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유출되는 게 아니라면 영장청구서 전달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9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제35형사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상언 창원지법 부장판사 발언. 그는 양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사법농단’을 부른 각종 행정처 보고서 문건을 작성했다.

공판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직권남용죄)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피고인 출석했다. 양 전 원장은 공판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재판이 길어지자 고 전 대법관은 꾸벅 조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고 전 대법관 측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영장청구서 유출’ 건이 언급됐다. 2016년 11월 검찰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박근혜 비선’ 최순실씨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박상언 당시 심의관은 영장 발부 전 서울지법 공보판사를 통해 이메일로 해당 구속영장 청구서를 전달 받았다.

▲ 지난 1월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 1월 사법농단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앞두고 대법원 정문 앞에 나타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김예리 기자

‘중요사건 영장 보고’ 근거가 된 과거 대법원 ‘중요사건 예규’를 보면 영장 보고는 종국된 때, 즉 영장 결정 후 보고해야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예규도 ‘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우려로 지난해 9월 폐지됐다.

2017년 2월 뇌물죄 혐의로 재청구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도 발부 전 행정처에 보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증인 출석한 박상언 판사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법원행정처장(고영한)에게도 (이 부회장) 구속영장청구서를 보고하라 하셔서 처장에게도 보고했다”며 “(고영한과) 별다른 대화는 없었으며, 위법하다고 인식하진 않았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사법농단’ 핵심 인사로 꼽히는 임종헌 전 차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영장청구서 사본 유출 지시 혐의를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로 봤다.

임 전 차장이 각급 법원 형사공보관 등에게 예규를 위반해 영장 정보를 즉시 보고할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그들로부터 2016년 7월~2017년 2월 10개의 구속영장청구서 사본을 보고 받고 수시로 양 전 원장 등에게 보고했다는 것. 박 판사는 재판에서 “(구속영장청구서가) 대법원장에게 보고된 것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 판사는 2015~2017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을 지냈다. 그는 사법농단 연루를 이유로 감봉 5개월 징계를 받았다. 김명수 대법원장 지시로 재판에서 배제됐던 그는 6개월 만인 지난 1월 소속법원에 복귀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