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과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노조가 노동계에서 ‘노동쟁의권 무력화 제도’로 지적해 온 필수공익사업·필수업무유지제도 개정을 위한 정책협약식을 가졌다.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관계자와, 노조 관계자 등 40여 명이 참석해 약 1시간 동안 발언을 이어갔다. 일부 항공사 노동자들은 유니폼을 입고 참석했다.

심상정 대표는 “필수유지업무제도는 오랜 세월 대한민국이 국제적으로 노동 탄압국으로 규정될 수 있었던 핵심 독소조항이다. ‘사용자’를 위한 특권이며,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단체행동권을 과도하게 제약해왔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중요한 업무가 외주화될 때에는 비핵심업무, 노동자들이 파업할 땐 필수유지업무로 사용자 입맛대로 이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오히려 공공운수분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해 온 독소조항이다. 시급히 폐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은 국제노동기구(ILO)로부터 세 차례나 시정권고를 받았던 사항이고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지적을 받았던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고용노동부가 제출했던 ILO 관련 노동조합 개정안에는 필수유지업무제도와 관련된 개선 조치나 과제가 담기지 않았다”며 “대통령께서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책임 있게 필수유지업무제도 개선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정의당-공공운수노조-희망연대노조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정책협약을 가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 정의당-공공운수노조-희망연대노조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정책협약을 가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지난 2008년 도입된 필수유지업무 제도는 항공·수도·통신·병원 등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된 사업장에서 파업을 할 경우 일정 비율 노동자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 당사자 신청에 따라 필수유지업무를 유지·운영하기 위한 필요 인원을 결정할 수 있다. 노동계는 이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 파업권이 침해된다고 비판해 왔다.

협약식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필수유지업무제도가 파업 효과를 무력화하고, ‘약한 고리’에 놓인 노동자들의 노동쟁의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김진경 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1990년~2000년 초반에는 노동조합이 최소인력을 배치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끔 하면서 파업이 빨리 끝났다. 파업을 선포하고 2시간 만에 합의한 경우도 있었다. 필수유지제도가 생기면서는 예전 수준의 30% 밖에 파업 참여를 못하고,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기 때문에 장기파업을 유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서 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데, 이분들에게 필수유지업무 비율을 들이밀면서 ‘몇 퍼센트 유지하지 않으면 정규직 전환될 수 없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종삼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한마음지부장은 “저희는 불법 파견으로 인정돼 작년 2018년 9월에 직고용이 됐다. 정규직이 되자마자 회사에서는 계속 팀장, 파트장 등 관리자들을 통해 ‘너희는 필수유지업무라서 파업하면 안돼. 찍히지 말고 가만 있어’ 이런 이야기를 퍼뜨렸다. 그러면서 작년에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직군을 새로 만들어서 최하위 노동조건을 적용해 직고용 대상 노동자들을 정리했다. 아마도 지금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는 과정이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문성 공공운수노조 서해안선지부장은 “저희는 임금체불이 있는데 이걸 임금교섭과 엮는다. 그러면서 필수유지업무 비율을 상당히 높게 제시한다.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해도 높은 유지율이 인정될 걸 알기 때문에 ‘시간 끌기’ 일환으로 지노위에 보내버린다. 인원이 적고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제도를 개선하고자 선두에서 싸워준다고 하니 큰 희망을 갖고 돌아가겠다”고 전했다.

이른바 ‘땅콩회항’ 공익제보자인 박창진 전 대한항공 사무장은 “대한항공에서 노동탄압을 상징하는 사건이 ‘땅콩(회항)’이었다. (대한항공) 재벌 일가와 사측이 방대한 힘을 가질 수 있고, 거대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노동자 이권을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자들이 견제세력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라며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제도 개정은 단지 노동자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요구가 아니라, 이 법이 시민 모두의 인권을 유린할 수 있는 악법이라는 차원에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의당-공공운수노조-희망연대노조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정책협약을 가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 정의당-공공운수노조-희망연대노조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제도 전면 개정을 위한 정책협약을 가졌다. 사진=노지민 기자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오늘 정의당을 찾은 (필수공익사업)업종은 명절에 쉬지 못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아침에 눈 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죽음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들에게 우리 노동력이 전해진다. 그러나 필수유지업무제도 때문에 공공운수노동자들의 노동권은 심각하게 제약받았고 공공기관 파의 ‘최장기간’ 기록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며 “지난 보수정권에서 이 제도가 만들어졌다면 진보적인 정권에서 이런 것들을 폐지하고 노동권을 강화하는 법제도 개선을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유용문 희망연대노조 공동위원장도 “대표적으로 노동권을 약화시키고 파업할 수 없게 만드는 악법 조항 중 하나가 필수유지업무제도다. 그 법으로 이익 받는 자가 누구이고 불이익 받는 자가 누군지 살펴보면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당과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노조는 이날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필수공익사업-필수유지업무제도 폐지를 포함한 제도 마련 위해 함께 노력 △제도를 악용해 노조무력화와 장기파업을 양산하는 공익사업장 행태와 항공·통신 등 재벌회사의 노·사 균형 붕괴와 견제기능 상실로 갑질이 양산되는 현실 해결방안 모색 등이 담긴 정책협약서에 서명했다.

지난 4월 공익사업 범위 조정 및 필수유지업무제도 폐지 법안을 대표발의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내면 ‘개악(改惡)안’이 수십개 쏟아진다.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거의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이 문제에 대한 절박성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법안을 다룰 수 있도록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주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며 “최초로 ILO 국제 노동기준국장을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불렀다. ILO 측 입을 통해 직접 환기시키는 과정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20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남았는데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 뜻이 대변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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