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들이 있다. 강한 유대감과 동료애로 뭉친 절친한 여성들의 집단을 ‘걸 스쿼드(Girl Squad)’라 말하며 SNS에서 해시태그(#GirlSquad)를 단다. 여성 연대는 여성을 주저앉히는 장벽을 허물 힘을 준다. 

책 「걸 스쿼드」를 쓴 작가 샘 매그스(Sam Maggs)는 여성 작가로 책과 만화, 비디오게임 시나리오를 쓰는데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하나씩 쟁취 해온 역사를 소개하려고 이 책을 썼다. 

책 「걸 스쿼드」는 세상을 바꾼 역대 최강 여성팀 20개를 소개한다. 여기엔 제주도 해녀들도 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은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게 해달라고 페르시아 사회와 맞서 싸운 이란 애국여성동맹, 중세 프랑스를 열광시킨 페미니스트 음악가들 트로베리츠도 등장한다. 이들은 배울 권리, 글을 쓸 권리, 연구할 권리 등 지금 현대 여성들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를 온 힘을 다해 얻어냈다. 

▲ 걸 스쿼드 / 샘 매그스 지음·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 걸 스쿼드 / 샘 매그스 지음·강경이 옮김 / 휴머니스트 펴냄

 

가부장제는 문화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를 제한하거나 차단해 남성 지배체계를 유지했다. 남자들은 전통적으로 과학, 의학, 수학을 자유롭게 공부했지만 여자들은 살림과 악기연주, 바느질, 뜨개질, 요리처럼 가정에 필요한 일로 제한됐다. 심지어 19세기 중반까지도 여자들에게 입학 허가를 내주는 현대 교육기관은 없었다.

여성들이 의학을 배우고 과학을 탐험한다는 것을 당시 커다란 충격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대학 교육을 통해 면허를 받은 사람(남자 기독교도)만 의료 활동을 하도록 법으로 제한해 어떤 식으로든 의료 활동을 하는 여자에게 벌금을 물리거나 감옥에 가뒀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여자의 몸은 죄(일종의 종교적 원죄)가 많은 몸’이라고 교육하며 의료적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로 치부해 여성들이 치료 대신 죽음을 택하는 일도 많았다. 1847년이 돼서야 엘리자베스 블랙웰이 미국 여성으로는 최초로 의과대학에 다녔는데 3년 뒤 노예제 폐지론자들과 친여성운동을 벌이는 퀘이커교도들이 모여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설립해 서양의학을 교육받은 최초의 여성 의사들을 배출했다.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은 주류 의과대학(남자들이 배우는)이 소홀히 하는 산부인과, 예방의학에 집중했다.

1750년대 유럽 상류계급 여성들의 삶은 지독하게 지루했다. 이들은 수를 놓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상류층 여성이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 18세기는 역사책에선 이성을 중시하는 시대였지만 ‘지적인 여성’이란 표현을 쓰기는 어색한 시대였다. 남자들은 과학, 철학 등 심오한 토론을 마음껏 하면서 여성을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여겼는데 여성들은 쥐죽은 듯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가 없다. 남성들에게 밉보이는 순간 더 이상 살 곳이 없어졌다. 

1743년 스물다섯살 엘리자베스 몬테규는 “남자들은 자신의 명예와 행복과 재산을 믿고 맡기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고 애쓰다니 무척 경솔하다”고 글을 쓰며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 노력하는데 여자 친구들로 이뤄진 조촐한 문학 조찬 모임을 만들어 철학 문학 등 진지한 대화만을 했다. 1760년 무렵이 되자 그녀의 사교 행사는 격식을 차린 디너파티로 커졌는데 여성들이 직접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이 사교 모임은 이후 ‘블루스타킹’으로 불리며 영국 사회에 엄청나게 히트를 쳐 당대 유명한 지식인 남성도 참가해 다채로운 경험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더 많은 토론을 유도했다. 블루스타킹은 시와 문학비평, 소책자와 책을 쓰고 출판도 했는데 이들은 여성도 남자처럼 심각한 사회문제를 읽고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당대의 문화적 태도를 바꾸는 데 한몫을 했다. 블루스타킹은 다음 세대의 여성 지식인과 작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줬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블루스타킹 운동이 십자군이나 장미전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문화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책, 걸 스쿼트. 지금도 여성들은 말한다. “참지 않아, 지지 않아, 뭉쳐서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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