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미투 국면에서 성폭력 피해를 폭로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들 고소로 2차, 3차 고통을 겪었다. 임금 체불 사실을 피켓 시위로 알린 노동자, 언어 폭력을 겪다 해고된 노동자, 기업 ‘갑질’을 언론에 제보한 도매상 등은 실제 유죄가 확정됐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문제점과 비범죄화를 논의하기 위한 토론회가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 한국언론법학회·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렸다.

명예훼손죄를 규정하는 형법 제307조는 허위사실 뿐 아니라 사실을 적시한 경우도 처벌 대상으로 본다. 다만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한해 처벌하지 않는다(제310조)는 배제 조항과 허위사실 적시에 비해 형량이 적다는 차이점이 있다.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표현의 자유 실현은 무죄, 공공의 이익과 무관한 표현의 자유 실현은 무죄’라는 공식은 ‘반헌법적’이라고 말했다.

김성돈 교수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를 공익을 위해 사용하면 처벌하지 않겠다는 규정을 둔다면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속성 자체를 심각하게 변질시키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며 “하위법인 형법이 헌법적 기본권 자체의 속성을 공익지향성으로 바꾸거나 그 실현범위를 공익간련적 테두리로 축소한다면 형법을 통한 헌법의 자유권적 기본권의 실현범위 축소라는 ‘하극상’을 허용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심포지엄'이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심포지엄'이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한변호사협회 주최로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한계가 언론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정보인권단체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는 “실제 상담을 요청했던 기자는 방송사 고위간부가 성희롱으로 징계당한 사실을 팩트에 기반해 보도했는데 해당 간부가 (기사를) 내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사실이 잘못된 게 있느냐’ 했더니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있지 않느냐, 내려라’ 했다는 사례가 있다”며 “충분한 근거와 사실확인을 바탕으로 한 기자들도 고충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기자 3명 중 1명은 소송을 경험했고, 2명 중 1명은 상대방으로부터 ‘고소하겠다’는 말을 듣고 후속보도를 자제한다고 답한 바 있다.

‘공익 목적’이라는 배제 사유가 판단자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현실적 한계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례로 12년 전 지역 여성단체가 국립대학교 교수의 제자 성폭력을 인터넷 홈페이지 및 소식지에 게재한 사안에서 원심 재판부는 해당 여성 단체가 가해자를 공개한 목적이 ‘공익’보다 ‘비방’ 목적에 가깝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학내 성폭력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 그리고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익의 이익을 위해 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반면 존치 입장인 김성천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매우 중요한 기본권에 속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무제한적으로 보장될 수는 없는 권리”라며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부분이 표현을 통해 명예훼손 또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기본권은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보장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며 “극단적인 예로 칼 들고 들어와서 사람들 다 찔러죽여도 괜찮냐, 그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김성천 교수는 “어떤 남자 둘이 사귄다고 하면 ‘잡아다 죽여야 된다’는 정도로 주장하는 분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 분들이 집회도 하고 물리적 폭력을 사용해 (성소수자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당사자 입장에 반해) 동성애자라고 밝혀지면 정신적 고통을 받는다. 또 성범죄 피해 사실이 알려지면 피해자가 된 사람은 뭔가 행실이 잘못됐다는 등 시각이 고통을 준다”는 예를 들었다. 이어 “우리 사회에는 왜곡된 인식이 여러 군데 남아있고 아직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사실이라면 말해도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사유 성립요건 가운데 하나인 ‘공익성 조건’은 삭제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김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아무런 공적 이익이 없음에도 이를 공개하는 것은 인격권, 프라이버시권 침해로서 표현의 자유 범주 내에 속한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사실적시명예훼손죄가 무의미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면서도 “선량한 피해자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을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이 내포돼 있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입증책임마저 떠안는 부담을 지는 것이 타당한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폐지돼야 하며, 이를 보완할 대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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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변호사도 “프라이버시 침해 역시 기본적으로 민사상 불법행위 손해배상 영역에서 해결돼야 하는 문제이며, 국가형벌권 행사가 1차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영역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 법감정 등을 고려해 이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면 ‘명예’가 아닌 헌법 제17조상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법익으로 하여 이를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추창현 법무부 형사법제과 검사는 “국회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법안이 발의된 반면에 SNS를 통한 명예훼손과 관련해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법 적용을 오히려 상향하는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사회적인 요구들을 반영한 걸로 이해하고 있다”며 “여러 흩어진 명예훼손 관련 범죄처벌 체계 전반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금태섭 의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형벌에서 제외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금 의원은 “개인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명예훼손제 전체를 비범죄화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며 “국민이나 사회에서도 명예 자체를 중시하지 않는 게 아니라 형벌로 다스리는 게 맞지 않고 자칫 힘을 가진 고위공직자에 의해 악용될 경우 표현의 자유 억압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들은 내용으로 입법활동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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