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마음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 존재한다. (...)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걷어내지 못한 채 편집국은 전원 퇴사한다.”

홈리스에게 잡지 판매를 통해 합법적 수입을 올릴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자 격주간 잡지 ‘빅이슈코리아’(이하 빅이슈) 9월호에 실린 편집장 글이다. 빅이슈 9월호를 마지막으로 편집장을 포함한 4명의 기자가 동시 퇴사했다.

박현민 편집장은 이 글에 “이곳과 연결된 판매원분(홈리스)들의 생계가 염려돼 여전히 빅이슈를 응원할 것”이라면서도 “그것이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 우리가 잡지를 통해 꾸준하게 담아내고 내비쳤던 가치관이 회사의 가치관과 어긋난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할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썼다.

박현민 편집장 외에도 손유미, 문지현, 정지은 에디터 역시 퇴사를 알리는 글을 9월호에 공개했다. 정지은 에디터는 ‘오늘, 촛불을 끕니다’라는 글에서 “보시는 대로 편집국 전체가 퇴사를 결심한 것이 맞다”고 했다.

▲사진출처=빅이슈 홈페이지.
▲사진출처=빅이슈 홈페이지.

왜 편집국 기자들은 퇴사를 결심했을까. 미디어오늘은 지난 11일부터 복수의 빅이슈 전·현직 직원들을 만나 내부 사정을 들었다. 편집국 측은 퇴사 이유로 △편집국과 사측 간 가치관·인식 차이 △상습적 임금체불 △회사 내 성(性) 관련 사건에 대한 사측의 대처 △온라인 수익금 사용에 대한 의혹 등을 꼽았다.

반면 빅이슈 사측은 기자들 퇴사를 임금체불이나 사무실 이전 문제 등 현실적 문제라고 봤다.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특정 사건에 대한 대응은 충실했고, 임금체불과 온라인 수익금 등 총체적 재정 상황도 기자들과 충분히 공유했다는 것.

편집국 소속 A씨는 “임금체불 문제는 퇴사 사유의 극히 일부”라며 “가치관 차이가 가장 크다”고 말했다. A씨는 “수년 동안 상습적 임금체불을 겪었지만 퇴사하지 않았다. 급여 지급이 늦어지긴 했지만 결국 지급이 됐었다”며 “그러나 임금체불을 포함해 여러 문제가 생길 때마다 회사가 수습하는 방식에서 가치관 차이를 넘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말하는 가치관의 차이에 대해 편집국 소속 기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기자들은 “우린 우리 스스로를 기자로 규정하고 일하는 반면 사측은 비영리 단체의 특성을 강조하며 활동가와 같은 식의 희생을 원했다“며 “임금체불 건을 두고 회의를 열었어도 경영진은 큰 위기의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편집국 소속 B씨는 “편집국 퇴사가 임금체불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빅이슈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편집국 가치관 차이”라고 강조했다. B씨는 “노동자 인권을 주장하면서도 노동 착취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대기업과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여성 인권을 주장했지만 정작 민감한 사건이 일어나면 대처가 미흡했다”고 말했다.

편집국과 사측의 ‘가치관’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 건 외부 인력과의 협동 작업이 이뤄질 때 빚어진 성(性) 관련 사건에 대한 대응이었다.

B씨는 “사건을 대처하는 과정에서 판매국장이 안일하게 대응했고, 사건 후 회사 내부에 관련 사안을 공유하지 않았다”며 “사후 대책도 미흡했고 편집국이 이 사건을 인지한 후 대응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빅이슈 사측 관계자는 사건 피해자가 사건 내용의 공유를 원하지 않아서 사안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빅이슈의 사측 관계자는 미디어오늘에 “사건을 인지하고 곧바로 사과를 드렸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게 일할 수 없음을 알렸다”며 “이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 교육을 추가 진행했고 결국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는 일을 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사건을 내부에 공유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가 공유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편집국 내부 인물이 문제를 제기하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을 때는 이미 편집국 전원 사퇴가 결정되고 난 후였다”고 전했다.

▲박현민 편집국장이 속했던 편집국 4명의 기자가 만든 마지막 빅이슈.
▲박현민 편집국장이 속했던 편집국 4명의 기자가 만든 마지막 빅이슈.

편집국 측은 빅이슈 사측의 온라인 수익금 사용 방식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A씨와 B씨는 공통적으로 “빅이슈는 온라인 수익금을 여성홈리스 자활 지원에 사용한다고 하지만 이때까지 명확한 금액 내역서를 사내 직원들과 잡지 구독자에게 제공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빅이슈는 홈리스 판매원들이 길에서 판매하는 오프라인 잡지 수익금에 대해 ‘판매원에게 50% 수익 제공’이라는 방침이 있다. 반면 온라인 수익금에는 이런 방침이 없었다는 것.

빅이슈 사측 관계자는 “수익금에 대해 한 달에 한 번 직원들과 재정 상황을 공유한다. 홈페이지만 들어가봐도 어떻게 수익을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며 “정기 구독의 경우 여성 홈리스를 위한 사업에 배분한다. 온라인 수익 가운데 정기구독료를 제외한 경우 추가로 5% 정도를 여성 홈리스 단체에 기부하는 방향으로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외에도 현재 여성 홈리스들이 잡지 포장 등을 하며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체불과 관련해 사측 관계자는 “지난 9년 동안 체불을 만들지 않으려 했지만 급여가 늦어진 적이 있었던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그러나 미리 공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미리 구성원들과 상의했다. 지급 날짜도 알렸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에도 ‘편집국 전원 사퇴’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고질적인 구조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측 관계자는 “2011년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서울시로부터 지원 받던 인력 지원비가 대폭 삭감됐다. 최저임금 수준으로 급여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고, 편집팀 직원들은 전원 퇴사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빅이슈는 현재 새로운 편집팀을 꾸려 9월호의 두 번째 잡지를 발행했다.

퇴사한 B씨는 빅이슈에서의 경험에 “홈리스 판매원 선생님들의 생계가 걱정돼 퇴사 등을 굉장히 깊게 고민했다. 그러나 빅이슈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빅이슈가 이 방식 그대로 지속된다면 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빅이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돌아온 건 가시를 빼내듯 신속한 이별이었다. 진정 홈리스 자활을 도우려면 수익 구조를 창출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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