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유로.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공영방송 수신료가 나간다. 피 같은 내 돈. 하지만 괜찮다. 이 돈으로 나는 당당히 요구한다. ‘독일 공영방송, 일 똑바로 하시오.’

독일에서는 가구 당 공영방송 수신료로 한 달에 17.5유로(약 2만3100원)를 의무적으로 납부한다. 집에 TV나 라디오가 있는지 상관없다. 독일인인지 한국인인지도 상관없다. 1인 가구도 17.5유로, 여러 사람이 함께 사는 공동 가구에서는 다 함께 17.5유로를 낸다. 저소득층과 대학 보조금을 받는 학생들, 미디어 접근이 어려운 장애를 가진 이들은 수신료를 면제받거나 할인받는다.

독일에서 수신료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지난한 법정 다툼이 있었다. 시민들의 반발이 컸다. 각 지역 및 고등법원, 연방 행정법원까지 독일 전역에서 약 30건의 소송이 제기됐다. 모두 수신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결국 이 논쟁은 헌법재판소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TV 수신료는 기본권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언제 어디에서나 공영방송 콘텐츠에 접근이 가능하다면, 실제로 접근을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기본적인 인프라에 돈을 지불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2018년에 납부된 수신료만 80억 유로(약 10조6000억원), 이 수신료는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제2공영방송 ZDF, 지역 공영방송이 나눠 가진다. 각 공영방송국 전체 재원의 80% 이상을 수신료가 차지한다. 광고 수익은 6%-10%로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한다. 공영방송은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며, 그 가치는 당연히 돈을 지불하는 시민들을 향한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독일 공영방송 중 구동독 지역을 아우르는 중부독일방송(MDR)을 보자. 통일 이후 설립된 MDR은 그 어떤 매체보다 지역민들에게 필요한 방송국이라고 평가받는다. MDR은 구동독을 꾸준히 재평가하면서, 구동독 주민들의 소외감과 패배감을 어루만져주는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동독 국영방송에서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 포맷을 이어받기도 했다. 통일 직후 평가절하되어 없어져 버린 동독의 정체성을 지역의 공영방송이 지켜가고 있는 것이다. 

MDR이 이러한 기획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이곳 지역민들이 납부한 시청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된 연방정부의 예산과 기업의 광고료로 운영되었다면 이런 방송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중부독일방송은 그 누구도 아닌 중부독일 주민들을 대변한다. 수신료가 제대로 기능한 좋은 사례다. 

독일 공영방송은 2016년 기존의 방송 채널을 없애고 인터넷 플랫폼 풍크(funk.net)를 개설했다. 방송국이 방송 채널을 없애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였다. 풍크에서는 온라인에 익숙한 14세에서 29세까지를 타깃으로 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 중 화학자인 마이 티 응우옌 킴(Mai Thi Nguyen-Kim)이 진행하는 ‘마이랩(maiLab)’ 프로그램은 독일 방송상을 수상하는 등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은 수신료가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 상세하게 공개한다. 내가 매월 지불하는 17.5유로 중 ARD에 3.92유로, ZDF에 4.25유로, 지역 공영방송에 8.39유로, 독일 공영라디오 0.50유로, 민영방송 허가 및 규제를 담당하는 주미디어청에 0.33유로가 책정된다. 

지역 공영방송을 다시 살펴보면, 8.39유로 중 TV 제작국이 받는 수신료는 3.1유로, 이 중 정치/사회 분야 1.61유로, 문화/교양 0.34유로, 영화 0.17유로, 예능 0.47유로, 스포츠 0.13유로 등으로 책정된다. 너무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어서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다. 

한 때는 독일어를 하지도 못하는 외국인(나)에게도 수신료를 징수하는 건 부당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독일인들만 수신료를 내는 독일 공영방송이라면? 독일 공영방송이 이주민들을 아우르는 다양성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독일 공영방송은 독일인뿐만 아니라 독일에 거주하는 모든 인간을 위해서 봉사한다. 그래서 외국인인 나도 시청료를 낸다. 

우리나라에도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공영방송에게 시청자들의 무서움을 알려주자는 목적이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시청자의 무서움을 알려줄 가장 큰 방법은 돈을 안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다. 

수신료 거부가 아니라 수신료를 더 내겠다는 운동은 없을까. 수신료의 용처를 분명히 밝히고 검증받는 시스템까지 구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의 돈을 받는 공영방송에게 시청자를 위해 일하라는 말이 잘 들릴 수 있을까. 공영방송에 매월 커피 한 잔 값도 주지 않으면서 ‘열정페이’를 요구하지 말자. 내가 돈을 줘야 나를 위해 일한다. 견고한 시청료의 장벽이 있어야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공영방송은 계속 공영방송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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