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한낱 노동자다.
 
TJB 대전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한 김도희씨는 노동청의 무책임한 태도로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체불임금확인서)’를 받지 못해 결국 법원을 찾은 이야기를 지난 기사에서 전했다. 여기서 프리랜서라는 신분이 걸림돌로 작용했다지만 명백하게 노동법상 노동자인 경우에도 노동청에서 임금체불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다.
 
노동청이 체불임금 진정을 받고 무려 1년2개월 뒤에 단서를 달아 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한 사례가 있다. 체불피해 노동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다. 체불임금을 법으로 다툴 때 최근 3년치 임금만 그 대상이란 뜻이다.
▲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로고
▲ 서울지방고용노동청 로고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교단지 기독교타임즈 김목화·신동명 기자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2018년 4월 체불임금 진정을 넣었다. 신 기자는 2012년부터 임금체불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잘한 다른 투쟁으로 독촉을 미뤄왔지만 지난해 징계해고 당하면서 체불진정을 넣었다. 소멸시효가 3년이니 2015년 4월부터 최근 3년간 체불임금이 다툼의 대상이 될 거라 예상했다.
 
노동청은 2019년 6월에서야 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했다. 같은달 확인서를 근거로 기자들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소를 제기하면 소멸시효가 멈춘다. 2019년 6월부터 최근 3년치 임금을 다투게 됐다. 진정사건의 경우 25일 내 처리하는 게 원칙이고 한번 연장할 수 있으니 늦어도 2018년 6월에는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 순전히 노동청이 사건을 지연하는 바람에 1년치 체불임금을 다퉈보지도 못하고 날린 셈이다.
 
두 기자 인터뷰와 그들이 기록한 일지, 지난 3월 김 기자가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올린 글, 근로감독관과 대화녹취 등을 종합하면 근로감독관은 1년 넘게 “연락주겠다”는 답변만 했을 뿐 실제로 연락을 먼저 주는 일도 거의 없었고 결국 체불사업자에게 시정지시도 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진정, 노동청 수수방관에 2019년 고소로 전환
 
두 기자가 지난해 4월 임금체불 진정서를 넣자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3과 이아무개 근로감독관에게 사건이 배정됐다. 노동청에서 노사가 처음 대질한 건 8개월이 지난 같은해 12월 말이었다. 이 감독관은 2019년이 되자 ‘1월이 지나기 전에 사건을 끝내겠다’고 했지만 사건은 2월로 넘어갔다.
▲ 서울 광화문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건물. 감리회 교단지 기독교타임즈도 이 건물에 위치해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광화문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건물. 감리회 교단지 기독교타임즈도 이 건물에 위치해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2월11일 이 감독관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 결재를 받아야 시정지시를 내릴 수 있는데 결재가 안 났다며 다시 미뤘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제21조를 보면 시정지시는 과장 결재를 받아 진행한다. 이 감독관은 2월말 기자들에게 ‘회사가 거부하면 열쇠수리공을 불러서라도 불시에 방문해 자료를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회사 쪽에 전화해 방문일정을 알린 후 방문했고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점점 노동청을 믿지 못하게 됐다.
 
결국 지난 3월초 기자들은 진정사건을 고소사건으로 전환하겠고 말했다. 그러자 이 감독관은 “고소하면 체불임금확인서 발급이 안 되고 시정지시도 없다”고 했다. 기자들 입장에선 고소를 못하게 유도하는 발언으로 들렸다. 다시 몇 주를 기다려도 시정지시가 없어서 같은달 말 고소장을 접수했다. 진정으로 해결이 안 돼 고소를 한 건데 사건은 다시 이 감독관에게 배정됐다.
 
당사자 주장이 달라서…
 
이 감독관은 지난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금요일(지난 6일)에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사건 진정을 넣은 지 1년5개월, 고소한지 거의 반년 만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을 보면 진정사건은 25일 내에 처리해야 하고 신고인의 동의를 받아 한 차례 연장할 수 있다. 고소사건의 경우 2개월 내에 수사를 완료해 검찰에 송치한다. 현실에선 쓸모없는 규정들이다.
▲ 서울지방고용노동청 홈페이지에 있는 임금체불 진정민원 코너. 처리기한이 25일이라고 써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 서울지방고용노동청 홈페이지에 있는 임금체불 진정민원 코너. 처리기한이 25일이라고 써있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감독관은 ‘사건을 왜 끌었느냐’는 질문에 “끌지 않았다”고 부인하며 “당사자가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피진정인(사측)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고 자료제출에도 시간이 걸려 주장여부 확인에 시간이 걸렸다”고 답했다. ‘보통 노사 양쪽의 주장이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에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고 답했다.
 
김 기자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은 처음에 ‘검찰에 송치해야 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한다’고 했다. 처리가 계속 늦어져 수차례 항의하자 노동청은 “고소인 주장으로 확인된 것이며 발급일 현재 변동사항은 알 수 없음”이란 단서를 달아 확인서를 발급했다. 최근 노동청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 기자들은 단서를 없앤 확인서를 다시 발급받아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다.
▲ 신동명 기독교타임즈 기자가 체불임금 진정 약 1년 2개월, 고소 3개월만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받은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 빨간 네모 안에 고소인의 주장으로 확인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 신동명 기독교타임즈 기자가 체불임금 진정 약 1년 2개월, 고소 3개월만에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받은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 빨간 네모 안에 고소인의 주장으로 확인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신 기자는 노동청의 수사의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과거 다른 곳에서 임금을 못 받은 적이 있어서 성남지청에 간 적이 있는데 근로감독관이 노사를 각각 불러서 소위 ‘구워 삶는다’고 할 정도로 단호하게 조사했다”며 “특히 사장을 불러 돈을 안 주면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얘기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당시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신 기자가 주장하는 체불금액 전체를 받진 못했지만 감독관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줬다.

김 기자는 지난 3월20일 약 1년 간 노동청에서 사건해결이 되지 않았던 과정과 답답한 심정을 국민권익위에 글을 썼다. 그는 “비가 오는 밤,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글을 올린다”고 했다. 국민권익위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3과로 해당 글을 보냈다.
 
해당 과에선 “2018년 4월20일 진정이 접수돼 수사가 진행됐으나, 귀하께서 2019년 3월21일 고소를 제기해 고소절차가 진행 중임을 알려드리며 기존 진정사건 수사가 장기화된 부분에 대해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고 답을 달았다. 이어 “추가로 궁금하신 내용은 담당 근로감독관 또는 근로개선지도3과 아무개에게 연락달라”고 했다.
 
두 기자는 지난 6월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법원은 같은달 25일 지급을 명령했다. 사측은 이에 불복해 지난 7월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체불임금을 청구하는 민사 본안소송은 9월11일 현재까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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