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에겐 같은 편이 없다. 

삼성에 노조를 세우려다 해고당해 25년간 복직투쟁을 벌이는 김용희씨는 6월10일부터 서울 강남역 사거리 CCTV 철탑에 올랐다. 불법파견·노조탄압 등을 비판하며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6월30일부터 고공농성에 9일부터 한국도로공사 사장실 점거농성,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들은 7월1일부터 고공농성,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7월29일부터 단식, 한국GM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는 8월25일부터 고공농성, 동료들은 단식을 시작했다. 각각 섬처럼 홀로 있다. 

“그동안 현장에서 근로감독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어 온 게 냉엄한 현실이다. 근로감독관이 노동법 사건을 전담하는 노동경찰임에도 전문성이 낮고 권위에만 의존해 노동자 편에 서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문재인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017년 8월 취임 첫 행선지에서 남긴 말이다. 정부가 기업의 민원을 처리하며 노동자를 외면했다는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기서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같은 경제부처 뿐 아니라 고용노동부를 포함한다.

사법부가 노동자 주장을 타당하다고 ‘해석’해도 법을 ‘집행’할 노동부가 방관할 경우 노동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일각에선 부당해고·불법파견은 법리가 복잡해 투쟁하는 ‘그들’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거나 그들의 주장이 과하기 때문에 노동부를 욕할 수 없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미디어오늘은 부당해고·불법파견보다 흔히 벌어지는 임금체불로 싸우는 언론인들을 인터뷰했다. 사안마다 노동청에 사건을 접수한 뒤 맞닥뜨린 관료주의 벽의 높이는 달랐지만 ‘노동관료들이 노동자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다’는데 이견이 없었다. 첫 번째는 대전지역 민영방송인 TJB 대전방송에서 일하고 퇴직금을 받지 못한 아나운서의 이야기다.    

필요에 따라 퇴직금 주는 방송사
노동자 억울함 해결 않는 노동청

대전방송 메인뉴스 앵커로 일했던 김도희씨는 지난해 1월 퇴사했지만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유에서다. 다음달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퇴직금체불 진정을 넣었다. 앞서 2016년 퇴사한 동료 아나운서 A씨가 퇴직금 체불로 노동청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체불 임금 등 사업주 확인서(체불임금확인서)’를 받았고 2년 넘는 민사소송 끝에 퇴직금 일부를 받았다. 함께 근무했던 김씨도 당연히 노동청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을 걸로 기대했다. 

▲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로고
▲ 대전지방고용노동청 로고

 

보통 노동자들이 처음 노동당국을 찾으면 ‘억울함을 잘 들어주겠지’, ‘여기서 해결해주겠지’ 하고 기대하기 마련이다. 정권과 무관하게 적어도 노동부만은 노동자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이치다. 

노동청 첫 조사에서 근로감독관은 무성의하게 ‘민사로 가라’고 했다. 출입문 입구에는 “사무실 내부는 CCTV 24시간 촬영 중이며 사무실 내에서 사진촬영·녹음이 금지된다”는 안내문까지 붙어있었다. 김씨가 조사과정을 기록하자 ‘적지 말라’는 발언을 수차례 들었다. 노동청은 기대하던 곳이 아니었다.

▲ 대전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 2과 출입문에 붙어있는 안내문. CCTV로 촬영 중이며 사진촬영이나 녹음 등이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사진=김도희 제공
▲ 대전지방고용노동청 근로개선지도 2과 출입문에 붙어있는 안내문. CCTV로 촬영 중이며 사진촬영이나 녹음 등이 금지된다는 내용이다. 사진=김도희 제공

 

근로감독관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근로감독관은 ‘왜 TJB아나운서들을 노동자로 볼 수 없는지’를 반복 설명했고 조사과정에서 ‘체불임금확인서 발급이 안 된다’고 결론을 이미 내렸다는 식의 발언도 했다. 

김씨가 항의하자 해당 근로감독관은 김씨에게 “공무원은 누구 편을 들지 않는다”며 “조사결과 노동자로 볼 수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 노동청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미디어오늘에 “개별 사건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며 “당시 근로감독관은 모두 다른 부서로 갔다”고 말했다. 이 사례에 대해선 “서로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조금씩 근무여건이 달랐을 것”이라고 답했다.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측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도 오로지 김씨 몫이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청 밖에서 해답을 찾게 된다. 김씨는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진정을 접수하고, 방송계 비정규직이나 법조인 등도 만나봤다. 반년이 흐른 지난해 8월 노동청은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김씨에게 ‘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하지 않았다. 

4년3개월 일한 동료는 노동자성을 인정해주면서 6년 일한 김씨는 퇴직금 받을 자격이 없다는 노동청의 판단도 황당하지만 노동청에서 날아온 서류는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조사결과 ‘법 위반 없음(근로자성 불인정)’, 조치결과 ‘내사종결(혐의없음)’” 한 장짜리 종이로는 왜 김씨가 노동법상 노동자가 아닌지,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판단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 김도희씨가 노동청에서 받은 사건처리 결과내용.
▲ 김도희씨가 노동청에서 받은 진정사건처리 결과내용.
▲ 지난해 10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전직 TJB 아나운서 김도희씨가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 지난해 10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상돈 바른미래당 의원(왼쪽)과 전직 TJB 아나운서 김도희씨가 열악한 방송계 노동현실을 얘기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갈무리

 

지난해 9월 언론에 제보해 신문기사가 나왔고, 10월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열악한 방송계 현실과 이를 방관하는 노동청을 지적했다. 개선은 없었다. 김씨는 결국 대전방송을 상대로 지난해 12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동료 아나운서가 그랬듯 지난한 법정 공방을 시작했다. 

어차피 소송으로 해결해야 했다면 노동청은 왜, 누굴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더는 퇴직금, 소위 ‘돈’을 받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김씨는 사측의 합의 제안을 벌써 거절했다. 정의로워야 할 언론사가 비정규직 신분을 악용하는 관행에 경보를 울리는 게 김씨가 싸우는 목적이다. 

노동청, 독립성·전문성·책임감 있어야 

김씨는 노동청에게 독립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노동청은 노동자성 판단 등 기초수사를 하고, 검찰은 이를 바탕으로 형사 처벌하도록 이원화해야 한다”며 “검찰이 수사를 지휘하다보면 노동청엔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검경과 달리 노동부는 수사권 독립을 이슈화하지 않고 있다.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도 절실하게 느꼈다. 지난해 10월 김씨는 노동청에 재진정을 넣었지만 근로감독관은 ‘민사로 가면 오래 걸린다’며 김씨에게 사측과 합의를 종용했다. 11월말 같은 결과를 받았다. 다만 이번엔 김씨가 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지 이유가 나왔다. 기본급이 정해져있지 않고,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였다. 비정규직이라 보장받지 못한 권리가 보호해주지 않아도 되는 핑계로 둔갑했다. 

사실 대전방송은 A씨 사건 이후 노동자성 판단 근거인 ‘방송사의 지휘·감독’을 은폐하려 휴가를 무급으로 바꾸고 계약서를 ‘프로그램별 출연 계약서’로 바꾸는 등의 조치를 했다. 업무지시도 국·팀장이 아닌 작가 등에게 대신 전달했고 사내에서 아나운서와 같이 밥을 먹는 이는 없었다. 이런 분위기가 김씨를 퇴사하게 한 까닭인데 노동청은 이런 방송사측 ‘꼼수’에 넘어가줬다.

▲ SBS 민영방송 네트워크사인 TJB 대전방송
▲ SBS 민영방송 네트워크사인 TJB 대전방송

 

노동청은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했을까. 아니면 사안을 판단할 능력이 안 돼 합의를 종용한 걸까. 김씨는 지난달 초 노동청에 노동자성 판단지침을 정보공개 청구했다. 지난달 20일 노동청은 “판단지침이 없다”며 “법원판례와 검사 지휘 등으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노동청은 자신들의 판단기준을 만들지 않았고, 결과에 책임지지 않았다. 김씨가 국민권익위원회에 “근로감독관이 자의적으로 판단했다”고 문제제기했더니 권익위는 이를 대전노동청으로 보냈다. 노동청은 이를 ‘근로감독관 교체’로 받아들였다. 근로감독관을 교체할수록 노동자는 불안해질 뿐이다. 감사원에도 알렸지만 명백한 잘못이 없는 한 감사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김씨는 노동청이 ‘체불임금확인서’ 발급여부를 결정할 때 노동자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이를 행정청의 ‘처분’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처분’이란 행정청이 공권력을 행사·거부하는 행정작용을 말하는데 ‘처분’으로 취급해야 행정심판·행정소송 등으로 시비를 다툴 수 있다. 

현재 노동청이 ‘체불임금확인서’를 발급하는 건 처분이 아니라 단순 민원처리다. 실질적으로는 노동법상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역할이지만 법에서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행위다. 이의를 제기할 수단조차 없기에 노동자는 근로감독관 심기를 건드릴까 처음부터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체불임금확인서가 처분으로 인정받아도 실익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김상은 변호사는 미디어오늘에 “체불임금확인서의 잘잘못을 행정소송으로 따질 실익이 없다”며 “어차피 노동청에서 해결이 안 되면 민사소송으로 가야하는데 굳이 중간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노동자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다. 

김씨는 노동청을 견제할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43조(재신고사건의 처리)를 보면 노동자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담당 과장은 근로감독관 변경, 검사의 지휘를 받아 처리, 민원조정위원회 의결을 받아 처리 등 셋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사실상 자신들의 잘못을 기존 체계 안에서 자신들이 평가하는 셈이다.   

노동부에 도움을 요청해본 이들은 정부가 노동자 편이 아니란 걸 느낀다. 다만 이를 제3자에게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김씨는 1년8개월 과정을 겪으며 신경통으로 의심되는 안면통증 때문에 6개 병원을 찾아다녔다. 근로감독관이 성심성의껏 억울함을 이해했다면 상황이 좀 달랐을까. 김씨는 방송사, 노동청, 검찰, 오래된 관행, 무엇과 싸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언론판’을 떠나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그는 때때로 두렵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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