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부터 사회2팀에서 영등포라인 2진을 맡게 됐다. 경찰기자들은 담당 경찰서를 나눌 때 인근 경찰서들을 묶어 ‘라인’이란 명칭으로 부른다. 영등포라인은 영등포경찰서와 양천경찰서, 강서경찰서, 구로경찰서 등을 담당한다. 

필자는 입사 1년이 채 안 된 신입기자다. 요령은 없고 의욕은 넘친다. 배치 2주 만에 영등포역 근처로 이사를 왔다. 몸이 라인과 가까워지면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될 것 같았다. 

집을 옮긴 뒤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영등포역 뒤편은 유명한 성매매 집결지다. 역사가 60년이 넘는다고 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지만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필자 입장에선 낯설기만 했다.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그곳에서 고통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슬픈 이야기지만 뻔하게 다루고 싶진 않았다. 성매매 처벌법을 들여다봤다. 성매매 업소를 이용, 운영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도 현행법상 성매매 알선에 해당한다고 했다. 처벌 대상임은 물론이고 이렇게 얻은 임대료 등은 범죄수익으로 몰수 추징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건물주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성매매 업소에 세를 내준 사람들을 추적하고 싶었다. 그렇게 돈 벌어서 살림살이 좀 괜찮아지셨는지 묻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건물주를 직접 찾아가진 못했다. 대신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건축물대장에 꼼수로 올려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널리 알려진 성매매 집결지를 ‘약국’이나 ‘사무실’로 등록해둘 정도로 담당 기관이 단속을 소홀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로 했다. 경찰과 구청은 서로에게 단속 책임을 떠넘겼다. “구청에서 재개발로 해결할 문제”라는 경찰과 “우리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구청. 이런 핑퐁 게임 속에서 오늘도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는 성업 중이었다. 

▲ 지난달 18일 보도된 ‘1층 약국 2층 사무실 등록건물··· 알고보니 영등포 성매매장’ 기사 갈무리.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 지난달 18일 보도된 ‘1층 약국 2층 사무실 등록건물··· 알고보니 영등포 성매매장’ 기사 갈무리. 사진=중앙일보 홈페이지

 

사실 필자는 현장에 가지 못했다. 한밤중에 성매매 집결지를 걸어 다니며 성업중이란 걸 두 눈으로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취재가 시작되던 초기, 대낮에 성매매 집결지를 걸으며 꼼꼼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한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슨 일로 왔느냐”“사진 찍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시비를 걸었다. 필자의 팔을 잡기까지 했다. “무슨 상관이냐”며 소리를 질렀으나 주변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뺏으려 다가오는 남성을 피해 멀리 도망갔다.  

한동안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 거래의 대상으로 취급될 수 있는 그 장소에 한밤중에는 도저히 가기 싫었다. 다행히 남성인 동기가 흔쾌히 수락해줘서 현장 스케치 부분은 ‘외주’를 줬다. 얼떨결에 ‘영등포 3진’이 된 동기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나머지 취재는 쉬웠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서울시 산하 여성단체에선 이미 성매매 업소들의 등기부등본을 확보해 관리 중이었다. 필자가 한 일은 건축물대장과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경찰과 구청 담당자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기사 출고까지 3주 걸렸다. 철저히 취재기자의 내공 부족 탓이다. 

▲ 신혜연 중앙일보 기자
▲ 신혜연 중앙일보 기자

 

누군가는 성매매가 자유로운 개인 간의 합의된 거래라고 말한다. ‘자유’를 너무 마음 편하게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라면, 왜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성매매를 할 때 슬픔을 느끼겠나. 구슬 공장에서 쫓겨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잃고, 어금니까지 뽑힌 팡틴이 사랑하는 코제트를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게 성매매였다. 잠시 방문한 게 전부지만 말할 수 있다. 그 거리에서 자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 관련기사: 중앙일보) 1층 약국 2층 사무실 등록건물···알고보니 영등포 성매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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