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경기도 판교 게임업체 넥슨 본사 앞에서 넥슨노조 고용안정 촉구 집회가 열렸다. 다음날인 4일 아침신문에 경향신문은 사회면(12면)에, 조선일보는 경제면(B1면)에 각각 이 소식을 비중있게 실었다.

경향신문은 4일자 12면에 이 소식을 “넥슨, 게임 개발 땐 직원… 중단 땐 헌신짝”이란 제목으로 실었다. 넥슨 노조가 이날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드물게 집회를 연 건 ‘고용 불안’ 때문이었다. 따라서 넥슨 노조의 요구는 ‘고용안정 보장’이다.

경향신문은 이 기사를 게임 제작자인 35살 넥슨 직원의 직장 이력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이 직원은 2010년 게임 스타트기업에 입사한 이후 9년 동안 5번이나 이직한 끝에 지난해 6번째 회사인 넥슨에 입사했다. 첫 회사는 망할 위기에 처해 그만뒀고, 두 번째 회사에선 게임을 출시했지만 2개월 만에 서비스가 중단돼 그만뒀다. 그에게 ‘게임 실패’는 곧 ‘퇴사’였다.

경향신문은 “게임 제작이나 서비스가 중단되면 사실상 권고사직 통보로 받아들여진다. 업무재배치를 받으려면 다른 팀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봐야 하는데, 정규직 신분으로 고용됐더라도 면접에서 떨어지면 주어진 업무 없이 대기발령 상태로 남는다”며 만연한 게임산업의 고용불안을 지적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4일 경제섹션 1면에 ‘게임 위기 틈타… 판교 테크노밸리 흔드는 민노총’이란 제목으로 넥슨노조 집회를 다뤘다. 조선일보 기사엔 ‘인근 회사원’과 ‘게임업계 관계자’, ‘게임업계 고위 관계자’, ‘업체 관계자’만 나온다. 넥슨노조 집회를 취재하러 갔는데 넥슨노조나 노조 관계자 얘기는 없다. 배수찬 넥슨 노조 지회장이 집회장에 모인 노조원들에게 “발언을 시작할 때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라고 해야 한다고 (민노총 측으로부터) 교육받았는데 잘 안 된다”고 인사말을 하는 장면만 나온다. 넥슨노조가 왜 600여명이나 모여 집회를 해야 했는지 이유는 없다.

조선일보 기사에 첫 화자로 등장한 이는 인근 회사원 장모(36)씨다. 그는 조선일보 기자에게 “판교에서 이런 전문적인 집회장은 처음 본다”며 “조용한 동네였는데 분위기가 확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게임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이날 집회는 한국 산업계를 뒤흔들어온 민노총이 본격적으로 게임업계에 뛰어들었음을 의미한다”며 “게임 산업이 자동차나 중공업 같은 또 하나의 분규 산업으로 전락할까 두렵다”고 했다.

이 기사에서 게임업체 노동자들 목소리는 없다. 경향신문이 잦은 이직으로 고용불안을 호소하는 노동자 목소리를 담았지만, 조선일보는 “(게임) 개발자의 역량에 따라 연봉이 천차만별인 데다 이직이 자유로워 노조 설립이 쉽지 않은 구조였다”는 기자의 해설로 대신했다. 경향신문에서 극도로 불안한 고용구조는 조선일보에선 자유로운 이직으로 둔갑했다.

▲ 4일자 경향신문 12면(위)과 조선일보 B1면.
▲ 4일자 경향신문 12면(위)과 조선일보 B1면.

'판교 테크노밸리와 민노총'을 엮은 조선일보의 민주노총 폄하 기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9월15일에도 2면 머리기사 ‘테크노밸리에 민노총 상륙… 인터넷·게임社도 노조설립’이란 제목으로 비슷한 시선을 드러냈다. 지난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노조가 경영에 사사건건 개입하기 시작하면 회사의 혁신 노력에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경찰노조, 판사노조, 소방관노조까지 있는 유럽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IT 같은 특정산업에는 노조가 들어서면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문제다. 그렇게 한국 산업계를 뒤흔드는 민주노총이 IT업계에 세운 노조는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 스마일게이트 등 고작 4개에 불과하다. 사실 이들 4개 노조 모두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만든 것도 아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던 IT 노동자들이 3년전 게임 개발 과정에서 잇따라 과로사하는 끔찍한 경험을 겪고 스스로 노조를 만들었을 뿐이다.

▲ 조선일보 지난해 9월15일자 2면.
▲ 조선일보 지난해 9월15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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