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에 사직서 하나씩 품고 사는게 회사원이라지만 요즘처럼 퇴사가 트렌드가 된 적이 있나 싶다. TV와 서점가판, 유튜브에 퇴사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야말로 ‘퇴사 전성시대’다. 쿨하게 퇴사하고 블로그에 연재한 세계여행기가 책이 되거나, 도시를 떠나 게스트하우스나 서점을 여는 사람들의 삶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한다. 파워블로거나 인플루언서들의 억소리나는 수익과 성공신화도 빠지면 섭섭하다.

최근에는 무작정 퇴사 할 수는 없으니 퇴사를 배워야 한다는 ‘퇴사학교’까지 등장하더니 한순간 다 때려칠 수는 없으니 있는 자리에서 의미를 찾아보자며 모두가 ‘워라밸’(Working and Life Balance)을 외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베스트셀러의 제목에 아등바등 출근하는 내 삶이 순간 초라하기도 하다. 성실함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 촌스러운 어떤 것이 되어버린 듯하다. 

나도 매일같이 퇴사를 꿈꾸며 누구보다 열심히 퇴사 콘텐츠를 소비한 적이 있었다. 원하던 회사는 아니었지만 규모도 큰 편이었고 보수적이지만 야근도 적고 적당히 오래다닐 수 있었다. 무엇보다 ‘멀쩡해서’ 부모님이 좋아하셨다. 꿈꾸었던 일은 아니지만 일은 일이고 나는 나니까. 어차피 회사가 다 거기서 거기니 적당히 일하고 내 인생은 인생대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첫 해는 무작정 실전에서 배우고 적응하기 바빴고 2년차엔 두 시간에 가까운 통근거리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취미를 수집했다. 독서모임에 우쿠렐레까지 배우면서도 영어를 할까 어설픈 일본어를 더 해볼까 색다르게 춤이라도 배워볼까, 어떻게 하면 퇴근 후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했다. 3년차부터는 거금을 들여 헬스를 시작했고 틈만나면 여행을 다녔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나는 그럭저럭 행복했지만 사무실에서는 문자 그대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서 억지로 숨쉬는 연습을 해야 했다.

분기별로 이유없는 복통에 응급실을 출입했지만 어김없이 출근했고 퇴근과 휴일만 바라보며 시간을 버티었다. 수직적인걸 넘어 계급적이고 보수적인 조직문화, 인격모독과 폭언, 성차별이 나의 몸과 마음에 새겨졌다. 자연스럽게 퇴사의 꿈을 품고 퇴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고 누군가는 준비 없이 퇴사했다 망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른 넘어 어디를 가겠냐며 지금부터 재테크를 권유하기도 했고 괜찮은 창업 아이템으로 투잡을 뛰라고도 했다. 아마 그때 퇴사학교를 알았다면 월급을 거기에 다 바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려한 퇴사 성공담을 읽을수록 평범한 나에게 퇴사는 영영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정신적인 문제까지 오고 나서야 퇴사를 결정했다. 벗어날 용기를 준건 퇴사 공부나 취미가 아니라 퇴직금과 경제활동중인 파트너의 존재였고 결정 이후 명절 보너스를 위해 3개월을 더 버틸 정도로 나의 퇴사는 ‘쿨하지 못했다.’ 

그렇게 질척이는 퇴사를 마치고 약간의 일탈을 즐기다가 지금의 직장에서 주3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쩌다보니 주5일로 출근하며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지나고 보니 일(Work)과 생활(Life)은 깔끔하게 잘라낼 수 있는 조각케이크 보다 반죽으로 뒤엉켜 산산조각나기 쉬운 쿠키같은 것임을 나는 참 생생히도 배웠다.

바야흐로 모두가 퇴사를 꿈꾸는 사회다. 나처럼 쿨하지 못하게 퇴사 하거나 혹은 그조차도 할 수 없는 이들의 비빌언덕은 시류에 편승한 퇴사 마켓팅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일상을 보호하는 제도와 사회적 울타리임을 외면하지 말자. 사실은 연약한 우리의 세계를 지탱하는건 재미없고 촌스러운 성실함일지 모른다. 

▲ 김은주 서울노동권익센터 교육홍보팀
▲ 김은주 서울노동권익센터 교육홍보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