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 종료 2일 전인 29일 선거제 개혁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4월 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지 121일, 지난해 12월 선거제 개혁법안 원칙에 대한 여야 5당 합의로부터 258일 만이다. 이에 반발한 자유한국당이 다시 국회 보이콧 조짐을 보이면서 이날 예정됐던 국회 의사 일정들이 줄줄이 취소됐다.

정개특위는 이날 여야 4당이 합의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재석 19명 중 찬성 11명으로 의결했다. 법안 이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최장 90일 심사를 거쳐 11월 말에는 본회의 안건으로 오를 수 있게 됐다. 국회법상 패스트트랙 절차는 소관 상임위 180일→법제사법위원회 90일→본회의 60일 이후 표결 순이다. 각 단계별 기간은 최대 심사 기간으로 법제사법위 표결이나 국회의장의 본회의 부의·상정이 바로 이뤄질 경우 단축될 수 있다.

이른바 ‘심상정안’은 정당이 얻은 표와 실제 의석수 비율이 불일치하고, 지역별로 특정 정당의 독점이 지속되는 문제를 해소하고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주요 내용은 △국회의원 300석 유지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 비율 3대1로 조정(현행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225:75)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절차 입증 강화 △비례대표 명부 전국 6개 권역별로 작성 △근소한 차로 낙선한 지역구 후보자를 비례대표로 선출하는 석패율제 도입 △선거권·선거운동 연령 18세로 하향 등이다.

▲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홍영표 위원장(왼쪽 착석)에게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홍영표 위원장(왼쪽 착석)에게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항의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관련 5당 합의에 동참했으나 줄곧 법안에 반대해왔다. 패스트트랙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과 국회 보이콧을 야기했다. 국회에 복귀한 뒤에는 심상정 정의당 정개특위 위원장 교체를 요구했고, 이후 선거제 개혁법안을 논의하는 정개특위의 제1소위원장을 한국당이 맡아야 한다고 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26일 1소위가 법안 논의를 전체회의에 넘기자 한국당은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청했으나 한국당 몫 위원 명단을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홍영표 정개특위 위원장이 한국당 의원 2명을 직권으로 임명하면서 조정위원 6명 중 4명 찬성으로 심상정안이 전체회의 안건에 올랐다.

한국당은 일련의 과정이 ‘날치기’라 주장하며 국회 보이콧, 고발전 등을 예고했다. 2018회계연도 결산 심사를 진행하려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파행됐고,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도 취소됐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9일 언론에 “인사청문회를 제외한 다른 국회 일정은 진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정개특위 홍영표 위원장, 김종민 1소위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형사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선거제 개혁법안의 정개특위 통과를 환영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활동 시한 종료에 임박해 선거제 개혁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어려운 한 고비를 넘었다. 선거제 개혁은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여망을 담은 매우 중요한 개혁 과제”라며 “정개특위가 활동 시한 종료를 앞두고 선거제 개혁안을 통과한 것은 불가피하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한 구비를 지나 아직도 여정이 남은만큼 여야 합의를 위한 더 진솔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회 로텐더홀에서 진행해 온 ‘정치개혁 촉구 농성’을 해제하며 “정개특위를 8월말까지 연장하자는 합의도 자유한국당이 참여해서 한 것이고, 안건조정위원회 구성도 자유한국당의 뜻이었지만, 자유한국당은 선거제도개혁의 논의 전 과정을 거쳐 스스로 합의한 결정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오늘 정개특위 의결까지도 자유한국당이 막아선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 “그러나 저와 정의당은 남은 3개월 동안 자유한국당이 선거제도개혁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한국당이 평소 주장했던 바대로, 원내5당의 합의로 12월 선거제도 개혁이 완료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들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주위를 둘러싸고 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항의하는 모습. 사진=노컷뉴스
▲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들어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주위를 둘러싸고 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항의하는 모습. 사진=노컷뉴스

박주현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선거제 개혁은 국민의 열망이며 시대적 사명이다. 문재인정부 20대 국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향후 법사위와 본회의를 거쳐 반드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의미를 짚은 뒤 “현재 법사위로 올라간 선거법 개정안으로는 국회 과반수 통과도 어렵고, 농촌과 지방의 대표성에 큰 지장이 생기는 등 몇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이제 법사위에 회부되어 시간을 벌었으니, 곧바로 과반수 통과가 가능하고 좀 더 합리적인 선거법 수정합의안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정숙 대안정치연대 수석대변인은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지만,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에 공감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여야 의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며 “진정으로 선거법 개정을 이뤄내고자 한다면, 여당인 민주당이 적극 나서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각 정당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절충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지역의 대표성 약화로 인해 지역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 개선안을 마련하여 여야가 합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평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정당 득표율에 따른 의석수 배분을 통해, 승자독식 권력구조를 바꾸라는 국민의 요구를 외면해선 안된다. 한국당은 자신들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제안을 귀를 열고 들어야만 한다”며 “어제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늘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상도 못할 정도의 저항을 하겠다”고 했다. 이는 국민들에 대해 선전포고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한국당이 하루 빨리 이성을 찾고, 욕심을 버리고, 준법정신을 갖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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