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2일, 일본 만화계에서 비보가 들려왔다. 1990년대 많은 순정만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 ‘타로 이야기’를 비롯해 ‘그와 그녀의 XXX’ 등 독특한 센스가 담긴 만화로 꾸준히 이목을 모았던 만화가 ‘모리나가 아이’(森永あい) 작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한국에도 전해진 것이다. 유족들의 요청으로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고, 작가 본인 역시 생전 자신의 나이를 공개하는 것을 꺼렸기에 어떻게 그가 세상을 떠났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추측해볼 수 있는 요소는 하나 있다. 바로 ‘연재 이력’이다.

1993년 정식으로 잡지에 데뷔하여 작품을 그려온 모리나가 작가는 1995년부터 연재한 ‘타로 이야기’를 만화잡지 ‘아스카’에 매달 연재하여 2000년에 마무리 지은 이후, 2001년부터는 곧바로 ‘그와 그녀의 XXX’의 월간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모리나가 작가는 매달 연재하는 작품의 수가 갑작스럽게 늘어났다. ‘그와 그녀의 XXX’를 연재하면서 또 다른 작품을 월간으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와 그녀의 XXX’가 연재를 시작해서 2013년 완결이 날 때까지 작가는 단 한 번도 월간 동시 연재를 그만두지 않았다. 작품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작품을 기획해서 동시 연재하는 일을 반복해서 이어나갔다.

하지만 신체에 무리라도 왔던 것일까. ‘그와 그녀의 XXX’가 2013년에 완결되고, 최후의 동시 연재작이었던 ‘키라라의 별’까지 2015년에 마무리를 지은 뒤 모리나가 아이는 만화계에서 모습을 감췄다. 모리나가 아이의 코믹하면서도 조금씩 독자들을 빠져들게 만든 특유의 로맨스 연출을 좋아하던 팬들은 작가가 하루빨리 새 연재를 시작하길 바랐다. 그러나 오랜 기다림을 깨고 돌아온 소식은 작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모리나가 아이의 인기작 '타로이야기'.
▲모리나가 아이의 인기작 '타로이야기'.

모리나가 아이 작가는 그저 운이 좋지 않아서, 아니면 평소에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아서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일까. 그러나 만화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거나, 중병에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몇몇 인기 만화가가 급환으로 인해 활동을 무기한 중단하거나 별세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사례는 2011년에 세상을 떠난 만화가 故 김지은의 사례이다. 모리나가 아이 작가와 같은 해인 1993년 데뷔한 김지은 작가는 격주간 잡지나 월간 잡지를 위주로 꾸준히 창작 활동을 계속 이어나갔다. 2000년대 이후 김지은 작가의 주된 활동 무대였던 만화 잡지가 사실상 몰락에 놓인 순간에서도, 작가는 잡지를 통한 작품 발표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김지은 작가에게 갑작스럽게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병원 진단 결과 그녀가 대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치료를 하고자해도 이미 대장암이 4기에 접어들어 완전히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작가는 그런 와중에도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작품 연재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김지은 작가는 학산문화사 ‘파티’에 연재하던 ‘틴 스피릿’을 채 마무리까지 풀지 못한채 2011년 6월 2일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김지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일 주일이 지나서는 또 다른 비보가 전해졌다. 2011년 6월 9일, ‘제못대로 함선 디오티마’나 ‘어색해도 괜찮아’ 같이 특유의 센스로 많은 매니아 팬들을 보유하던 만화가 권교정 역시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대장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작가 한 명이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또 다른 작가 한 명이 같은 질환에 걸렸다는 소식은 만화계 전반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다행히 권교정 작가는 아직까지는 건강을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올리며 많은 팬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다. 비록 오랜 항암치료와 다른 신체 부위로 계속 암이 전이되며 몸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2019년 6월부터는 자신의 근황을 다룬 에세이 만화 ‘GYO의 Real Talk’의 부정기 연재를 시작하며 오랜 투병 끝에 다시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팬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팬들이 안도하기도 잠시, 이번에는 또 다른 작가의 비보가 들려왔다. ‘오디션’과 ‘언플러그드 보이’로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웹툰으로 연재처를 옮긴 이후에도 ‘드레스 코드’와 ‘좋아하면 울리는’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천계영 작가가 더 이상 손으로 만화를 그릴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천계영 작가는 2014년부터 다음 웹툰에 연재하던 ‘좋아하면 울리는’의 연재를 2018년 3월 건강상의 문제로 장기간 연재를 중단한 상태였다. 이후 2018년 6월, 천계영 작가는 팬들에게 보내는 안부인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을 전달했다. 바로 손가락의 퇴행성 관절염이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연골이 일찍 닳아버려” 찾아온 손가락 관절염으로 인해 천계영 작가는 키보드나 마우스를 쓰는 것은 물론 “작은 물병의 뚜껑을 따거나 칫솔을 쥐는 일조차 힘들 정도로”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된지 오래였다.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
▲천계영 작가의 '좋아하면 울리는'.

이후 다시 오랫동안 작품 소식이 들리지 않던 천계영 작가는 2019년 6월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작품을 그리는 모습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보내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오랜 시간 동안 손가락의 문제로 작품의 연재가 중단된 마당에서 많은 팬들이 천계영 작가가 어떻게 작품을 다시 그릴 수 있을지 궁금해 하였다. 기적적으로 손이 다시 회복된 것은 아닐까 추측하던 팬들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퇴행성 관절염은 회복되지 않았고 이후로도 다른 질병들이 겹치며 작가는 더 이상 손으로 만화를 그릴 수 없는 사실을 토로했다. 대신 천계영 작가는 음성 인식을 비롯한 컴퓨터의 장애인용 기능을 매만져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손으로 그리는 이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지만, 일찌감치 1990년대부터 컴퓨터를 통해서 만화를 그리던 작가는 다시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행복해 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을 뿐, 만화가들은 무수한 질병에 시달려 작품 활동을 포기하거나 끝내 사망에 이르는 일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단순히 운이 없어서 병에 걸리는 것일까, 만화가들이 제대로 건강을 관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만화가’라는 직업군의 노동 환경이 만화가들을 아프게 만드는 길로 이끄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실태조사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그저 만화계 커뮤니티 내부에나 팬들 사이에서 만화가들 다수가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뿐, 얼마나 몸이 좋지 않으며 어떤 이유로 건강을 상하게 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역학 조사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만화계 실태조사를 통하여 만화가 본인들이 자신들의 건강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지난 6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8년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의하면 총 558명의 작가 중 43.7%가 ‘과도한 작업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인해 창작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답변을 하였다. 동시에 만화가들은 직업적 특성상 직장 건강보험 대신 매달 부담하는 보험료가 높은 지역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몸이 아파도 치료를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함께 보냈다.

웹툰이 정착되기 전 잡지 연재가 주류인 상황에서도 만화가의 건강 문제는 수면 밑에서 심심치 않게 제기되던 문제였다. 특히 주간 연재에 가까울수록 매주 가해지는 마감의 압박은 결코 적지 않다. 그나마 일본의 경우에는 작가에게 매회 많은 고료를 지급했지만, 이 고료는 결코 작가를 위해 지급되는 돈이 아니었다. 잡지 내부의 경쟁 구도를 구축하며 매주 연재하는 작품의 수준이 출판사는 물론 독자들도 충분히 만족할 정도로 높기를 원했다. 인기가 떨어지는 작품은 곧바로 작품 연재가 중단되는 상황에서, 작가들은 강압적으로 출판사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지급받은 고료로 어시스턴트를 고용하여 정해진 주기마다 작품을 그리는 것이 보편적인 행보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1989년 ‘아이큐 점프’가 창간되며 본격적으로 일본의 만화 잡지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정작 고료의 수준까지 같게 만들지는 않았다. 시장이 일본만큼 크지 않은 것은 물론, 만화 출판사의 자본 상황도 일찌감치 대형 자본으로 입지를 단단하게 구축과는 일본과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해진 간격마다 작품을 연재하고 잡지 내에서 다른 작품과 경쟁해야 하는 것은 똑같지만, 지급되는 고료가 낮은 상황에서 일본처럼 전문적인 어시스턴트를 구하는 작가는 극히 일부였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작가들은 어시스턴트를 고용하는 대신 사실상 무급 수준으로 일을 도와주며 배우는 ‘문하생’을 선호했다.

이러한 문제는 출판 만화가 급격하게 몰락하고, 웹툰이 대두한 2019년 현재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출판 시장의 몰락기에 비교하면 고료는 그나마 상승한 편이지만, 작업 강도는 잡지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상승했다. 매회 페이지 제한을 두었던 잡지와 달리 웹툰은 특별한 분량 제한도 없고, 주간-격주간-월간으로 잡지 발간 간격이 정해져있던 과거와 달리 일부 작품을 제외한 대다수의 작품은 모두 주간 연재를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에 웹툰은 암묵적으로 컬러 삽입이 기본인 만큼 세부적인 드로잉을 마친 이후에도 적절한 위치에 색을 지정하고 채색하는 일까지 마쳐야 한다. 고료는 소폭으로 증가했지만, 정작 업무의 강도는 대폭 증가한 셈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점차 건강 악화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만화가의 수는 계속 늘어나지만, 작가를 고통의 길로 몰아 넣는 작품의 분량과 연재 주기에 대한 이야기는 활발히 공론화가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가 창설 초기부터 10일 간격 연재를, ‘투믹스’가 월간 연재를 시도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소수의 행보로 그치고 있다. 만화가들의 권리를 제대로 규정짓지 못한 마당에서, 시장의 확대는 곧바로 작가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플랫폼의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작가들이 이전보다 더욱 많이, 더욱 고된 창작 노동을 하는 상황들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출판 시장의 침체와 함께 몰락의 길에 놓였던 한국 만화는 2019년 시장 규모 1조원을 논하는 단계로 커졌지만, 정작 그 ‘1조원의 시장 규모’는 대다수의 만화가들에게는 너무나도 먼 존재가 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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