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제가 검사 편인 것처럼 이야기하시는지 참 이상하네요.”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지 마시고요. 비밀 유지해야 하는 제 입장도 이해해주시길….”

일제 강제징용 소송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한상호 변호사(69)가 18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병대 전 대법관 측 변호인에게 답답하다는 듯 쏟은 말이다.

한상호 변호사는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71),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반대신문을 받았다. 김앤장과 양승태 대법원이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이 된 모양새다.

사법농단 의혹을 받고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은 앞서 있었던 한 변호사 법정 증언 신빙성을 무너뜨리는 데 주력했다. 한 변호사는 피고인 측 신문 대부분에 “클라이언트(고객)와의 논의 내용은 증언할 수 없다”며 증언 거부했지만 강제징용 관련 검찰 조사에서 본인이 한 발언에는 “발언 그대로”라고 재차 확인했다.

한 변호사는 지난달 7일에도 증인 출석해 검사의 증인신문(주신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과 독대해 강제징용 사건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눴다고 증언했다.

또 그는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키로 했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발언을 듣고는, 그와 같은 결정이 이뤄진 데에 양 전 대법원장 결심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 지난 1월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1월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이번 재판 증언과 재판에서 일부 공개된 한 변호사의 검찰 신문조서 등을 종합하면, 2015년 5월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한 변호사에게 전화해 “정부에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때문에 걱정이 많다. (대법원) 소부에서 할지 전원합의체로 할지 고민했으나 전원합의체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려면 외교부의 공식 의견이 필요하다”면서 김앤장이 외교부에 의견서 제출을 요구하라고 요청했다. 한 변호사는 이후 양 전 대법원장을 만나 소송 대응 상황을 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양승태 대법원’이 대법원에 계속 중인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놓고, 전범기업 측 법률대리인과 재판을 거래한 정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부연하면, 대법원은 2012년 5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신일철주금과 같은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등 소송에서 원고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취지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후 2013년 7월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대법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선고하자 피고(일본 전범기업) 측에서 재상고해 같은 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됐다.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기 위해 대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회부가 필요했고, 양승태 대법원과 김앤장의 ‘유착’은 이를 이행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양 전 대법원장 퇴임 뒤인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고기각 판결로 원심을 확정하며 강제징용 피해자들 손을 들어줬다.

이날 박병대 전 대법관 측 노영보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기조실장(임종헌)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증인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무엇인가”,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난 장소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발언 내용을 기억하느냐”, “(한상호 변호사의) 친필 메모에는 관련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 “진술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 등 한 변호사를 압박하는 신문을 펼쳤다. 한 변호사 증언과 진술이 양 전 대법원장 측에겐 타격이라는 걸 방증하는 장면이다. 노 변호사의 일부 공격적 신문은 검사의 이의제기와 박남천 부장판사의 제지를 받았다. 피고인으로 출석한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내내 두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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