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 재검토 해달라” 고 언급하면서 대입제도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사회 각계에서 촉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 특혜 입학 등 관련 문제들이 박근혜 정부의 탄핵을 이끄는 주요 이슈 중 하나였고,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입시 관련 의들이 온 정치·사회 메인 뉴스를 도배할 만큼 우리 사회 ‘대학’ 은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이다.

현행 대학 입시 제도의 근간은 1981년 ‘대학별 본고사 폐지’와 함께 마련되었다. 그 후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져 소위 ‘수능 위주의 정시와 내신과 학종 위주의 수시’가 공존하는 지금의 구조가 성립되었다. 문제는 ‘대학 입시’ 이 하나를 위해 유치원 때부터 대학 입학 전까지 모든 교육 정책이 매몰되고 있다는 점이며, 지역·학군, 경제·사회적 편차 등 사회 이슈마저 대학입시에 휘둘리면서 사회 구조가 왜곡된다는 점이다. 또 더 큰 문제는 정작 본 대입의 당사자인 10대들의 이야기는 대입 정책에 거의 담기고 있지 않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사회적 토론과 논의조차 미비하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의 ‘대입제도 공론화’는 숙제만 남기고…

▲ 대입제도 2차 숙의토론회 현장 모습.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대입제도 2차 숙의토론회 현장 모습.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물론 대학입시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묻는 기획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작년 7월, 정부는 대학입시제도와 관련된 숙의토론회를 통해 이 주제에 대한 공론화를 대대적으로 진행한 바 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위원회’는 국민 대토론회, 미래세대 토론회, TV 토론회 등 다양한 시민 참여형 공론화 과정을 거쳐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총 500여 명으로 구성된 시민참여단은 심도 있는 숙의를 진행했고 그들에게 ‘2022 대입 제도 개편 방향’을 물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수능 위주의 정시를 확대하자는 의견이 52.5%로 가장 많았으나, 그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수시(학종) 확대 의견 역시 48.1%로  오차범위를 생각하면 사실상 결론 없는 결론이 난 셈이다. 주요한 의제 중 하나였던 ‘수능 절대평가 도입 여부’에 대해서도 ‘대체로 찬성하나 그 도입 시기를 충분히 늦춰야 한다.’ 는 다소 원론적 결론에 그쳤다. 애초에 현행 대입 제도 안에서만 공론화 의제를 선정하고 한정된 논의 주제 안에서만 토론을 하게 했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상상력을 제한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실제 대입제도개편 2차토론회 참가한 한 학부모에 따르면 “대입 개편 공론회 자체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분들이 계시고, 절대평가가 뭔지 상대평가가 뭔지도 모르고, 우리가 뭘 결정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있었다. 또 시민 토론이 그냥 돌아가면서 발표만 하는 거지 거기에 대해 반문을 하는 등의 토론도 없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 입시 제도를 결정한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고 아쉬움을 남겼다. 

정시와 수시를 넘어, 그 이상의 대학입시는 없을까?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장을 만드는 바꿈세상을바꾸는꿈(바꿈)에서는 대학 입시 제도의 문제를 살펴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8월 31일 토요일, 스페이스 노아에서 ‘함께 상상하는 대학입시’ 공론장을 개최했다. 무엇보다 이번 공론장  참가자 60여 명 중 절반 이상은 10대 학생들로 채워질 만큼 대입제도의 당사자로서 10대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 전달되어야 한다는 열기가 있었다. 

김연수 바꿈 상임이사는 앞서 지난 공론화 과정의 한계를 언급하며 이제 더 큰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정해진 틀 안에서 논의될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그 이상의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학벌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돈과 계급이 대입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만들 수 없을까요?” 라며 대학입시와 관련된 넓은 질문을 던졌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입시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자 자연스럽게 반대로 대학을 안 가는 것을 어떨까라는 고민도 나왔다. 청년길찾기연구모임 사이랩의 이혜민씨는 “국영수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교실에 자신의 꿈과 미래를 맡기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의문이 들었어요. 저는 자발적으로 대학을 포기했고 지금은 ‘청년인생설계학교’, ‘사이랩’ 등 다양한 갭이어 활동(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봉사, 교육, 인턴, 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체험하며 진로를 탐색하는 기간)을 모색하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진행하고 있고요.” 라며 대학입시를 거부한 본인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새로운 대입 제도를 상상하기 위한 4가지 질문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김원석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대학 입시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논하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며 바꿈 공론장에서 대학 입시에서 다뤄야 할 핵심적인 의제 4가지를 던졌다. 

첫 번째 의제는 “누가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가?” 이다. 김 연구원은 “대학은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에게 학생 선발권을 완전히 몰아줘서는 안 된다. 특히나 사립학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훨씬 더 많은 한국의 특성상 대입 선발 제도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에 대한 평가와 선발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불가능하며 이는 획일화된 교육을 낳을 우려가 있으므로 대학에 자율권을 부여하여 단점을 최소화해야 한다.” 며 이 부분에 대한 참가자들의 논의를 요청했다. 

두 번째 의제로는 “언제 학생을 선발해야 하는가?” 이다. 김 연구원은 “만약 대입 시험이 일정의 자격 시험이 된다면 굳이 고등학교를 나올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선발 시기 역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선별시험이 된다면 모든 학생이 동등하게 시작해야 하므로 특정한 시기에 일괄로 시험을 봐야 한다.” 며 어떻게 할지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세 번째 의제는 “어떻게 선발해야 하는가?” 이다. 김 연구원은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걸 운영하는 주체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확신할 수 없다면 수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수능이 야기한 사회적 병폐를 생각하면 수시든 정시든 어느 한쪽으로 급격하게 치우는 것을 옳지 않다.” 고 정시와 수시 선발 방식의 장단점을 비교했다.

마지막 의제는 “왜 선발하는가? 왜 대학에 가야하는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이다. 김 연구원은 “대입과 관련해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서는 대학입시 논쟁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고 강조했다. 

학종의 다양성 가치 인정해야 vs 현행 수능을 대체할 평가 수단 아직 없어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이 주최한 대학입시 공론장에 참가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박재현 군은 “현행 학생부종합전형이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취지만큼은 학생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고 충분히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 대학 입시를 준비할 수 있는 입시 제도인 학종이 점차 확대되면 좋겠다.” 고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마찬가지로 입시를 준비 중인 고등학교 3학년 한규연씨는 “학종의 본래 취지인 진로 선택의 다양성 추구가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물리 과목을 학습하고 싶지만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인원이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내신 관리를 생각해 어쩔 수 없이 듣고 싶지 않은 다른 과목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라며 현행 수시 제도의 한계를 꼬집었다. 

한편, 얼마 전 대학입시를 마치고 현재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는 안씨는 “현행 수능의 획일적 평가 방식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운명이 판가름 나는 평가 구조에는 분명 문제가 많지만, 그 어떤 평가 도구를 가져오더라도 현행 수능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정시 확대를 지지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고 3학생은 “수능이 폭력적 방식의 줄세우기지만 지금처럼 누구는 특혜 받아 대학을 간다면 가장 공정한 방식대로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재벌들도 수능 못 봐서 재수하고, 돈 많아도 사법고시 못 붙으면 법조인이 못 되었다고 하던데, 지금은 부모 잘 만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현실에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 라며 현행 대학입시에 문제를 강조했다.

함께 그리는 새로운 대학입시, 시민들의 선택은?

이어 단순히 정시냐 수시냐를 넘어 대입제도의 주체와 시가 선발 방법 등에 대해 다양한 대안들이 쏟아졌다. 대입 학생 선발의 주체에 대해서 논의한 시민들은 “정부나 대학이라는 단순 선택을 넘어 지금의 대학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과 ‘학술적 독립’ 이다.” 라며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특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학생 선발의 주체가 누가되던 공정한 입시가 가능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입 선발 시기에 대해서도 수능 시험 주기를 현행 ‘1년 1회’에서 ‘1년 4회’로 확대하는 방안도 나왔다. 다만 그 시기 역시 학생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또 고등학교 진학 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찾는 교육이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되어 학생이 주체적으로 대학 입학을 준비할 수 있는 구조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생선발 방법에 대해서도 △어떤 평가 방식이든 국영수 이외의 전공과 적성에 맞는 실습 교육 및 개별 평가 방식이 정착되어야 한다. △다양한 진로를 개발할 수 있는 ‘비교과’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되 특목고와 일반고를 따로 경쟁시켜 비교과 확대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자. △현역과 재수생을 분리해 평가함으로써 무한히 재수생이 양산되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핵심 의견으로 “근본적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유형마다 대학에서 배울 과목을 고등학교 때 미리 체험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한다.” 는 의견을 바탕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필요성도 대안으로 대두되었다. 

이외에도 ‘대학을 안 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객관식 시험인 수능이 아니라 실제 학생의 의지와 노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실기전형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 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업무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질을 중등 교육 단계에서 모두 갖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갖춰야한다.” 는 의견도 강조되었다. 

대학과 공정성, 이를 위해 시민들의 참여가 필요해

새로운 대안대학을 기획하고 있는 ‘이상한 대학교’ 에 임시총장 고준우씨는 “대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하나는 대학=더 나은 삶(더 높은 경제력, 안정된 삶)의 보장=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등식 아래에서 누구에게 이 혜택을 줄 것인지를 두고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공정성이다. 오늘 공론장에서 나온 △시험을 매년 여러 차례 시행하여 불운이 개인의 실력을 가리지 않게 하자 △계열별(인문계, 이공계, 예체능계) 경쟁을 공정하게 하기 위한 시험제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 등이 이러한 공정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또 다른 하나는 ‘대학=계층이동의 사다리’라는 공식 자체를 문제시하는 공정성이다. 안정된 삶은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보장될 수 있으며, 대학은 계층이동을 위한 인증기관으로서의 성격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야 하며 이때 대학의 강화된 교육기능을 위한 평가와 대입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소득 보장 △국영수 중심의 객관식 수능시험제도에서 전공 중심의 논술식 개별평가제도의 구축으로 나아가자는 아이디어의 밑바탕으로 보인다. 

이 두 공정성과 대학의 두 면모에 기반을 둔 아이디어는 각기 모두 대학과 그를 둘러싼 현실의 중요한 지점들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기에 연령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시민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시민참여 공론장이 확대 발전되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기존 대학을 넘어 새로운 대학을 상상하자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 사진=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바꿈에서 기획하고 진행하는 ‘당신과 내가 함께 그리는 대학’ 대학 공론장은 총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그 첫 행사가 바로 지난 31일 개최된 ‘함께 상상하는 대학입시’ 공론장 이었고, 2단계인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은 오는 9월 7일 토요일 서울 시청역 부근 스페이스 노아에서 진행된다. 대안대학 공론장은 기존 대학의 문제를 바탕으로 시민들이 직접 대안 대학을 설계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마지막 3단계인 ‘대학교육 대안 슬램’ 은 10월에 예정되어 있으며, 1단계와 2단계의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대학 중심 교육에 비판과 문제를 지적하고 시민 참여와 토론을 통해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 기획을 경연 방식의 공론장으로 기획 될 예정이다. 이렇게 진행된 모든 공론장의 이야기는 ‘시민이 그리는 대학’이라는 주제로 2차 콘텐츠로 제작되며, 향후 도서 발간도 기획되어있다.

특히 7일 예정된 ‘함께 만드는 대안대학’ 공론장에서는 △기성 제도권 대학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대안대학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실제 사례들을 소개함으로서 대안대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이를 통해 대안대학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며 어떻게 실험해 볼 수 있을지 시민들이 직접 대안대학을 구상해보는 숙의 토론 공론장을 진행하고 △향후 대안대학 이상한대학교 프로젝트에 시민들의 기획을 반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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