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피의사실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입니다. 그간 고위공직자들의 피의사실은 언론을 통해 많이 보도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최종 공판이 나기도 전에 언론에 보도되는 각종 피의사실이 사실상 ‘여론재판’이라는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피의사실 유출 금지와 함께, 여론재판의 모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토라인’에 대한 존폐론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를 떠나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피의사실 유출에 대한 문제의식에 공감했습니다. 법무부도 피의사실 유출을 제한하기 위한 정책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선일보가 갑자기 주장을 바꾸고 정치적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양승태를 시작으로 포토라인 관행 문제제기

보수언론들이 피의사실 유출을 비판한 기점은 작년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에 대한 수사부터 올해 초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까지입니다.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숨진 작년 12월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무시가 보도된 올해 1월까지 언론은 포토라인 자체를 비판했습니다. 세 달간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포토라인에 대한 비판 의견을 각각 1건을 보도하고 동아일보 2건, 중앙일보 4건의 기사를 보도하는 것에 그칠 때 조선일보는 12건의 기사를 쓰며 포토라인 폐지에 힘을 실어 줬습니다.

▲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포토라인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낸 신문 보도량.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해 12월1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포토라인에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낸 신문 보도량.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그 전에도 고위공직자에 대한 검찰의 피의사실 유출 사안이 많았지만, 보수언론들은 박근혜 전 정권과 연루되어 있는 두 인물의 검찰 수사를 두고 ‘현대판 멍석말이’라며 비판한 것입니다. 보수언론은 포토라인에 피의자들을 세우는 행위가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꾸짖었습니다. 특히 포토라인을 무시하고 지나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모습을 부각하면서도 인권침해라는 비판을 받던 포토라인 관행을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여야 진보 보수를 떠나서 인권침해적인 행태라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있는 목소리입니다. 보수언론의 일갈도 오래된 관행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줬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보수언론들이 어떤 주장을 했는지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언론사 성향과 상관없었던 포토라인 비판

동아일보는 <횡설수설-포토라인>(1월29일, 전성철 논설위원)에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포토라인이 ‘수사의 목적 중 하나’로 이용되던 관행을 인정해 언론에 비공개 소환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지시를 내리자 “카메라 앞에 세워두고 뻔한 질문을 던지며 “죄송하다”는 알맹이 없는 답을 듣는 것은 ‘망신주기’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옳은 말이다. 이는 포토라인의 운용자인 언론계도 함께 고민할 문제다”라고 썼습니다.

중앙일보는 <“현대판 멍석말이” “초상권 침해”…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1월16일. 박사라 기자)에서 “최근 법조계의 포토라인 논쟁에 불을 지핀 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중략) 하지만 “검찰 조사를 거부한 것도 아니고 포토라인을 지나친 게 비난까지 받을 일인가”는 반론도 나왔다”라고 썼습니다. 경향신문도 <판사가 검찰조사 받아보니… “이런 식일 줄은”>(2월17일, 류인하 기자)에서 “그동안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 앞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폭력에 해당한다는 지적은 인권단체를 중심으로만 제기돼 왔다. 법정에서 처음으로 피고인을 만나는 판사들에게 ‘포토라인 문제’는 한 발자국 떨어져 있는 문제였다. (중략)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조언론인클럽은 지난 1월15일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공동토론회를 열어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두드러지게 비판 목소리 냈던 조선일보

포토라인 폐지에 가장 강도 높은 목소리를 낸 곳은 조선일보입니다. 조선일보는 <포토라인 세워 죄인 낙인, 누가 검찰에 그 권한 줬나>(1월15일, 조백건·김은정 기자)에서 “포토라인을 설치하는 건 분명 언론이다. 그러나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울지 결정하는 건 검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이진국 아주대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정치적 사건에서 수사 기관이 여론 재판에 회부하고자 할 경우에는 포토라인이 인권 침해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전락한다”라며 비판의식을 드러냈습니다.

조선일보는 <만물상-‘포토라인 인민재판’>(1월16일, 이명진 논설위원)에서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한 법관이 검찰의 포토라인 세우기가 중세 시련 재판을 연상시킨다고 했다. (중략) 검찰은 포토라인 세우기를 수사 대상자에 대한 공격 압박 카드로 쓴다. 한국에선 죄 없는 사람도 검찰에 의해 여론 법정에서 얼마든지 인민재판 당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조선일보는 아래의 기사 등에서 포토라인이 기본권을 침해하며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 지난 1월15일부터 5월28일까지 포토라인 관행 비판한 조선일보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 1월15일부터 5월28일까지 포토라인 관행 비판한 조선일보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정쟁에 앞장서느라 입장 달라진 조선일보

피의사실 유출에 대한 비판 의견과 검찰 개혁이라는 기대에 힘입어 법무부는 15일 피의사실 공개를 원칙적으로 막는 방안이 담긴 정책 초안을 발표했습니다. 지금까지 검찰은 공적 인물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 실명을 공개했고, 언론의 취재에 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수사의 전 과정을 모두 비공개로 처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법무부의 발표대로라면 조선일보가 열을 올리던 포토라인도 사라지게 될 전망입니다. 검찰이 피의자들을 비공개 소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언론에 시기가 노출되면 다시 일정을 잡게끔 했기 때문입니다.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할 조선일보는 막상 법무부의 발표가 나오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조국 법무부장관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단독-정경심 공소장 6일째 국회제출 안하는 법무부>(9월17일, 박국희·김형원 기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최근 수사 대상에 오른 피의자의 피의사실 공개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법무부의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는 피의자를 카메라 앞에 세우는 ‘포토라인’ 관행을 없애는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날 야당은 “조 장관이 자신과 일가족에 대한 수사를 방어할 목적으로 공권력을 남용하고 있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이해당사자인 조 장관이 수사 공보를 금지하는 자체가 ‘수사 방어용’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법무부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 웬일인지 자유한국당의 입장을 크게 적어주는 것에 그쳤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수사 대상에 올라서 피의사실 유포를 더 엄격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야당의 논리를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피의사실 유포 금지를 외치던 조선일보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조선일보는 몇 개월 만에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놓았고 조국 법무부장관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법무부 ‘조국 장관’ 취임 후 ‘피의사실 공개금지’ 새 훈령 서둘러...검찰 브리핑 차단 나섰나>(9월15일, 손덕호 기자)에서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도 유보한 일을 조국 법무부장관이 추진하고 있다며 불편함을 드러냈습니다. 조선일보는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이)조 장관이 수사를 받게되자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제한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유보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작 의혹의 당사자인 조 장관이 취임하자마자 자기 때문에 전임 장관도 유보한 일을 스스로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합니다.

<‘피의사실 공표 금지’ 여(與)의 내로남불>(9월18일, 최연진 기자)에서도 조선일보는 “‘표창장 위조’ 혐의를 받고 있는 조 장관의 아내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한 ‘정경심 훈령’이라는 말도 나왔다”며 현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 왼쪽은 지난 1월15일 조선일보 기사, 오른쪽은 9월18일 조선일보 기사.
▲ 왼쪽은 지난 1월15일 조선일보 기사, 오른쪽은 9월18일 조선일보 기사.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조선일보의 보도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불씨가 지펴진 5월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는 국회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담긴 패스스트랙(신속 처리 안건)을 통과시키려던 시점입니다. 조선일보는 <검찰, 적폐수사 칼 휘두르며 인권 무시하더니…이제와서 “기본권” 운운>(5월8일, 윤주현 기자)에서 “이 전 사령관(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법원에 영상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할 때 수갑을 찬 상태로 포토라인에 서야 했다. 검찰은 ‘관행’으로 치부했지만 ‘무죄추정원칙’을 무시한 명백한 인권 침해였다. (중략)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서도 피의사실 공표와 포토라인 세우기 등 전형적인 검찰의 인권 침해가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전 정권 적폐수사와 관련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포토라인에 세워 무자비한 여론재판을 한다며 입에 거품을 물더니, 이제 그 관행에 대해 변화를 주려 하자 ‘왜 지금 와서 그러냐’는 식의 기사를 쓴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조선일보는 두 달 후 <이재수·노회찬·임종헌… 검찰 ‘피의사실 흘리기’로 압박>(7월24일, 조백건,이정구 기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변창훈 전 서울고검 검사, 노회찬 전 국회의원,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사례를 나열하며 “피의사실 공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등 이목을 끄는 특수 수사를 많이 하는 검찰에서 심했다.”라고 썼습니다. 조선일보는 피의사실 유출에 대한 심각성을 인정하고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지금 현 정권이 추진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모양입니다.

피의사실 공표를 강도 높게 비판하던 조선일보는 정작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싶은 대상이 생기자 서둘러 입장을 바꿨습니다. ‘군자표변’이라지만 반 년은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정말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한 정책 추진을 바랐을까요? 아니면 그저 조선일보가 원하는 인물들을 보호해 주기 위한 방안들 중 하나로 피의사실 공표를 비판했던 것일까요? 조선일보의 태도는 언론이 정쟁에 가담하는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들의 지면에서 현 정부 관련 인사를 내로남불이라며 비난하는 내용은 거의 매일 찾아볼 수 있지만, 언론이야말로 내로남불이 ‘체질화’된 것이 아닐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2018년 12월1일~2019년 9월18일, 온라인 기사 포함)
※ 문의 :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 정리 : 주영은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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