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방송사들이 최근 경영난을 이유로 프로그램을 돌연 결방‧폐지하거나 구조조정 논의에 군불을 지핀다. 이들 방송사의 정책결정이 공공성과 현장 노동자 뜻을 거스르고 진행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지난 30일 성명을 내 “현재 방송사들이 진행하듯 방송노동을 생각하지 않는 일방 구조조정은 결국 장기적으로 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KBS는 지난 7월부터 일부 프로그램을 결방하거나 폐지에 들어갔다. 1000억원 적자 폭을 이유로 내놓은 비상경영체제의 일환이다. MBC는 3년째 적자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본사와 자회사 사이 구조조정 논의가 흘러나온다. EBS는 일산으로 본사를 옮긴 뒤 재정난이 심해져 ‘딩동댕 유치원’ 등 장수 프로그램 제작이 잠시 중단됐다.

한빛센터는 “현재 방송사들이 진행하는 구조조정은 방송 제작 환경에서 철저히 약자의 위치에 놓여 있는 방송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프로그램이 결방되거나 폐지되면 비정규직‧프리랜서는 당장 급여를 받지 못하는 등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특히 한빛센터에 따르면 KBS는 비상경영계획에서 순천‧목포 등 7개 지역국 핵심 기능을 광역거점으로 이전하는 안을 내놔, 지역국 방송노동자 항의가 거세지고 있다.

한빛센터는 KBS, MBC, EBS가 당초 방송 프로그램 내용과 제작노동 환경에서 공영방송의 소임을 방기해왔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사들 민영방송이 철저히 광고수익과 시청률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과 달리 소중한 전파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측면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제작비 절감에만 신경 쓰고, 노동자 인권과 노동환경에 대해선 오랜 시간 방기해왔다”고도 했다.

▲KBS, MBC, E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EBS
▲KBS, MBC, EBS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EBS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이 무용지물로 전락할 가능성도 제기했다. 지상파3사와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부는 지난 6월 ‘지상파 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합의안은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표준근로계약서와 표준인건비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방송사-제작사-스태프 대표가 각 드라마 제작 현장마다 ‘종사자협의체’를 꾸린다는 내용도 담았다.

성상민 한빛센터 기획팀장은 “드라마 노동환경을 둘러싸고 현장 각 주체가 머리를 맞대기로 합의한 상황인데, 회사는 현재 현장의 의견을 듣지 않는 일방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가이드라인 의의가 얼마나 지켜질지 불안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성상민 기획팀장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해 방송사가 위기에 놓인 건 사실이나, 대처법이 ‘프로그램 없애기’와 ‘통폐합’이 전부여선 안 된다. 이들 방송사는 오히려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역할부터 포기하고 있다. 민간기업과 다를 바 없는 일방 정리해고식 소통”이라고 꼬집었다. 

한빛센터는 “방송사들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넘어, 방송 노동자를 비롯해 방송을 제작하는 모든 이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는 KBS 비상경영을 두고 지난달 성명을 내 “KBS 비상경영의 실체는 프리랜서 생계를 위협하고 방송사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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