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지난 5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비판 보도를 출고한 지 4분 만에 삭제했다. 한겨레는 기사를 쓴 법조 기자에게 한겨레 논조와 맞지 않는다는 ‘삭제 이유’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겨레 기자 31명은 6일 오전 “박용현 편집국장 이하 국장단은 ‘조국 보도 참사’에 책임지고 당장 사퇴하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썼다. 이들은 “현재 한겨레 편집국은 곪을 대로 곪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뒤 한겨레는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지난해 12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국회에 참석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 지난해 12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국회에 참석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사건 발단은 다음과 같다. 한겨레 법조팀 소속 강희철 기자는 ‘강희철의 법조외전’이라는 코너를 담당하고 있다. 강 기자는 지난 5일 “‘우병우 데자뷰’ 조국, 문 정부 5년사에 어떻게 기록될까”라는 제목으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조 후보자를 비교해 지적하는 칼럼을 작성했다.

이날 오후 4시15분 해당 기사가 인터넷에 출고됐다. 그러나 4분 후 기사는 삭제됐다. 담당 데스크는 강 기자에게 “이 시기에 나갈 기사가 아니”라며 “기사를 무제한 보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 지난 5일 출고됐던 강희철 기자 기사가 4분만에 삭제됐다. 사진=한겨레 페이지화면 갈무리
▲ 지난 5일 출고됐던 강희철 기자 기사가 4분만에 삭제됐다. 사진=한겨레 페이지화면 갈무리

담당 데스크는 기사가 출고될 수 없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한겨레 논조와 맞지 않다. 둘째 한겨레의 조 후보자 보도 스탠스와 맞지 않다. 셋째 우병우는 민정수석으로 재임할 때 문제가 불거졌지만 조국은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맞비교가 적절치 않다.

강 기자는 구체적으로 기사 어떤 부분이 맞지 않는지 글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강 기자의 조국 보도가 출고되지 못한 건 처음이 아니다. 강 기자는 지난해 12월6일에도 ‘강희철의 법조외전’이라는 코너에서 “문 대통령의 조국 유임, 현명한 선택일까”라는 제목으로 비판 논조 칼럼을 작성했으나 기사는 출고되지 않았다.

이 사태에 한겨레 기자들 31명은 6일 오전 편집회의방과 국장실 등에 대자보를 붙였다.

▲ 한겨레 기자들은 6일 오전 편집회의방과 국장실 등에 대자보를 붙였다.
▲ 한겨레 기자들은 6일 오전 편집회의방과 국장실 등에 대자보를 붙였다.

기자들은 대자보에서 “조국 후보자의 사모펀드가 관급공사를 수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딸이 의전원에 두 번을 낙제하고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보도됐을 때도 한겨레는 침묵했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은 문재인 정권에서 한겨레 칼날이 무뎌졌다고도 비판했다. 이들은 “인사청문회 검증팀은 문재인 정권 1기 내각 이후 단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다”며 “취재가 아닌 ‘감싸기’에 급급했다. 장관이 지명되면 TF를 꾸리고 검증에 나섰던 과거 정부와는 전혀 달랐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태우 수사관 폭로로 불거진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위 의혹,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사건 등 현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들은 타 언론에 견줘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취재해 보도했다고 자부할 수 있느냐”며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이며 누구 책임이라고 생각하나. 혹시 ‘적극적으로 취재해서 보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기자들은 “타사 기자들이 손발이 묶인 ‘한겨레’ 기자들을 공공연하게 조롱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민주당 기관지’라는 오명을 종종 들었지만 이 정도로 참담한 일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기자들은 “더 이상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기자’의 이름으로 언론자유를 억누르겠다면 떠나라. 앞선 선배들처럼 청와대로, 여당으로 가라. 한겨레와 언론자유, 그리고 당신들이 말하는 정의는 우리가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들은 편집국에 3가지를 요구했다. △박용현 편집국장과 국장단은 ‘조국 후보자 보도 참사’를 인정하고 사퇴하고 △문재인 정부 출범 뒤 검증팀을 꾸리지 않은 이유를 편집국 구성원들 앞에서 상세히 밝히고 △편집회의 내용을 전면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사 배치·구성에 현장 기자 의견을 직접·상시로 수렴할 제도 마련 등이다.

미디어오늘은 5일과 6일 박 국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한겨레 관계자는 “후배 기자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대화 자리를 만들어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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