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9일 2년6개월만에 ‘국정농단’ 사건을 판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원심판결을 모두 파기했다. 각각 이유는 달랐다.

30일 주요 언론은 이 판결을 모두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박 전 대통령에겐 뇌물 혐의를 다른 혐의와 분리하지 않아 선고한 내용을 파기환송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우 삼성이 최씨 측에 제공한 말 세 마리가 ‘뇌물’이고 대통령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다는 점이 인정됐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는데 실형을 선고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최순실씨는 대기업들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출연금을 요구한 것이 강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돼 역시 파기환송 판단을 받았다.

판결 다음날인 30일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다뤘다. 눈에 띄는 것은 한겨레와 한국일보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 첫 문장을 “대법원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대한민국 최고 정치권력의 ‘사익’과 최고 재벌의 ‘욕망’이 얽힌 정경유착의 결과라고 판단했다”고 썼다. 한국일보의 1면 머리기사 첫 문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씨, 그 어느 누구도 웃지 못했다”였다.

▲30일 한겨레 1면.
▲30일 한겨레 1면.

다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일부 언론은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프레임으로 대법원 판결을 바라봤다. 동아일보는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 프레임과 함께 삼성이 권력에 의해 뇌물을 줬다는 ‘삼성 피해자론’도 언급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만평 등에서 일부 언론의 이런 모습을 꼬집었다.

▲30일 한겨레 만평.
▲30일 한겨레 만평.

다음은 30일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대법 ‘삼성, 승계 부정청탁’ 이재용 뇌물액 50억 늘었다”
국민일보 “이재용 ‘뇌물’ 추가…다시 위기”
동아일보 “‘말 3마리 최순실 소유’ 뇌물액수 늘어”
서울신문 “대법 ‘말 3필은 뇌물’ 이재용 실형 위기”
세계일보 “‘삼성 말 3필은 뇌물’ 다시 뒤집힌 판결”
조선일보 “대법 ‘말 3필도 뇌물’ 이재용 위기”
중앙일보 “이재용 집유 선고한 2심 파기환송”
한겨레 “‘이재용,승계위해 부정청탁’ 정경유착 심판했다”
한국일보 “‘국정농단’ 다시 2심으로…뇌물액 늘어난 이재용”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 결정이 나자 이날 삼성전자는 입장문을 발표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어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상황 속에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도움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삼성이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이러한 삼성의 입장을 언론을 어떻게 봤을까.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대기업들은 정경유착이라는 구시대적 행태와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며 삼성의 입장을 비판하는 문장을 넣었다.

한겨레는 2면에서 삼성의 입장 발표를 전하는 동시에 “삼성이 ‘국가 경제 이바지’로 상징되는 자신의 역할을 강조한 것은 파기 환송심에서 본격화할 형량 다툼에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로 되풀이 된다”며 “과거 삼성 쪽은 이 부회장이 막강한 권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불법을 저질렀다며 ‘피해자론’을 강조해왔으나 대법원에서 경영권 승계라는 뇌물 대가를 인정한 만큼 이제는 ‘역할론’이 더 절실해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2면 기사에서 이번 선고로 인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선고가 어렵게 됐다고 분석하는 기사를 내놨다. 

▲30일 경향신문 2면.
▲30일 경향신문 2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는 언론도 있는 반면에 여전히 ‘삼성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프레임을 적용해 사설 등을 쓴 언론도 있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매일경제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삼성의 사령탑이 비상경영이 아니라 법정 싸움에 온 정력을 소비해야 하게 됐다”며 “만에 하나 삼성이 흔들리게 되면 누가 그 뒤를 감당할 수 있나. 세계에 명멸한 수많은 기업은 모두 한때는 전성기를 구가했었다”고 썼다.

▲30일 조선일보 사설.
▲30일 조선일보 사설.

동아일보 역시 2면 기사 “재계 ‘삼성 경영활동 위축 우려…경제 악영향’”에서 “이번 판결이 삼성뿐 아니라 주요 대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썼다. 이 기사에서는 ”치열한 글로벌 기술 전쟁 속에서 총수 공백으로 투자 시점 등을 놓치게 되면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익명의 재계 고위관리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삼성 피해자론’ 프레임도 적용해 사설을 썼다. 동아일보는 “말 3마리와 영재센터 후원금은 뇌물로 보더라도 기업 측이 권력을 움직인 적극적인 뇌물이라기 보다는 권력의 압박에 따른 기업 측의 수동적인 뇌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경제신문인 매일경제도 조선일보와 비슷하게 이날 사설에서 “삼성전자가 위기에 몰리면 한국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며 “정부는 삼성의 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칠 충격파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까지 썼다.

▲30일 매일경제 사설.
▲30일 매일경제 사설.

이런 언론의 행태를 꼬집은 만평도 있었다. 한겨레의 그림판은 이재용 부회장 캐릭터가 안대를 쓰고 누워있는데 언론인들이 ‘파기 환송 실형 가능성 높아져’라는 뉴스를 던지고 ‘위대한 영도력으로 위기 탈출’이라는 신문을 책상에 놓아둔 만평을 공개했다.

경향신문의 ‘장도리’에서도 ‘재벌’이라고 써진 옷을 입은 사람이 “구해주세요”라고 하자 언론인들이 “경제에 큰 타격”, “나라경제 큰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모습의 만평이 실렸다.

▲30일 경향신문의 장도리 중 일부.
▲30일 경향신문의 '장도리' 중 일부.

일명 ‘조중동’이라고 불리며 한국 사회의 기득권에 유리한 논조로 기사를 써왔다고 분류된 ‘보수언론’의 하나인 중앙일보의 논조는 다소 다르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부패’ 경고한 대법원 판결”에서 “대법원 판결은 뇌물 범죄를 사회 일반, 즉 시민들의 상식적인 눈으로 판가름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고 썼다.

다만 중앙일보는 이 판결의 의미를 “권력형 부패에 엄정한 잣대를 댄 이번 대법원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비단 박근혜 정부에 머물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인 동시에 현재 살아있는 권력, 앞으로 출현할 권력에 대한 경고”라며 현 정권에 대한 경고를 포함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