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일명 박연차 게이트 수사를 지휘하며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 부부에게 2억 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선물했다”는 10년 전 KBS 보도가 국가정보원 작품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2009년 4월 22일 KBS는 메인뉴스에서 노 전 대통령이 명품 시계를 받았고 검찰이 뇌물죄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해 5월 13일 SBS는 한 발 나아가 “권양숙 여사가 1억 원짜리 명품 시계 두 개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노 전 대통령이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10일 뒤인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인규·우병우 등 검찰수사팀 3인은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당했으나 무혐의를 받았다. 2017년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논두렁 시계 사건 관련 조사가 시작되자 이인규 변호사는 9년간 다니던 로펌을 관두고 미국행을 택했다. 여론이 불리해지자 그해 11월 입장문을 내고 논두렁 시계 사건은 국가정보원의 기획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해외도피설’을 부인했다. 

이씨는 “노 전 대통령 수사 중인 2009년 4월14일 국정원 전 직원 강 모 국장 등 2명이 찾아와 원세훈 전 원장의 뜻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이 ‘공모자’가 아니라 국정원 수사개입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노컷뉴스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노컷뉴스

 

▲2009년 SBS '논두렁 시계' 보도.
▲2009년 SBS '논두렁 시계' 보도.

끝내 ‘논두렁’을 누가 창작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 개혁위에 따르면 국정원 전산 자료에서 ‘논두렁’이란 단어가 포함된 문건은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대검찰청은 노 전 대통령 수사 기록 열람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SBS노사 협의에 따라 출범했던 ‘논두렁 시계 보도 경위 진상조사위원회’도 SBS보도에서 국정원 개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당시 취재기자가 대검 중수부 관계자 발언을 중심으로 리포트를 작성했으며, ‘논두렁 시계’ 보도 경위에 대한 의혹 자체는 대검의 자료공개 거부 등으로 명백하게 규명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논두렁’의 출처가 검찰 수사진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이인규씨는 지난해 6월 또 입장을 내고 “원세훈 국정원장이 임채진 검찰총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가 거절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원세훈 원장과 SBS와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볼 때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후 사건의 실체를 찾는 추적이 멈췄다. 결국 키맨(KEY MAN)은 다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었던 이인규씨다. 2일 방송에서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은 미국을 찾아 이인규씨를 만났다. 이씨는 제작진에게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한 결백을 재차 강조하며 “10년 전 KBS 기사는 국정원 작품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며 녹음파일을 언급했다. 사실일 경우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대목이다. 

▲2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화면 갈무리
▲2일 방송된 MBC '스트레이트' 화면 갈무리

이씨는 2년 전 SBS 진상조사위 결과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일부러 정치인을 위해서 갑자기 논두렁을 만들겠나. 검찰이 그렇게 머리가 좋나”라고 반문한 뒤 “검찰이 (언론에) 흘렸다면 밖에 내다 버렸다고 얘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두렁’이란 단어가 검찰에서 나온 게 아니라고 재차 강조한 대목이다. 

앞서 국정원 개혁위는 관련 사건 조사 결과에서 “이인규 전 중수부장은 2017년 7월10일 조사관과 전화 통화 시 논두렁 보도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하여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들이 많다면서 구체적 진술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목에 대해 이인규씨는 “거짓말이다. 나는 국정원에다 얘기해주고 (해외로) 나왔다”고 반박했다. 

그는 해외 도피 중이라는 의혹에 대해 “(지난) 설에 제사 지내러 들어갔다. (한국에) 12일간 있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국정원에서든 검찰에서든 아무도 자신을 부른 사람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에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두고 ‘스트레이트’ 제작진은 “논두렁 시계가 재조명될 경우 화살이 자신(이인규)에게 쏠릴 것을 우려하고 있는 듯 하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인규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구체적 검찰 진술을 직접 공개했다. 그는 “박연차 회장은 권양숙 여사를 통해서 (시계를)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나중에 대통령한테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에 그렇게 되어 있다. 내가 100% 보장한다”고 말했다. 당시 수사책임자가 외부에 공개된 적 없는 검찰 조서 내용 중 일부를 직접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날 방송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은 이인규씨가 주장한 문제의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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