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수사 기관의 수사내용 공표금지를 강화하는 공보준칙 개정안을 발표한 이래 관련된 주제로 처음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에 공감하면서도, 공익 및 알권리 등과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 세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진행됐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참석해 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봤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범죄 수사과정이나 그 결과가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피의사실공표는 허용돼야 한다. 그렇지만 피의자 기본권보장과 관련해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며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를 개정하며 ‘중대한 공익상을 이유’로 예외를 설정하면서 이 예외에 대해서는 따로 법률로 정하는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경우에는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수사공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면 현행 수사공보준칙의 미비점을 개선하여 보완하면 될 것”이라 밝혔다. 특히 피의사실과 관련이 없는 민감한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관한 사항은 엄격하게 제한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승영 경찰청 수사기획과 총경은 △공공의 안전에 대한 위험, 범죄피해의 급속한 확산, 동종범죄의 발생 예방을 위해 국민에게 즉시 알릴 필요가 있는 범죄 △신속한 범인의 검거를 위하여 국민들에게 알려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는 범죄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권력기관의 부정부패 등 공개의 공적 이익이 큰 범죄 등으로 공표 가능한 정보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에도 공표 방법을 보도자료 배포, 브리핑, 인터뷰 등 권한자의 공식 업무 영역으로 둬야 ‘수사관계자’라는 불분명한 출처에 기대어 수사기관 공식 발표처럼 보도되는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법인권소위원회 소속의 김지미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소위 ‘셀프 판단’으로 책임을 빗겨가지 않도록 별도 심의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지미 변호사는 “경찰이나 검찰 구성원이 피의사실공표죄를 범하여 처벌 대상이 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이를 입건하고 수사해 기소하는 주체 역시 경찰이나 검찰이 될 수밖에 없다”며 “추상적인 단어들로 정당화되는 요건들만 나열한다면 ‘셀프 면죄부’로 이어져 법이 개정된다한들 현재와 다를 바 없이 피의사실공표 행위는 만연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피의자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일정범죄 피의자에 대한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예로 들며 “피의사실 공표에 대하여도 보다 신중한 결정을 위하여 이와 같은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 방지를 위한 정책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강한 법률신문 기자는 언론계가 포함된 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우선 수사공보준칙을 구체화・체계화해, 수사기관과 언론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길을 열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정기적으로 어떤 것은 공개하고 어떤 것은 공개하지 않아야 하는지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법원・검찰・변호사・법조기자단이 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발전시켜 나가기 바란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다양한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실효적 규정을 마련하고 국회 등 입법논의과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지혁 법무부 형사기획과 검사는 “검찰에서 범죄수사 관련 직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기존 훈령을 최대한 준수해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국민입장에서 미흡했다는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전임 장관이 개선을 추진했고 방안을 마련했는데 앞으로 여러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수렴해 개선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토론장에 찾아온 경찰청 관계자와 취재진 등이 ‘수사기관이 다원화돼있는 상황에서 법무부 훈령만으로는 여러 수사기관에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이 정착하기 어렵지 않겠느냐’거나 ‘관세청, 국가정보원 등 여러 기관과 공동의 법제화 논의 계획이 있느냐’는 등 질문을 던졌으나, 법무부 답변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데 그쳤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주최자인 조응천 의원 외에도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조 의원은 “매번 토론회 때마다 의원님들 모시기 힘들어서 고생했는데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다. 민갑룡 경찰청장님은 딱히 좋은 얘기 못들을 자리에 참석해주셨다”고 환영하면서도 “수사기관의 피의사실공표가 어제오늘 문제 아니듯 오늘 토론회도 갑작스레 잡힌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찬희 대한변협 회장도 “이 토론회는 약 한달 반 이전인 8월8일 공문을 통해 처음 개최하기로 했고 원고 인사말을 20일 전쯤 보냈는데 그 이후로 상황이 계속 바뀌었다. 더군다나 법무부 장관이 새로 취임하고 수사공보 준칙을 개정한다는 말이 있어 ‘오비이락(烏飛梨落)’ 아닌가라는 생각도 있었다”며 “본인은 예지력이 없었다지만 ‘핫 이슈(hot issue)’를 잘 선정해준 조 의원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간 여당에선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를 수사하는 검찰이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의혹과 비판을 제기해왔다. 뒤이어 법무부가 조 장관 취임 이후 공보준칙 개정 방안을 발표하자, 그 시점이나 의도에 의구심 어린 반응이 나온 이유다. 당정은 토론회가 열린 이날 오전 공보준칙 개정은 조 장관 관련 사건이 종결된 뒤에 시행하겠다며 의혹에 선을 그었다. 이미 전임 박상기 장관 시절부터 준비해 온 사안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조 의원과 변협 측에선 이날 토론회 역시 동일선상에서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다만 이상민 의원, 송영길 의원, 최재성 의원, 이규희 의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 등의 연이은 인사말은 여타 토론회와 확연히 다른 여당의 관심을 보여줬다. 이들 대부분이 수사기관을 통한 언론의 보도 관행을 질타한 가운데, 이해찬 대표는 서면 축사에서 “관행이라는 미명아래 수사단계에서 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과 정황이 공개되면서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사례가 ‘전직 대통령 죽음’ 이후에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수사기관은 여전히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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