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광 온 겨레에게” 

1974년 7월13일자 경향신문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출전했던 정명훈 군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1면에 게재했다. 기사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당시 정명훈 군은 2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에서 1등, 2등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국제적인 대회에서 상위권에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국위 선양’이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해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카퍼레이드가 열렸고, 시청 앞 광장에서는 환영식이 진행되었다.

1970~80년대는 카퍼레이드의 시대였다. 스포츠 대회는 물론이고, 기능올림픽이 있을 때마다 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 카퍼레이드가 열렸다. 에베레스트산을 등정한 등반대 환영 카퍼레이드도 있었고, 지역에서는 간첩선 신고 유공자 포상 카퍼레이드가 열렸다는 기사도 남아 있다. 

▲ 1974년 7월13일 경향신문 1면에 보도된 정명훈 피아니스트 카퍼레이드 기사.
▲ 1974년 7월13일 경향신문 1면에 보도된 정명훈 피아니스트 카퍼레이드 기사.

하지만 198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런 문화는 조금씩 사라졌다. 이는 올림픽이나 각종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국력이 커지면서 과거와 달리 많은 성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2020년대를 앞둔 지금, 만약 이런 일들에 모두 카퍼레이드를 한다면 안 그래도 복잡한 서울 시내 교통 상황을 더욱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3세대 핵발전소인 APR-1400 이 미국 핵규제위원회(NRC)의 설계승인을 따냈다. 3세대 핵발전소로 그동안 NRC 인증을 따낸 것은 웨스팅하우스나 GE 같은 미국 회사뿐이었다. 일본이나 프랑스 업체도 과거 신청했으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APR-1400 설계승인 취득은 원자력계의 큰 경사이다. 미국 수출에 유리한 고지를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의 핵에너지 규제기관인 NRC의 승인을 받았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인정받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APR-1400, 기출력 140만 킬로와트급(1400 MWe) 한국형 신형 가압경수로. 사진=한국전력기술 홈페이지 갈무리
▲ APR-1400, 기출력 140만 킬로와트급(1400 MWe) 한국형 신형 가압경수로. 사진=한국전력기술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이를 두고 보수 언론은 ‘한국형 원전 쾌거’가 ‘찬밥’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국민적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에 한수원이 별도 기념행사 없이 원고지 5장짜리 보도자료만 내었다며 비판하고 있다. 실제 언론을 검색해보면 거의 모든 언론이 NRC의 설계승인 소식을 보도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찬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한전과 한수원, 한전전력기술 등 참여 기업 사장들이 모두 미국 워싱턴까지 가서 NRC 본부에서 기념식을 했음에도 ‘큰일을 쉬쉬하고 있다’라며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어떤 정도로 기념을 해야 ‘찬밥’이 아닐까? 1970년대처럼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거리를 막고 카퍼레이드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뉴스 속보로 기념식을 생중계했어야 할까? 당시 정부는 UAE에 핵발전소를 수출했다며, 이를 발표하는 순간을 생중계했다. 이후에는 UAE 원전 수출 기념 열린음악회 같은 행사를 편성하면서 핵발전소 수출을 축하했다.

그동안 묵묵히 노력을 기울인 노동자들의 노고는 격려해야 한다. 탈핵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방식은 과거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2010년대도 이제 끝나가는 21세기 한복판에서 과거처럼 국가 전체가 떠들썩하게 축하하는 일은 이제 쉽지 않다. 과거처럼 떠들썩한 행사가 없다고 ‘찬밥’이라고 자조하기보다는 달라진 시대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으면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