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청와대가 조국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다음 날인 10일, 윤석열 검찰총장 식사 발언이 대대적으로 기사화됐다. ‘중립을 지키면서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검찰발’이다. KBS는 9일 밤 법조출입기자의 입을 빌려 “윤석열 검찰총장은 수사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내부적으로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수사 결과를 내라는 주문이다.

당연히 검찰은 전방위 수사로 조국 법무부 장관을 기소하려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언론은 좋은 도구다. 언론은 ‘고위공직자 검증’이란 이름으로 검찰이 흘리는 피의사실을 검증 없이 받아쓸 확률이 높다. 써야 할 것보다 쓰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는 게 더 어려운 순간, 바야흐로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이 국면에서 언론계는 10년 전 ‘뒤늦은’ 반성과 다짐을 떠올려야 한다. 

▲경향신문 2009년 6월8일자 4면.
▲경향신문 2009년 6월8일자 4면.

경향신문은 2009년 6월8일자 4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혐의’와 관련한 검찰의 발표나 주장을 검증 없이 그대로 기사화한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4월7일 ‘집사람이 박연차씨 돈을 받았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이후 언론사 간의 보도 경쟁이 한층 불붙고 검찰 취재원에 비중이 실리면서 검찰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한 사례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경향신문은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의 혐의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다소 과도한 비판을 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하며 “검찰 발표를 보도할 때도 그 내용을 기정사실화해서 전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심층적으로 분석·비판하는 기사도 적극 보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 2009년 6월5일자 4면.
▲한겨레 2009년 6월5일자 4면.

한겨레는 2009년 6월5일자 4면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한겨레의 가장 큰 실책으로 이번 검찰 수사가 기획·표적 수사의 성격이 강했다는 점을 놓친 사실을 꼽았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검찰 관계자의 입에 의존해 혐의 내용을 중계방송하듯 해온 그간의 수사 보도 관행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며 자사 보도에 대해 성찰했다. 

한겨레는 무엇보다 “혐의의 본질과 관련 없는 피의자의 인격을 훼손하는 내용은 검찰의 내부 공보준칙에서도 공개를 금하고 있으나, 한겨레도 이런 기사를 거르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이 신문은 “노 전 대통령의 딸인 노정연씨가 뉴욕 아파트 계약서를 찢어버렸다는 기사(5월16일치 6면)가 한 예”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법무부는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을 도입했다. 

현재 검찰의 모습은 10년 전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매우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검사 전원이 ‘조국 수사’에 투입됐다. 국회의 인사 검증 권한을 농락하며 서초동 검찰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법무부 장관 청문회가 맹탕으로 끝나자 부인을 전격 기소하며 판을 흔들었다. 조국 장관을 지키자는 게 아니다. 지금은 허위정보보다 검찰발 정보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알야야 한다. 

▲9월2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기자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9월2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기자간담회 모습. ⓒ연합뉴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9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우리 언론은 권력 비판에 취약하다. 권력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권력 비판 임무 수행에 있어 그 방법이 부실하고, 양식은 허접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맥락과 줄거리가 없는 사실명제 하나가 곧 하나의 완성된 기사가 된다. ‘딸이 몇 등급이다’ ‘직인을 찍은 적 없다’ ‘논문이 취소됐다’ 등이 곧 기사가 된다. 사건의 배경과 함의를 알고 싶은 뉴스 이용자에게는 결국 설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지금은 10년 전 ‘반성문’을 또 쓰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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