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언론사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글은 헌법 제1조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세청장에게 전 언론의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을 명령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은 가짜뉴스를 양산하여 여론을 호도하는 찌라시 언론으로 전락하였습니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조선일보 일본판에 매국적 기사 제목(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을 난발하였고, 중앙일보 일본판에는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정책=한국) 등등 이런 매국적 기사를 쓰고, 연합뉴스는 300억이라는 국가보조금을 받는 언론사이지만 대통령의 소식을 전하면서 인공기를 TV영상에 내보내는 등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언론사들이 국익보다는 현 정부에 맹목적 비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세청장에게 전 언론사의 세무조사”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면서 언론개혁의 조치로서 세무조사라는 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관련 게시물은 언론보도에 대한 비평과 검증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자정적인 언론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정권 차원에서 공평 과세라는 명분으로 개혁 조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정권 차원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권과 대척점에 있는 언론에 대한 보복 조치 혹은 언론과의 전쟁 선언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에 해당한다.

관련 게시물은 지난 10일 올라왔고 이틀 만에 동의 숫자가 6천2백 명을 넘어섰다. 게시물에 공감하는 속도로만 보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슈에 해당하지만 이런 청원 내용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는 찾을 수 없다. 냉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시물 내용을 다루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받으면서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권 차원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대표적으로 김대중 정부를 들 수 있다. 2001년 2월 국세청은 중앙지와 방송, 통신사 등 23곳에 대한 정기 법인세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정권과 언론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무조사는 그해 6월까지 진행했다. 탈루 소득만 1조3594억 원으로 드러났고 5065억 원 세금을 추징하기로 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이 구속됐다.

▲ 언론사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 언론사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언론은 집단 반발했다. 세무조사의 정당성을 보도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한겨레는 “국세청이 이번에 거의 전 중앙 언론사를 조사해 언론사뿐 아니라 사주 등 대주주의 탈세 비리까지 확인하고 거액의 세액을 추징하기로 한 것은 공평과세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언론자유 침해를 내세우며 세무조사 예외의 특혜를 누려온 언론사들은 이번 조사를 계기로 기업으로서 투명한 경영 방침과 정당한 납세 관행을 세워나가야 국민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은 정권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했다면 날선 보도를 내놨다. 세무조사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서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발언을 근거로 해서 청와대가 보수언론을 손보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에서도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대중 정부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당시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역대 군사정권 하에서 비대해진 보수언론들이 오늘에도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인 체질을 유지, 안하무인격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는 속에서 진행되는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남조선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화해. 단합으로 나아가는 북남관계 여론의 추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과세를 공표하는 문제는 정권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재일한국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올바른 언론은 목숨 걸고라도 지키고 존중하지만 옳지 않은 언론에 대해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며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어떤 신문사의 탈세 문제를 다루는 어려운 국면에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실을 밝혀내서 공평하게 재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보복이 예상되었습니다. 이때만은 나도 좀 주눅이 들었지요”라고 털어놨다. 김 전 대통령은 “아니나다를까 엄청난 반격을 받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재판에 의해 그들의 죄는 폭로되고 유죄가 확정되었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세무조사라는 것은 일반기업이라면 정기적으로 실시해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지를 검토하는 당연한 조치”라면서 “청원 게시글은 특별 세무조사를 얘기하는 것인데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가중돼 게시물이 등장한 것은 일면 이해하지만 특별하게 언론사들을 타깃 삼아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세무조사는 공정경쟁을 위축시키거나 언론 본연의 사회적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