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의료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지윤 간호사는 병원 전체에 퍼진 위계적이고 닫힌 조직문화와 열악한 근무조건, 이로 인한 ‘태움문화’의 희생자였다. 서 간호사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자 출범한 진상대책위원회는 그가 서울의료원의 ‘환경‧조직적 괴롭힘’ 때문에 숨졌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서울의료원 병원장 교체를 비롯한 인력‧조직 쇄신을 권고했다.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진상대책위)’는 6일 오전 10시 서울시청에서 이 같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종진 진상대책위 부위원장은 “고인이 겪은 괴롭힘은 병원 경영진과 관리자들에 의한 것으로, 현재 간호사들을 비롯해 서울의료원의 대다수 직원이 공통으로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출범한 진상대책위는 서울의료원에 대한 자료요청‧설문‧면접 등을 통해 3달 간 조사를 벌였다.

서울의료원에서 6년째 일한 서 간호사는 병동에서 간호행정 부서로 옮겨진 지 얼마 뒤 1월5일 숨졌다. 서씨는 ‘병원 사람들의 조문은 받지 말아 달라’고 유서에 남겨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과 시민들이 꾸린 대책위원회가 서울시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시는 감사 뒤 ‘사실 여부를 밝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족과 시민단체가 요구한 끝에 시와 1‧2노조, 유족 추천 전문가 10명이 구성하는 진상대책위가 꾸려졌다.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는 6일 오전 10시 서울시청에서 진상조사 결과 보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는 6일 오전 10시 서울시청에서 진상조사 결과 보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진상대책위는 서 간호사가 겪은 괴롭힘이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지표에 모두 해당된다고 밝혔다. △직장 내 우월적 지위 이용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섬 △신체‧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 등이다.

서 간호사는 숨지기 18일 전 간호행정 부서로 옮겨졌다. 서 간호사가 원치 않는 조치였고, 발령 기준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무행정 부서였지만 그에겐 책상과 컴퓨터 등 사무기기가 지급되지 않아 인수인계자 옆에 의자를 놓고 일했다. 사무부서였지만 계속 병동으로 파견 나가 일해야 했다. 같은 부서 간호사들이 겪은 적 없는 조치다. 부서원 구조는 ‘역삼각형’이었다. 서 간호사를 포함한 평간호사는 2명뿐인데 관리자는 간호팀장‧부장 등 5명이었다. 무리한 지시와 폭언도 겪었다.

서 간호사는 이전부터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했다. 그는 입사 직후부터 감염관리 병동에서 일했는데, 동료들에 비해 근무일도 많고, 휴가일수도 적었다. 연차휴가 사용이 1년에 2일에 그치는 동료들의 경우보다도 심각했다. 2018년엔 동료들에 비해 2배 넘게 야간근무를 했다. 야간전담 간호사를 둬야 가산점을 받는 ‘야간전담제도’가 생기자 병원이 인력을 새로 들이지 않고 기존 간호사에게 추가근무를 강요해서다.

▲고 서지윤 간호사는 유서 말미에 ‘나 발견하면 우리병원은 가지말아줘. 조문도 우리병원 사람들은 안받으면 좋겠어’라고 썼다. 사진=진상대책위
▲고 서지윤 간호사는 유서 말미에 ‘나 발견하면 우리병원은 가지말아줘. 조문도 우리병원 사람들은 안받으면 좋겠어’라고 썼다. 사진=진상대책위

진상대책위는 이것이 서울의료원의 조직‧환경적 특성이라고 지적했다. 올해만 해도 병원은 암 판정받은 간호사를 말기암 환자가 있는 호스피스병동에 부당전보하고, 청소노동자가 감염 위험이 높은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다 숨지는 등 부당노동행위나 산업재해 사건이 3건이나 벌어졌다. 그 전엔 행정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차별처우를 받다 숨지고, 의사가 총무과에 발령 받아 결국 사직하기도 했다.

김종진 부위원장은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처한 환경이 하인리히 법칙(큰 사고가 나기 앞서 수많은 비슷한 작은 사고와 징후가 반드시 일어남을 비율로 밝힘)과 일치한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의료원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 간호사 가운데 우울장애 유병률이 41%에 이르렀다. 자살을 생각한단 응답이 4.1%, 시도율은 1.4%였다”며 “서울의료원이 이 결과를 냉엄하게 받아들였다면 올해 불행한 사건들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진상대책위는 병원이 김민기 병원장 1인을 중심으로, 또 아래 관리자를 중심으로 권위적이고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 내 법률기구인 고충처리위원회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유명무실했다. 한 진상대책위 관계자는 “병원 조직은 경영진과 관리자의 권위에 따라, 의견이 다른 이들을 배제하며 부당 인사조치를 하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정상조직이라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책위는 이날 서울의료원 원장 등 경영진을 바꾸고 괴롭힘 당사자인 간호부장 등 관리자를 징계하는 등 인적 쇄신을 권고했다. 또 간호부원장 자리를 새로 도입해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조직 개선도 권고했다. 서울시에는 기존 ‘비정규직 직장내 괴롭힘 사건처리 매뉴얼’ 대상을 모든 직장으로 넓히고 시 산하 공공병원 전체를 실태조사하라고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유족과 시민대책위를 만나 권고안 내용을 3달 안에 100% 이행하고, 이를 위한 추진기구 를 꾸려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고 박선욱·서지윤 간호사의 유족들이 진상대책위 보고회가 끝난 뒤 서울시에 권고안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고 박선욱·서지윤 간호사의 유족들이 진상대책위 보고회가 끝난 뒤 서울시에 권고안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서울대병원에서 9년째 일하는 ‘행동하는 간호사회’의 최원영 간호사는 “이번 조사 결과는 서울의료원뿐 아니라 민간병원을 포함한 모든 곳에 적용된다”고 호소했다. 지난해 초 숨진 서울아산병원의 고 박선욱 간호사 공동대책위원회 일원이라 밝힌 그는 “왜 박선욱 간호사가 숨졌을 당시 서울시는 아무런 역할이 없었느냐”며 “서울시의 조사 대상에 민간병원도 추가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시의 권한이 닿는 곳이 공공병원이지만, 보건복지부에서 사안을 엄중히 여기고 민간병원을 대대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고 서지윤 간호사의 동생 희철씨는 보고회가 끝난 뒤 조사결과를 두고 “누가 봐도 태움문화가 있었음을 자료 하나하나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간호부장과 간호팀장에 이르기까지, 제 누나에게 직‧간접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한 책임자들을 확실히 처벌해 달라. 병원은 권고안을 즉각 이행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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