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사업주 직접처벌 없어 한계”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사업주 직접처벌 없어 한계”
[토론회] 직장인들 관심 높아 입증자료 모으지만 ‘보복’ 우려…간접고용·특수고용·소수사업장 등 예외 ‘한계투성이’ 

김지수(가명)씨는 ㅎ사의 ‘신사업부’로 불리는 H사에 입사했다. H사 소속이었지만 H사 대표의 아버지인 ㅎ사 대표에게 인사를 하러갔다. 외모를 지적하는 성희롱과 성추행이 있었다. 같은 사무실을 쓰지만 법적으로 노사관계가 아니란 이유로 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이 성립하지 않았는다고 했다. ㅎ사 대표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해 검찰이 기소까지 했는데 노동부 조사관은 ‘기소가 오래걸렸으니 재판에서 뒤집힐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최근 근로복지공단에서 성범죄와 2차피해로 입은 피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이 왜 노동부에서 구제받기 어려운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50여일간(7월16일~9월3일)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제보를 중심으로 19일 국회에서 ‘사례를 통해 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법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지난 7월부터 시행했다. 

▲ 이정미 정의당 의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19일 국회에서 '사례를 통해 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이정미 정의당 의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19일 국회에서 '사례를 통해 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의미와 개선방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법 시행으로 관심이 늘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총괄스텝에 따르면 50일간 전체 제보 총 3272건 중 괴롭힘 제보는 1698건으로 51.9%를 차지했다. 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통계에서 괴롭힘이 차지하는 비율 28.2%에 비하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오 스텝은 “키워드 분석 결과 직장인들에게는 ‘기록’, ‘녹음’을 언급한 빈도 역시 지난해 동일시기에 비해 1.3~1.6배 늘었다”며 “법 시행 이후 신고를 염두에 둬 입증자료를 마련하려는 게 직장인들의 변화”라고 전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지난 5일까지 접수된 진정 656건을 분석한 결과 업종별로 제조업 130건(19.8%), 사업시설관리 102건(15.5) 순이었고, 지역벌로는 서울 210건(32%), 인천·경기북부 109건(16.6%) 순이었다. 괴롭힘 유형으로 보면 폭언 282건(43%), 부당인사 185건(28.5%) 순으로 많았다. 

오 스텝은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고 법 시행 이후 분위기를 요약했다. 직장인들이 적극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고민하고 대처하고 심지어 신고 이후 퇴사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까지 열심히 문의했기 때문이다. 다만 법에 한계가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는 대책이 필요하고, 나아가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바꾸려 노동부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가연(가명)씨는 법 시행 이후인 지난달 중순 대표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다. 고장 난 복사기를 고치느라 회사 대표의 안경을 허락 없이 옮겼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대표는 박씨를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무능한 사람으로 몰았고 박씨는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박씨는 “노동부가 회사에 와서 조사하면 다른 직원들 얘기도 듣고 사장에게 압박도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힘들게 연차를 내고 노동부에 출석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박씨는 회사 대표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해당 법으로는 현실적으로 구제받기 어렵다.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해결 주체다. 

이용우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해당 법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이사는 “제재조치가 없어 사업장에서 안 지키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수 있어 걱정된다”며 “대표이사 같이 권한을 가진 자가 해결 주체인 것도 우려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법은 사내에서 자율 개선을 목표로 한다. 그는 “노동자들간 괴롭힘도 대상인데 1차적으로 대상은 사용자여야 한다”며 “사용자의 사전예방 조치의무를 규정하지 않는 등 법적 의무규정에 공백이 많다”고 말했다.

사각지대도 언급했다.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이사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5인미만 사업장, 간접고용·특수고용 등이 법 적용에서 배제되는 점을 문제 삼았다.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시 조치 등에 관한 사항’을 꼭 기재해야 하지만 아직 개정하지 않은 사업장도 많고, 취업규칙 개정·신고의무가 없는 10인 미만 사업장은 이 역시 제외되는 문제도 지적했다. 
 
법 시행 초기인 만큼 노동당국의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성우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장은 “자율개선을 우선시하는 법제도 속에서 유일한 권한을 가진 곳이 노동부라서 소위 법이 죽느냐의 사활이 시행초기 노동부 역할에 달렸다”며 “노동부가 5인미만 사업장이니 법적용이 안된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조사할 수 있고 개선조치 취하면 되지 않느냐.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지난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 지난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사진=고용노동부

 

노동부가 현행 제도들을 이용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게 박 회장의 주장이다. 근로기준법을 근거로 ‘피해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처우를 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박 회장은 “직장 내 괴롭힘을 문제삼는 신고인에 사업주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유무형의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조치’로 보고 벌칙규정을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노동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도 적극적으로 해달라는 주문도 했다. 박 회장은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규칙이 다 접수돼있지 않느냐”며 “이를 전수조사해서 미비한 부분을 개선보완하면 큰 홍보·교육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적절하게 시정지시해 해결한 모범사례를 발굴해서 사회적인 신호를 주는 방안도 제안했다. 

노동부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최태호 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판례·행정해석사례 등이 축적돼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원칙적으로 근로감독관이 직장 내 괴롭힘 여부를 판단하지만 지방관서 장이 필요하다고 볼 경우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전문위원회’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노동부는) 그간 접수된 진정·언론보도 등을 토대로 ‘직장 내 괴롭힘 사례집’을 오는 10월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민간 전문 상담역량을 활용한 ‘직장 내 괴롭힘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자 한다”며 “9월 중 2개소 지정해 시범운영하고 내년 총 8개소 상담센터 운영내용을 정부예산안에 반영했다”고 했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평화 2019-09-19 16:08:27
노동부가 탄력을 받으려면, 국회의원은 입법과 노동자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내년 4월 총선, 과연 노동자는 노동자를 위하는 국회의원을 뽑을 것인가. 아니면 경영자를 위하는 국회의원을 뽑을 것인가. 내년 투표에 국민의 생각과 진정한 가치관이 다 투영될 것이다. 과연, 투잡이나 일용직을 하면서 최저임금을 반대하는 노동자(최고임금이 오르고 일이 고도화되면, 돈을 더 벌기 위한 투잡은 어렵다)와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와 일과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의 싸움에서 누가 이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