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로 훈장까지 받았지만 일제강점기 밀정으로 활약했던 인물을 추적, 폭로해 큰 반향을 일으켰던 KBS 시사기획창 ‘밀정’이 논란이 되고 있다.

KBS는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 장군 막빈(비서)이었던 이정이 밀정이었다는 사실을 일본 기밀문서로 확인, 보도했다. KBS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밀정 이정의 위패가 그가 밀고했던 피해자 위패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데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는 밀정 이정의 것이 아니라 동명이인의 독립유공자 이정의 위패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정의 유족이라는 이상욱(이정의 손자)씨는 KBS 보도로 피해를 입었다며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도를 정정해달라고 제소했다.

KBS는 공훈록과 보훈처 공식기록인 공적조서에 따라 밀정 이정(이하 이정 A)의 위패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KBS는 방송에서 동명이인 이정(이정 B)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렸다고 전했다.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동명이인 이정이 존재한다. 보훈처가 두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고 서훈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키면서 빚어진 일로 보인다.

KBS는 지난달 13일 시사기획창 ‘밀정’ 1부에서 이정의 밀정 행위를 고발했다. KBS는 일본 기밀문서로 청산리 전투 부대원이 일본에 직접 밀고한 내용을 보도했다. KBS는 1920년 청산리 전투 전 그해 7~9월까지 독립군 동태 등을 기록한 진중일지 저자가 김좌진 장군 비서였던 이정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이 공로로 1963년 건군훈장(독립장)을 받았다. 그런데 이정은 “몇년 뒤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면서 4년 뒤 독립군 밀고자가 됐고, 일본 기밀문서에 확인된 57장의 밀고 보고서를 이정이 썼다고 폭로했다. 밀고는 의열단장 김원봉의 동향, 독립군 군자금까지 독립운동에 치명타를 입힐 내용이다.

그러면서 KBS는 “이정의 위패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돼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밀고했던 이홍래 선생의 위패와 나란히 놓여 있다. 밀고자와 피해자인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이정 B 유족은 “이정은 일제의 고문 끝에 이국땅에서 순교한지 76년인 2019년, 졸지에 나란히 위패로 봉안된 동지 이홍래를 밀고한 밀고자가 되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이정 B 유족은 KBS가 보도한 이정 A는 밀정이 맞지만 현충원 위패는 동명이인인 또다른 독립유공자 위패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 등록된 이정의 본적이다. 함경북도 경원으로 나온다. 그런데 KBS가 공개한 일본 외무성 기밀문서에는 밀정 이정의 원적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면 내곡리’다. 보훈처에 등록된 이정의 본적과 유족 등록 현황에 따르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위패는 밀정 이정이 아니라 대종교 활동으로 순교해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은 이정 B의 위패라는 것이다.

▲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이정의 위패. KBS는 밀정 이정의 위패라고 보도했지만 또다른 동명이인 독립유공자 이정의 유족은 밀정 이정이 아닌 애국지사 이정의 위패하고 주장했다.
▲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치된 이정의 위패. KBS는 밀정 이정의 위패라고 보도했지만 또다른 동명이인 독립유공자 이정의 유족은 밀정 이정이 아닌 애국지사 이정의 위패하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이정 A와 이정 B는 한자와 종교도 같고 활동 시기와 지역도 비슷하다.

대종교 교인 명부인 ‘종문영질’이라는 책에는 두 사람의 이정을 구분해놨다. 대종교는 신앙심에 따라 참교-지교-상교-사교의 단계로 교인을 기록했는데 이정 A가 참교를 받은 날짜는 1922년 3월16일이고, 이정 B가 참교를 받은 날짜는 1918년 11월26일이다. 조준희 국학인물연구소 소장은 “대종교는 1920년대 교인만 40만명이었고 독립운동가들이 교인으로 있었다. 공식 교인 명부를 기록한 책을 보면 밀정 이정과 대종교 활동으로 순교한 이정은 동명이인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정 B는 함경북도 경원이 본적이고, 1895년에 태어나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속성과를 나와 대종교 활동으로 옥고를 치뤄 1943년 감옥에서 순교했다. 유족은 중국 해림시 신안진에서 이정 B의 시신을 유실했고, 1963년 건국훈장 받은 뒤 보훈처가 위패를 국립현충원에 안치했다고 주장했다. 충북 본적으로 1883년 태어나 북로군정서에서 김좌진 장군 비서로 활동하고 우연치 않게 1943년 숨진 밀정 이정과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다.

조준희 소장은 이정 B가 “민족교육에 뜻을 두고 만주에 건너가 훗날 북로군정서 총재가 된 서일의 제자로 북간도 교육자로 활동하다가 대종교 중진이 됐다”며 “1942년 일제가 조선어학회 사건과 동시에 대종교 핵심간부 20여명을 체포해 고문 끝에 10명의 순교자가 발생한 큰 사건(임오교변)이 일어났는데 그 순교자 중 1명이 이정 B”라고 말했다.

이정 B의 유족 이상욱씨는 “90년대 조국을 찾아 귀화해 비록 가난하지만 애국지사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한국 시민으로 바르게 살았다”면서 KBS 보도로 할아버지 위패가 밀정 이정의 위패로 인식돼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1963년 정부로부터 받은 건국공로훈장증도 제시했다.

KBS도 할 말이 많다. 현충원에 위패가 안치되는 경우는 보훈처 공식기록에 따라 독립유공자로 확정되고 유해가 없는 사람에 한해서다.

KBS는 이정의 공훈록(독립유공자공훈록 4권)을 보면 북로군정서, 김좌진 장군의 막빈 등 이정 A의 공로가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현충원에 안치된 위패는 이 공훈록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서훈 이유를 적어놓은 보훈처 공적조서는 1. 북로군정서 모연대장 2. 청산리 전역 후 지방 피신 중 일병 주구손에 피살 3. 대종교 신자 무후 4. 대종교인 검거 고문 옥사(한국독립운동사 p.86) 등으로 돼 있다. KBS는 1번과 2번은 이정 A것이고 3번과 4번은 이정 B 것이라며 보훈처 기록상 동명이인 이정 A, B의 기록이 하나의 공적조서에 뒤섞여 있음을 지적했다.

보훈처 공훈록과 공적조서에 밀정 이정의 행적이 명확히 나와 있어 현충원에 안치된 위패는 밀정 이정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 이정에 대한 보훈처의 공적조서 내용.
▲ 이정에 대한 보훈처의 공적조서 내용.

다만 보훈처가 이정 A와 이정 B의 공적조서를 뒤섞어놓은 것은 보훈처가 소명하고 책임지고 구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KBS는 방송에서도 동명이인 이정의 존재를 알렸다. 공적조서에 나온 정보로 보면 “누군가에게 살해 당했다면서도 또 나중에 대종교 활동을 하다가 숨졌다는 얘기”가 된다면서 “취재진이 입수한 기밀문서에 표기된 이정의 나이와 보훈처에 나온 나이와 9살 차이가 있다. 동명이인의 정보가 한데 뒤섞여서 서훈 심사를 통과했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KBS는 “이런 모순된 내용을 국가 보훈처에 질문했다. 그러나 보훈처는 어떤 자료가 맞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전했다.

밀정 이정을 취재한 이재석 기자는 “현재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이정이라는 분은 A와 B가 합쳐졌고 현충원 위패 역시 A와 B가 결합된 형태”라며 “유족이 재청구를 통해 재심사를 받던지 보훈처가 둘을 구분하는 조치를 하던지 해야 한다. 현충원에 있는 위패가 이정 A가 아닌 이정 B라고 유족이 주장할 순 있어도 보훈처 기록에 A와 B가 뒤섞인 점은 사실이고, 방송에서 충분히 지적했다”고 말했다.

공적조서뿐 아니라 공훈록 원본에도 “1942년에는 대종교의 지도자로서 동경성에 천전을 건축할 계획을 논의하던 중 일경의 대종교 말살정책에 의하여 체포되었으며, 혹독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옥사하고 말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공훈록에도 이정 A, B의 공로가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재석 기자는 “위패는 보훈처 기록에 따른 것인데 두 사람 공적이 섞여있고 그 상태로 위패가 세워져 이정 B의 위패라고만 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며 “공적조서 기록이 뒤섞인 것에 보훈처를 탓할 순 있지만 KBS 보도에는 팩트에 흠결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문제는 국가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주먹구구로 이뤄진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 동명이인 이정의 공적을 구분하지 못했고, 서훈 뒤에도 적극 수정하려는 조치는 없었다. 동명이인 이정의 존재를 알렸는데 유족으로부터 항의받는 KBS가 억울한 이유이기도 하다.

조준희 소장은 “KBS 주장을 들어보면 이정 A의 공훈록이 존재하고, 공적조서에 기록이 있어 일리가 있다”면서 “오히려 이번 기회로 동명이인 이정의 공적을 정확히 구분하고 보훈처가 서훈 과정에서 빚어진 이런 비슷한 일을 전수조사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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