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MBC(사장 신원식)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아나운서 성차별 문제를 이유로 진정서를 제출한 프리랜서 아나운서 2명을 각각 한 개 프로그램만 남겨두고 진행하던 대다수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또 대전MBC는 신입 프리랜서 뉴스진행자와 MC를 각각 2명과 1명 모두 3명을 채용했다. 문제제기한 당사자들은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정당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요청했으나 회사는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개편은 계절별로 또는 필요에 의해 수시로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이들 아나운서는 인권위 진정 후 이뤄진 보복성 개편이라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 사원증, 김지원 대전MBC 아나운서 사원증
▲ 왼쪽부터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 사원증, 김지원 대전MBC 아나운서 사원증

 

앞서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 2명은 지난 6월18일 대전MBC를 상대로 고용 형태 등 아나운서 성차별 문제를 이유로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같은 날 본지 보도도 함께 이뤄졌다.

대전MBC에는 아나운서 총 5명이 있었다. 회사는 남성 아나운서 2명은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 3명은 프리랜서로 고용했다. 여성 아나운서들은 1차 서류 전형(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동영상 제출), 2차 카메라 테스트(앵커멘트, 단신, 라디오 오프닝)와 면접 전형(편성제작국, 보도국 실무진), 3차 최종면접 전형(편성국장, 보도국장) 등을 거쳐 대전 MBC에 입사했다.

이 같은 채용 절차를 걸쳐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입사했지만, 대전MBC는 고용 형태가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여성 아나운서들에게는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해 주지 않았다. 유지은 아나운서와 김지원 아나운서는 각각 2014년 4월과 2017년 1월에 입사했다. 두 아나운서는 모두 2년 이상 대전MBC에서 일했다.

▲ 유지은 아나운서는 대전MBC 측 업무명령에 따라 ‘대전 문화방송 채널 노래모음 영상 촬영’을 별건 출연료 없이 수행하기도 했다. 사진=대전MBC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 유지은 아나운서는 대전MBC 측 업무명령에 따라 ‘대전 문화방송 채널 노래모음 영상 촬영’을 별건 출연료 없이 수행하기도 했다. 사진=대전MBC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고용 형태는 다르지만, 남성 아나운서들과 여성 아나운서들은 동일 노동을 했다는 게 여성 아나운서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2018년 1월 기준 정규직 남자 아나운서와 여성 아나운서 2인의 노동시간은 큰 차이가 없었다.

정규직 남자 아나운서는 TV 생방송 아침이 좋다(주 5회), TV 이브닝뉴스(주 5회), 라디오 17시 뉴스(주 5회), 라디오 희망의 민들레(주 1회),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PD 등 총 5개 프로그램을 맡았다.

김지원 아나운서도 TV 뉴스데스크(주 5회), TV 생방송 아침이 좋다(주 5회), TV 건강플러스(주 1회), 라디오 MBC 초대석(주 1회), 라디오 21시 뉴스(주 5회) 등 총 5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TV뉴스투데이(주 5회), TV 토크 앤 조이(주 1회),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주 7회), 라디오 15시 뉴스(주 5회) 등 총 4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 지난해 1월 기준 대전MBC 아나운서 근무 현황.
▲ 지난해 1월 기준 대전MBC 아나운서 근무 현황.

 

하지만 동일한 임금과 처우는 받지 못했다. 회사는 기본급과 연차휴가, 임금 등 여성과 남성 아나운서를 차별했다. 실제 6년차인 유씨와 3년차인 김씨는 프로그램 횟수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고 주급으로 돈을 받는다. 2018년 신규 입사한 남성 아나운서인 남씨보다 100만원 이상 적은 월급을 받아 왔다. 유씨나 김씨는 프로그램이 폐지되기라도 하면 임금 폭락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유급연차 휴가도 받지 못했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인권위 진정이 접수되자, 대전MBC는 김지원 아나운서에게 약 한 달 뒤인 7월8일 라디오 부분개편이라는 명분으로 ‘3830 라디오 상담실’과 ‘15시 라디오 뉴스’ 하차를 통보했다. 7월15일에는 유지은 아나운서도 ‘21시 라디오뉴스’ 폐지 통보받았다.

보도국은 8월5일 돌연 ‘프리랜서 뉴스 진행자’ 채용공고를 공지했다. 회사는 남자와 여자 각각 한 명 모두 2명을 채용했다. 이후에도 하차 통보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8월23일 ‘뉴스데스크’ 하차 통보받았다. 김지원 아나운서는 8월26일 ‘생방송 아침이 좋다’ ‘건강플러스’ 등에서 하차 통보받았다.

▲ 대전MBC는 지난달 5일부터 9일까지 새로운 프리랜서 뉴스진행자 채용을 진행했다. 사진=채용공고 페이지화면 갈무리
▲ 대전MBC는 지난달 5일부터 9일까지 새로운 프리랜서 뉴스진행자 채용을 진행했다. 사진=채용공고 페이지화면 갈무리

 

현재 유지은 아나운서는 ‘라디오 정오의 희망곡’ 프로그램 진행을, 김지원 아나운서는 ‘라디오 오후의 발견’ 프로그램 게스트로 출연한다. 각각 한 개의 프로그램만 남았고, 임금 폭락에 시달리고 있다. 유 아나운서는 다음 달부터 100만원대 월급을, 김 아나운서는 이마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지원 아나운서는 미디어오늘에 “회사 내 불합리한 차별 문제에 대해 회사와 대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회사 측의 일방적인 하차 통보였다”고 말했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6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대전MBC 뉴스를 진행했다. 생방송 직전 뉴스데스크 하차 통보를 받았다. 언론사의 민낯을 마주하는 이 현실이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밝혔다.

▲ 대전MBC 정오의 희망곡 진행자 유지은 아나운서 포스터
▲ 대전MBC 정오의 희망곡 진행자 유지은 아나운서 포스터
▲ 2017년 대전MBC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김지원 아나운서 포스터
▲ 2017년 대전MBC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김지원 아나운서 포스터

 

대전MBC 측은 ‘개편은 계절별로 또는 필요에 의해 수시로 하므로 하차 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신아무개 대전MBC 보도국장은 지난달 28일 미디어오늘에 프리랜서 아나운서 2인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유를 두고 “저희는 최근 프로그램 개편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며 “수시로 프로그램을 쇄신해야 하고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시청자들이 뭘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늘 프로그램 개편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신아무개 보도국장은 “그런데 공교롭게 이들이 기사 난 것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 같다. 저는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할)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신규 프리랜서 진행자 및 MBC 등 총 3명을 채용한 이유에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르면 인권위에 진정을 이유로 불이익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노무사는 “인권위 진정인 2명에게 동시다발적으로 프로그램 하차를 통해 임금 대폭 삭감을 겪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 진정 이후 벌어진 일련의 행위는 불법행위로 보인다. 인권위에 이와 같은 사항을 추가로 보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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