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딸 입시 논란이 있기 전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보도들을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평소 조국 후보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에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국 후보자의 말과 글뿐 아니라 논문까지도 상당히 찾아서 읽은 편이었다. 진보적 법학자인 그를 ‘법이 가진 자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법을 통한 정의실현을 위해 싸운 지식인’이라고 본다. 이렇게 볼 만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일례로 한국은 정리해고에 반대해 비폭력적 쟁의를 한 노동자들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 유일한 사회다. 이 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으나 노조를 ‘귀족’과 동일시해 혐오하는 이 사회에선 관심을 가지는 전문가 자체가 희귀했다. 반면 그는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비판’이란 논문으로 전문가로서 기존 법리에 도전했다. 삼성 X파일의 통신비밀보호법 적용, 소비자불매운동의 법적인 지위 등에서도 활발하게 논문을 쓰며 정의에 부합하는 법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을 나름 감사해하기도 했다.

그가 주도하는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한계가 있어 보였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이든, 수사권 조정이든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든다 해도, 사정 권력을 악용할 마음을 먹은 집권자에겐 무력할 것 같았다. 사법개혁 완성은 지속적 견제와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지도자 선출 아닐까 짧은 생각도 품었다. 조국 후보자 논란이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에 그칠 때 그 사안들은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비판을 위한 비판도 있어 보였다. 이 논란에 당초 관심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였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꾸려진 인사청문회 준비단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꾸려진 인사청문회 준비단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조국 후보자 딸이 고2 때 의학논문 제1저자가 되고, 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정서적으로 조국 후보자에게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함마저 느끼게 됐다. 날선 언어로 무조건적 비토나 비호가 판을 치며 오히려 진짜 상처 받은 이들을 정치 혐오에 빠지게 하는 현실이 절망스럽고, 공론장에서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사장되고, 모든 관심이 블랙홀처럼 ‘조국 논란’으로 빨려드는 현실도 우려스럽기 때문이었다.

우선 정부와 여당의 핵심부를 비롯해 평소 번듯한 원로 언론인마저 이 논란에 상처 받은 이들을 ‘반대 진영에 선 사람’으로 보는 시각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집회 주최 측 일부는 자유한국당 등 특정 정당의 이해를 대변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저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전체가 모두 그런 취지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은 ‘광우병 촛불집회가 괴담에 의해 선동됐다’는 식으로 ‘비판세력 전체를 극단으로 모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박근혜 정권 시절 ‘이른바 보수’라는 정치인 중에선 왜 간첩조작을, 국정원 댓글조작을, 세월호 유가족 모욕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지 의문스러웠다. 아마도 그들은 ‘그저 진영의 이익에 복무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흉내내기 어려운 조국 후보자 딸의 스펙 관리와 장학금 수령을 문제 삼고, 이 사회 기득권의 계급 재생산 방식을 비판하는 이들을 ‘자유한국당 편이냐’고 묻는 시각은 과거 보수 정치인 언행과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이런 지긋지긋한 진영주의가 386세대의 ‘종특’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저널리즘에도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분명 일부 보수 언론은 지나치게 의혹 제기에 몰두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과 의혹 제기도 적지 않았다. 보수 언론의 무리한 보도와 언론 혐오를 상기시키며 반격하는 모습은 전혀 새롭지 않다. 오히려 새롭게 제기할 만한 언론의 문제는 ‘왜 교육 불평등, 계급 불평등이란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동안 이토록 무기력했느냐’였다. 이런 입시 사례가 왜 장관 청문회에서 드러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언론인들이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조국 논란이 문재인 정부에 좋은 기회를 제공한 면도 있다. 한국 사회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고, 격차를 좁히거나 따라잡는 기회를 잡긴 점점 어렵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25일 밝혔듯, 소득 5분위 배율(고소득자인 5분위 소득이 저소득자인 1분위 소득에 몇 배를 차지하는지 나타내는 수치)은 2018년 5.23에서 2019년 5.30으로 증가했다. 고용노동통계를 봐도 대기업(300인 이상)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이 정부 임기 내내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심각한 청년실업률도 그대로다. 정부 공약집을 보면 더 답답해진다. 공약집에서 제시된 체불 임금 제로, 알바존중법 제정,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소비자 주권을 취한 집단소송제 도입, 교육비 감축, 청년 주거비 절감 등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지금 이 논란이 한탄으로 그치지 않고 새 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부가 정말 심각히 생각했으면 한다. 그 시작은 이번 논란에 상처 받은 이들이 입을 열게 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