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집에서 칼을 뽑지 않을 수 있는 힘도 권력이다. 

노동청이 어떤 이유든 체불 사건을 빨리 해결하지 못할 때 결국 이득을 보는 건 체불사업자다. 시간을 팔아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이중의 손해다. 따라서 노동부 등 공권력이 나서 강력하게 제재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할 경우 업무를 중단할 수 있다. 이는 합법일 뿐 아니라 보상까지 받을 수 있다는 프랑스 대법원 판례가 있다. 연장수당 등을 체불하거나 지속적으로 지급을 청구했지만 정당한 사유 없이 체불한 경우와 같이 임금체불이 심각할 경우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 귀책사유가 사용자에게 있기 때문에 프랑스 대법원은 해당 계약파기를 사측의 ‘부당해고’로 간주해 각종 보상금 지급을 명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앞선 기사에서 다룬 기독교타임즈 두 기자의 사례는 프랑스 대법원이 판단한 ‘심각한 임금체불’에 가깝다. 회사는 연장수당 등을 체불했고,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지급을 청구했다. 심지어 노동청이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했는데도 법원에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다. 

▲ 기독교타임즈 로고
▲ 기독교타임즈 로고

해당 사건을 다루고 있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은 각종 주요기업 본사가 모인 서울 중구에 위치해있다. 이곳의 판단이 노동현실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거 기독교타임즈에 다녔던 정원희 전 기자 역시 급여 일부와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며 지난 3월 중순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이 사건 역시 앞서 기독교타임즈 두 기자 사건을 담당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3과 이아무개 근로감독관에게 사건이 배정됐다. 이 감독관은 기독교대한감리회나 기독교타임즈 상황을 잘 알고 있어 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다. 

정 전 기자는 지난 4월9일 출석요구를 받고 그 다음 주에 조사를 받았다. 사측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다가 5월에서야 출석했다고 정 전 기자는 전해 들었다. 정 전 기자는 지난해 신문사에서 부당해고를 당했고 이를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했다. 노동위원회에서 화해하는 과정에서 사측이 정 전 기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했다. 정 전 기자는 이 금액이 해고기간동안 못 받은 금액이라고 주장했고 사측은 이 금액에 미지급 임금 일부와 퇴직금을 포함했다고 반박했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이 사안 역시 노동청이 체불금액을 빨리 확정하는 게 중요하다. 정 전 기자는 “민원처리 기간이 기존 4월 말에서 5월23일로 연기됐고, 또 6월28일로 연기됐다”며 “그 이후엔 아무 내용도 전달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진정사건의 경우 처리기간이 25일이고 진정인의 동의를 얻어 한번(25일) 연장할 수 있다. 

사건을 담당한 이 감독관은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처리기한이 두 달로 돼 있긴 한데 사건 수사를 하는 중이고 처리기한을 넘어갈 수도 있다”며 “당사자 간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처리기한을 넘었다)”라고 말했다. 

수사를 어느 정도 진행했는지 묻자 “수사중인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사건 역시 체불피해 노동자 입장에선 답답한 상황이다. 이 감독관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지만 체불액이 확정되지 않으면 다음절차로 진행할 수 없다”고만 답했다. 

▲ 고용노동부 로고
▲ 고용노동부 로고

적폐청산TF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개혁위원회)는 고용노동부를 조사한 뒤 이렇게 노동당국이 스스로 공권력을 제때 사용하지 않는 현상을 지적했다. 지난해 8월 개혁위원회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첫째로 ‘근로감독 및 체불행정 실태와 개선’을 언급했다. 핵심은 노동당국이 좀 더 체불사업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노동자의 억울함에 공감하라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개혁위원회는 사업장을 근로감독할 때 감독계획을 사업장에 사전 통보하지 않고 불시에 방문하는 걸 원칙으로 하도록 권고했다. 임금체불 사용자에 대해 당사자 합의에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할 경우 신속한 보전조치·부과금 징수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도록 권고했다. 사용자의 편의를 봐주는 현 노동당국의 행태를 지적하는 내용이다. 

노동부가 노동자들 입장을 더 고려하라는 취지의 내용도 있다. 개혁위원회는 근로감독할 때 노동자대표가 참여하고 그 결과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라고 권고했다. 결과가 위법할 경우 이의신청을 할 수 있게 하고 이를 공정하게 심의할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했다. 

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들은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되길 기대한다. 단지 노동자 입장이라서가 아니라 임금체불은 불법이다. 이에 개혁위원회는 현재 지방관서·근로복지공단·법률구조공단 등 분산해 있는 체불청산 업무를 체불피해 노동자가 쉽고 빠르게 체불청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또 노동부가 노동수사에서 수사권 독립을 준비해 국무총리실 등에 건의할 것을 권고했다. 검찰의 수사지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서면 수사지휘 원칙을 지켜 부당한 수사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위원회 활동결과보고서를 보면 “근로감독관에게 법령의 해석·적용 등 법률 쟁점에 검토·지원할 수사기획·지원부서 신설 추진”, “근로감독관 별도 채용, 형사소송법·노동법 등을 시험과목에 추가, 행정업무와 수사업무 분리로 전문성 축적” 등 노동부 스스로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동부 의지에 달렸다. 

※ 참고문헌 
오승규, 프랑스의 체불임금 해결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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