단으로의 악용 가능성을 차단하고, 셋째 병역이행 형평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그러다보니 현역병과의 형평성, 복무 강도 형평성 등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현역병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합숙을 하면서 근무한다는 점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선택의 자유를 줄 경우 현역병 가기 싫어서 병역 기피 수단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합숙하지 않는 방안은 배제했다”고 밝혔다.

이종명 한국당 의원의 경우 대체복무자들의 합숙 시설 증·개축 비용을 들어 기존 병영시설을 활용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정부안에 따라 교정시설을 이용할 경우 10개 합숙시설 증축하고, 24개 시설을 개·보수하는 데 약 608억원 정도 든다. 법무부가 3년간 대체복무자를 2100명 정도로 예상하는데 합숙시설 증·개축 예산이 1187억원 든다고 추계돼 있다. 기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정시설에 들어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독고 부원장은 “예를 들어 사회복지서비스 같은 곳을 지원할 경우에는 인원이 더 분산되고 합숙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부족하기 때문에 그나마 교정시설에 있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이 의원 주장대로) 병영시설을 활용한다면 대체역을 만드는 취지 자체에 부합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이 실장은 “장기적으로 고민하겠다. 다만 법무부에서 들어가는 예산도 생각해보면 필요 없는 돈이 아니라 현재 교정직 공무원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에서 들이는 비용에 비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비용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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