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더 이상 힘들지 않게 해줄게” 

지난 5월17일 숨을 마감하려했던 울산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안전점검 노동자가 단체대화방에 이렇게 남겼다. 그는 4월5일 원룸에서 점검업무를 하던 중 감금과 성폭력 위협을 당했지만 제대로 치료받거나 안전대책을 보장받지 못한 채 다시 업무를 하다 비슷한 일을 마주했다. 이 사건으로 그간 각종 언어·신체 폭력, 반려동물 공격 등 위험을 당연하다고 여겨 참아왔던 울분이 터졌다. 

점검원들은 경동도시가스가 아닌 센터에 속한 하청노동자들이다. 노동자 1명에게 월 1200건 이상을 할당하고 이중 97% 이상을 점검하지 못하면 1%당 임금 5만원을 삭감하는 성과제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이미 지난해 단체교섭이 무산된 채 해를 넘긴 상황이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는 5월20일 파업을 시작했다. 2인1조 근무, 97% 점검률 폐지 등 안전대책 마련을 울산시와 경동도시가스에 요구했다. 

▲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지부·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는 지난 5월 28일 오후 5시 울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동도시가스와 울산시는 성폭력 사태 각성하고, 2인1조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지부·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는 지난 5월 28일 오후 5시 울산시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경동도시가스와 울산시는 성폭력 사태 각성하고, 2인1조 시행하라”고 촉구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울산시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한 노조는 5월에 주로 울산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6월 서울 광화문에서 여성단체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7월9일 국무총리 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 주재로 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울산시 등과 간담회를 했다. 민영기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2인1조, 97%점검률 폐지, 경동도시가스 직접고용 등 3가지를 주문했는데 울산시는 ‘노사문제니까 울산시가 개입할 수 없다’고 했고 산자부는 ‘가스요금이 올라 2인1조 안된다’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분회원들이 지난달 9일 울산시청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사진=이정호 기자
▲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분회원들이 지난달 9일 울산시청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사진=이정호 기자

 

민 국장에 따르면 노사협상에서 사측은 2인1조를 할 경우 약 20억원이 든다고 노조 쪽에 말했다. 경동도시가스가 업계 2위이고, 지난해만 약 340억원의 순익을 남겨 약 40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하는데 20억원을 더 쓴다고 도시가스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산자부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노조 입장이다. 

심지어 정부는 안전점검원이 전체 몇 명인지도 몰라 노조는 이날 노동부에 전수조사를 요청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은 민원기사 포함 전국에 약 7500명으로 추산했다. 이 의원은 지난 5월27일 “도시가스사 민간위탁 노동자들을 저임금 조건으로 고용회피한다”며 “원청인 도시가스사가 직접고용하라”고 주장했다. 

▲ 전국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인원 추산. 자료=이정미 정의당 의원실
▲ 전국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인원 추산. 자료=이정미 정의당 의원실

 

또 지역마다 임금이 다른 것도 문제 삼았다. 서울과 경기 지역만 생활임금을 지급하고 강원 일부 지역만 도시가스 직원과 동등한 임금 수준이라고 이 의원은 지적했다. 지난달 노조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문제를 ‘노사문제’로 볼 게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란 의미다.  

18일 현재 파업 122일째다. 민 국장에 따르면 97% 점검률 폐지에는 노사가 합의했다. 사측은 점검원을 고용해 2인1조를 구성하는 방안이 아닌 정직원 동행 등 다른 방식의 2인1조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인1조는 노조만의 요구가 아니라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직무매뉴얼에 나온 내용이고, 배관안전을 점검하는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은 2인1조로 근무하고 있다. 성폭력 위협에 노출된 사건도 있고, 이번 파업의 주요 목적이 안전대책인 만큼 피해보상·치료비 등을 노조는 요구했는데 이 역시 남은 쟁점이다. 노동자들은 집단 상담을 받기도 했다. 

협상이 마무리되면 일을 하면서 직접고용 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이정미 의원은 5월에 “한국전력공사가 전기검침원 5200명을 자회사 방식으로 정규직 전환하기로 했고, 수도검침원은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정규직 전환했거나 정규직 전환 요구 중에 있다”며 “전기·가스·수도는 사실상 공급·요금 등 정부통제를 받으면서도 민간위탁이라는 이유로 원청 정규직 전환 논의에서 배제돼 노동조건이 열악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이 안전대책을 요구하며 지난 17일 울산시의회 옥상에 올랐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울산 경동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이 안전대책을 요구하며 지난 17일 울산시의회 옥상에 올랐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추석 전 협상이 마무리 될 걸로 기대했지만 협상이 길어지자 지난 17일 오후 6시30분경 노동자들이 울산시의회 옥상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활동가 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3명의 점검원 노동자가 밤새 고공농성을 진행한 뒤 18일 오전 10시경 경찰에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경력 300여명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국장은 “여성노동자들을 여성이 아니라 남성경찰이 들어와 연행했고 이 과정에서 3명이 탈진했다”고 말했다. 옥상에 올랐던 한 분회원은 이날 낮 12시경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병원에 왔다”고 했다. 

이날 오후 1시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고공농성 강제진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태 장기화 책임이 경동도시가스 사측과 가스요금결정에 역할을 하는 울산시에 있다고 주장했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8일 오후 1시 울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동도시가스 여성노동자 울산시의회 옥상 고공농성을 강제진압한 울산시 등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18일 오후 1시 울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동도시가스 여성노동자 울산시의회 옥상 고공농성을 강제진압한 울산시 등을 비판하고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제공

 

울산시는 노사협상 중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울산시 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처음부터 일관되게 노사간 협상을 시에서 중재해왔다”며 “시가 중립적 입장에서 중재를 하는 입장일 뿐 방관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가스가 공공재 성격이라 나서라고 하지만 경동도시가스 노사문제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마다 시에서 입장정리를 해줘야 하면 노사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했다. 

에너지산업과 관계자는 “2인1조의 경우 인원을 더 뽑아야 하는데 이는 도시가스 요금 인상으로 시민들이 부담하게 된다”고 했다. 노조가 순익 340억원을 말하는 것에 대해 해당 관계자는 “회계상 나타난 것일 뿐”이라며 “경동도시가스에 물어보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해결책은 노사협상과정에서 나온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경동도시가스 쪽에 회사의 입장을 물었지만 오후 5시 현재 답을 듣지 못했다.

고공농성 퇴거명령은 울산시 총무과 업무다. 총무과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행정절차에 따라서 했다”며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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