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신성한 게 아니라 노동을 하는 인간이 존엄하다.”

한 가지 의제에 집중하는 정당인 ‘기본소득당’ 발기인대회에서 선출된 용혜인 대표의 말이다.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는 지난 8일 600여명의 발기인과 함께 내년 초 창당을 목표로 출범했다. 이들은 자산의 유무나 노동 참여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몫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패러다임 변화를 목표로 기본소득을 내걸었다. 

창당하기 위해서는 당원 1000명짜리 시도당 5개가 있어야 한다. 용 대표는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역별로 인구가 다른데 서울이든 지방이든 1000명을 모아야 하는 게 다소 불합리한 면이 있다”고 지적한 뒤 “10월 말까지 서울·경기·인천을 마무리하고 늦어도 2월 중순에는 창당대회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3% 지지로 원내 진출하는 게 기본소득당의 목표다. 

▲ 용혜인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가 9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 결성신고서를 제출했다. 사진=기본소득당 페이스북
▲ 용혜인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 대표가 9일 경기도 과천에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창당준비위 결성신고서를 제출했다. 사진=기본소득당 페이스북

기본소득당은 핵심 5대 정책으로 △모두에게 월 60만원 기본소득 △기본소득과 함께 주 30시간 노동 사회 △디지털 공유부 배당과 데이터 주권 △탄소 배당을 시작으로 전면적 생태적 전환 △1인 가구 600만 시대 개인이 중심이 된 새로운 사회 등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봤다. 

기본소득을 월 60만원으로 정한 이유는 뭘까. 용 대표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월 50여만원을 받는데 이것보다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유럽에선 GDP의 15% 정도를 기본소득으로 할 때 지속가능하다는 연구가 있는데 60만원으로 계산하면 GDP의 18% 정도 수준”이라고 말했다. 충분한 기본소득과 지속가능한 기본소득을 절충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최근 노동시간 단축 흐름의 부작용을 기본소득으로 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용 대표는 “OECD에서 멕시코랑 한국이 장시간 노동을 경쟁하는 중인데 비정규직도 많고 노동 소득이 낮아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며 “기본소득이 있다면 소득수준 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쪽은 과로로, 다른 쪽은 실업으로 고통 받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 볼 수 있다. 

▲ ▲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지난 8일 청년문화공간 JU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제공
▲ ▲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지난 8일 청년문화공간 JU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제공

‘디지털 공유부 배당’과 ‘탄소 배당’ 등은 특정 기업이 독점한 사회 공유자산을 전 국민에게 나눠주자는 주장이다. 용 대표는 “과거엔 상위권 기업들이 제조업에 있었는데 요즘은 빅데이터로 돈을 버는 플랫폼 기업들”이라며 “이런 기업들 이윤의 근원이 되는 데이터 사용자 즉 국민들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탄소 배당 역시 비슷한 아이디어다. 그는 “탄소를 배출하는 특정 기업이 돈을 벌지만 지구온난화와 같은 피해는 모든 사람이 지고 있다”며 “탄소를 줄이는 적극적인 정책이면서 성장중심주의로 피해를 보는 시민들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라고 말했다. 

5대 정책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토지보유세’로 걷어 기본소득에 사용하자는 것도 같은 개념이다. 이에 용 대표는 “취지에 공감한다”며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 플랫폼 산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4차산업혁명에 대처하는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디지털 공유부 배당’과 같은 ‘플랫폼 배당’을 주장하며 변화하는 산업구조에 더 주목해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1인가구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말한 것도 사회변화를 고민한 흔적이다. 용 대표는 “지금 대다수 정책이 4인가구를 중심인데 청년정책들도 부모소득까지 포함해 계산한다”며 “흙수저냐 금수저냐에 따라 혜택이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한 뒤 “가구중심으로 만든 복지정책을 개인 중심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지난 8일 청년문화공간 JU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제공
▲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가 지난 8일 청년문화공간 JU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기본소득당 제공

같은 세대 안에서도 나타나는 다양한 가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용 대표는 “똑같이 30대라 하더라도 결혼해서 가구를 꾸린 청년과 그렇지 않은 청년이 누릴 수 있는 복지혜택이 굉장히 다르다”며 “특히 서른다섯이 넘어가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는데 가구를 중심으로 짠 기존 제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성 정당과 달리 기본소득당은 하나의 의제로 뭉친 당이다. 형식이 새로운 만큼 기존 정치문법에서 얼마나 벗어날지가 관건이다. 용 대표는 “경제성장에 기여한 경험이 있는 50대의 감각과 본인이 국가경제에 기여한 적도 없고 국가로부터 받아본 경험이 없는 청년들의 그것은 다르다”며 “국가, 경제, 사회에 대한 감각이 다른 세대별로 어떻게 기본소득을 설명할지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기존 진보-보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만큼 진보-보수의 틀을 깨는 것도 이들의 과제다. 용 대표는 “진보인데도 낡거나 하고 보수인데도 기민한 경우가 있다”며 “좌우 이데올로기를 떠나 새로운 정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을 단지 하나의 복지정책으로 보는 차원을 넘어서자는 게 기본소득당의 주장이다. 꼭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져 임금과 소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용 대표는 “다음 총선에서 기본소득이 하나의 의제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꿀지 논의하는 차원에 기본소득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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