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미디어오늘은 지난 3일 “KBS가 폭로한 ‘밀정’ 이정 현충원 위패 논란”을 보도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기사에 등장하는 KBS 이재석 기자의 반론을 충분히 보장했다고 판단했지만, 이 기자는 추가로 반론 내용을 담은 기고문 게재를 요청해왔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생산적 논의가 되길 바라며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이 글은 <미디어오늘>이 최근 출고한 기사에 대한 아쉬움을 담은 글이다. <미디어오늘>이 어떤 매체인가.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비판적으로 해부해 온 언론사다. 그런 언론사조차도 기존 언론계의 어떤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식으로 기사를 생산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물론 이 글은 KBS 탐사보도부의 공식 의견이 아닌, <밀정 2부작>을 제작한 취재기자의 개인적 소견이라는 점을 명확히 전제로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KBS 기자가 미디어 비평 매체를 비판하는지 어리둥절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최대한 요약해본다. KBS 탐사보도부는 광복절 특집으로 <밀정 2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밀정 혐의자들을 다수 고발했고, 시청자들의 반향은 뜨거웠다. 취재진이 고발한 대상 가운데에는 특히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밀정’이 있었다. 대표적 사례가 김좌진 장군의 최측근 비서 이정이다.

이정은 청산리전투에 참가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그런데 취재진이 발굴해 보도한 일본 기밀문서를 보면 그가 청산리전투 4년 뒤 밀정으로 변절한 흔적이 명료하게 확인된다. 여기까지는 논란도 없고 반론도 없다. 즉 이정은 밀정이 맞다.

문제는 훈장을 줄 때 근거가 되는 ‘공적’이다. 그가 받았다는 건국훈장의 근거가 되는 공적을 살펴보다가 동명이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공적이 한데 뒤섞였다는 사실을 취재진이 발견했다. 취재진이 밀정으로 고발한 이정A와, 또 다른 인물인 이정B의 공적이 뒤섞여서 ‘한 명의 인물’이 되었고 그 인물에게 훈장이 수여된 것이다.

정부는 그렇게 뒤섞인 걸 구분하지 않은 채 훈장을 줬고, 그렇게 뒤섞인 채로 국립현충원에 이정의 위패(이름을 새긴 비석)가 세워졌다. 후손들에게도 정부 지원금이 나갔다. 이정A는 김좌진의 비서, 그러니까 취재진이 고발한 밀정이다. 이정B는 대종교 활동을 하다가 옥사한 다른 인물이다.

취재진은 이와 같은 사실을 꼼꼼하게 취재해 전부 방송에 담았다. 게다가 공적 혼재 사실에 대한 후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또 지금의 후손이 A의 후손인지 B의 후손인지 확인하기 위해 보훈처를 통해 만남을 요청했지만 후손들은 거절했다.

그런데 방송 뒤 후손들의 항의가 제보 형태로 미디어오늘에 들어갔다. 자신들은 이정B의 후손일 뿐 이정A의 후손이 아닌데 왜 이정을 밀정이라고 보도했느냐, 왜 현충원 위패를 촬영했느냐, 왜 우리 할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느냐는 주장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건국훈장은 A의 공적과 B의 공적이 (한 사람인 줄 알고) 다 합쳐져서 수여된 것이다. 만약 밀정으로 밝혀진 이정A의 공적(청산리전투 참전 등)이 빠진다면 등급 조정이 될 게 분명하다. 공적이 줄면 그에 따라 훈장 등급도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현충원 위패는, 다시 말하지만, A의 공적과 B의 공적이 한 사람으로 뒤섞여 ‘한 개의 비석’으로 세워진 것이다. 그러면 취재진이 촬영할 때 비석을 절반으로 갈라 반쪽만 촬영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취재진은 대종교 활동을 했다는 이정B에 대해선 비판적으로 보도한 바 없다. 김좌진의 비서이자 훗날 밀정이 된 이정A만 언급했을 뿐이다. 논리적으로도 취재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보도였다.

게다가 후손들은 KBS의 보도가 있기 전까지 두 명의 이정이 한데 뒤섞였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거나 알고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약 알았다면 본인들 스스로가 국가보훈처에 이 사실을 알리고 바로잡았어야 했다.

후손들이야 어찌됐건 기분이 나쁠 수 있고 항의도 할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미디어오늘>의 보도 행태다. 제보가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는지 검증하고 확인해야 한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3일 보도한 기사의 제목을 보자. [KBS가 폭로한 밀정 이정 현충원 위패 논란].

제목에서부터 ‘논란’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기사 첫 문장부터 ‘논란이 되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KBS가 야심차게 보도한 <밀정 2부작>이 어떤 결함을 갖고 있고, 그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실제 SNS에선 이번 기사가 그렇게 오해된 형태로 소비되기도 한다.

도대체 무슨 논란이 있었다는 것일까. 후손이 일방적인 주장을 내놓으면 논란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일까. 합리적 근거가 있든 없든 어느 누군가가 볼멘소리를 제출하면 실체 없는 논란도 발생했다고 쓰는,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어떤 오래된 관습이 <미디어오늘>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면 과한 표현일까.

이번 <밀정 2부작>이 정말로 ‘논란’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취재진이 엉뚱한 사람을 고발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혔거나, 혹은 방송 내용에 대해 복수의 학계 전문가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래야 정말로 논란이 생겼다고 기사화할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논란’이라는 말은 기자들에게 ‘전가의 보도’ 같은 것이다. 애매모호한 기사를 어쨌든 출고하고 싶을 때 일단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용어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고, 이번 <미디어오늘>의 기사도 여기에 해당한다는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매우 관습적이고 자의적인 제목 뽑기다. 물론 이번 기사만의 문제는 아니고 <미디어오늘>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다름 아닌 언론 비평 매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기사 내용도 유감스럽다. 제보자의 주장은 이러저러하다. KBS 취재진의 주장은 이러저러하다. 주장의 나열과 병치다. 각각의 주장에 대한 취재기자의 검증과 확인은 사실상 보이질 않는다. 제보가 들어왔다고 다 기사화할 게 아니라 제보 내용을 교차 검증해 어떤 명제는 인용하고, 어떤 명제는 기각하고, 또 누구 말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기자가 확인한 사항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써줘야 하지 않을까. 이번 기사를 보면, 팩트로 확인되는 사항마저도 ‘KBS의 주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제목처럼 ‘논란’이 되려면 주장과 주장이 부딪쳐야 하니, 이런 식으로 기사문이 작성되었을 거라는 게 내 추측이다.

미디어 비평 매체인 <미디어오늘>마저 대한민국 저널리즘의 어떤 관습을 보여주는 건 답답하고 씁쓸한 일이다. 혹시 ‘논란’으로 치환하고 양측의 발언을 따옴표로 잘 처리해주면 별 문제가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취재기자와 데스크가 한 것은 아닐까. 미디어오늘의 성찰을 감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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