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 지시를 받고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머니투데이가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고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일명 ‘김 대표’의 인터뷰와 그의 증언을 재구성한 보도를 내놓으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사실로 밝혀지면 국정원의 탈법적인 민간인 사찰 행위에 대한 처벌이 불가피하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 약속이 거짓이라는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언론 보도가 집중되면서 관련 이슈가 외면 받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26일 국정원으로부터 월급과 성과급 형태로 5년 동안 1억여 원을 받고 운동권 지인들의 동향을 파악해 전달했다는 ‘김 대표’의 증언을 전했다.

머니투데이의 보도는 단발에 그치지 않았다. 10여건이 넘는 보도를 통해 충격적인 사실을 추가로 전했다. 김 대표에게 방까지 얻어주고 사찰에 쓰일 모형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증언했고 실제 사용했다는 녹음기의 실물 사진까지 제시했다.

머투는 국정원 직원이 성매매를 수반하는 유흥업소로 불러내 성매매를 권했고, 특수활동비 계정으로 추정되는 신용카드로 결재했다는 증언까지 보도했다. 지난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 때이긴 하지만 국정원이 고대민주동문회 주요인사 연락망을 건네주고 “정세균, 이인영 등의 동향을 파악하고 접점을 찾으라”며 현직 의원의 사찰을 지시했다는 뉴스도 가볍지 않다. 국정원은 관련 보도가 나온 후 “정당한 국가보안법 위반 내사 업무”라고 했지만 불법의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는 중이다.

특히 ‘김 대표’의 증언에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인 일명 ‘RO 사건’이 조작됐다는 의혹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와 있다. 진상규명 목소리가 탄력을 얻으면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머투 보도에 따르면 ‘김 대표’는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녹음 장비를 건네 받으면서 “이게 통합진보당 해산시킬 때 썼던 제품”이라는 말을 들었다. 김 대표는 “이XX(RO사건 내부고발자)도 이 제품을 썼다면서 녹음기를 숨길 수 있는 특수제작 가방도 건넸다. 이후 녹음기 가방을 들고 선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녹음한 것을 국정원에 제출했다”고 증언했다. RO사건에서 핵심 증언을 했던 이아무개씨와 국정원의 커넥션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김 대표는 또한 “나중에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법정에서 사찰대상들의 위법행위를 증언하면 RO사건 제보자에게 준 10억여원과 유사한 금액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내란음모 사건 당시 수사 협조의 대가로 10억원이라는 구체적인 액수의 돈이 오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권에서 시작된 민간인 사찰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바뀐 부분이 있나’라는 질문에 “전혀 없다. 하는 일 똑같고 시키는 것 똑같고. 정권 바뀌는 걸 못 느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그들이 나를 데리고 유흥업소 가서 돈 쓰는 것도 똑같고. 그러면서 안심시킨다. 정권 바뀌어도 할 일 한다고"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로 볼 수 있는 수사 행태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 증언에 사찰 대상이라고 나온 홍성규 민중당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은 2014년부터 5년 동안 민간 사찰이 진행됐고 특활비가 사용됐다는 건데 문재인 정권에서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바 있고 폐지는 아니지만 국내 정치사찰과 공작을 엄격히 관리하리라고 신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원을 정면으로 뒤흔들 수 있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최우선으로 약속했고, 문재인 정부에서 국내 정보 수집은 없다고 자신한 것도 김 대표의 증언에 비춰보면 기망 행위가 된다.

홍 사무총장은 “비단 이번 사건의 민간인 사찰 지시를 내렸던 경기지부 뿐 아니라 모든 전국 지부에서 진보정당 뿐 아니라 시민사회에 대해서도 일상적으로 현재도 사찰이 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강하게 품을 수밖에 없다”며 “국정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이런 문제를 발본색원해야 하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진상규명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언론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모습이다. 머니투데이 보도를 시작으로 해서 관련 사안을 다룬 매체는 한겨레, 경향신문, 내일신문 뿐이다.

한겨레는 머투와 인터뷰했던 김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내일신문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민간사찰이 계속됐다는 주장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정보 수집업무 폐지,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 등 국정원 개혁을 약속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사실로 밝혀지면, 민간인 사찰을 끊었다는 문재인 정부 국정원의 다짐과 약속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라며 “정보기관의 사찰 DNA는 시민들의 불신이 깊다. 그 악몽이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정부에서 튀어나온 충격은 더 말할 게 없다. 국정원도, 국회 정보위도 진상조사에 머뭇거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도 관련 사건에 대한 이슈를 환기시키는 데 소극적이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은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며 여러 차례 공언한 말들과 ‘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업무 폐지 등 권력기관에 대한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고 자화자찬했던 모습이 무색해졌다”면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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