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건물에 ‘폐간하라’라는 글자가 떴다.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미투시민행동)이 검찰의 이른바 ‘장학썬’ 사건 수사가 제대로 된 처벌 없이 끝났다며 ‘페미시국광장’ 시위를 시작한 날, 장자연 씨 사망 연루 의혹을 받는 조선일보 특수관계사 코리아나호텔 건물에 빔프로젝터로 퍼포먼스를 벌였다.

‘장학썬’은 고 장자연 배우 사망,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의혹, 클럽 버닝썬 사건을 통칭한다. 정치권과 언론이 입을 모아 해결을 외쳤던 ‘장학썬’ 사건이 이대로 잊혀질까 우려한 이들이 국회를 찾았다. 미투시민행동 관계자들은 4일 국회에서 정의당을 찾아 심상정 대표 등을 만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혀달라며 국회 역할을 주문했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장자연 사건은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국민이 잘 아는 사건이자 권력에 의해 철저히 은폐됐다. 올해 10주기가 되도록 진실이 규명되지 못했고, 2018년 미투 국면에서 국민들이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로 생각했음에도 5월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는 너무 실망스러웠다”고 지적했다.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관계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진행하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관계자들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심상정 대표 등 정의당 지도부와 간담회를 진행하기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김학의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데 ‘나는 뇌물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다’라던 피해자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며 “여성들에겐 모든 곳이 ‘원주별장’(김학의 사건 관련 장소)이고, 우리 모두 장자연일 수 있다. 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누가 정부를 믿고 성폭력 사건을 알리고 자신의 피해를 치유하겠나”라고 우려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버닝썬 사건과 관련 “경찰이 명운을 걸겠다던 수사가 이미 종결됐다”며 “최근 제2의 클럽 버닝썬이 개장했고 클럽 내에서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따라하며 조롱하는 퍼포먼스가 이슈가 됐다”며 “누군가의 비호 안에서 할 수 있는 조롱이 아닐까 생각돼 참담하고 절망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날 당사자 동의 여부를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삼는 이른바 ‘비동의간음죄’ 통과 목소리도 나왔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전국 66개 성폭력상담소 실태조사 결과 강간 피해자 71.4%가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설명하면서 “현재 국회에 9개 관련 법안이 올라와 있지만 논의조차 안 된다”며 국회를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스토킹처벌등에관한법률 제정도 “법무부가 묵혀두고 있다”며 조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권력형 성폭력 게이트의 대표 사건들이 여전히 ‘미투’(#MeToo) 이전처럼 권력의 벽, 기득권 카르텔 벽에 막혀 있는 사실에 가슴이 턱 막힌다. 가해자에 엄벌을 내려야 할 검찰·경찰·법무부 등 수사당국조차 성 평등에 기본 인식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 아닌가”라며 현 상황을 개탄했다.

심 대표는 “최근 사법개혁 요구가 높고 그 의지로 조국 후보자가 내정됐는데 진정한 개혁의 상징 중에 한 분야가 바로 성폭력 문제다. 장자연 사건도 김학의 사건도 버닝썬 게이트도 다 경찰·검찰이 직접 관련된 사건들”이라며 “분명한 책임이 물어질 때 사법당국 개혁에 신뢰도 생길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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