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를 위한 보조금입니까” 15년 넘게 국내에서 전기 이륜차 생산을 위해 올인(all in) 해왔다는 A업체 사장.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전기 이륜차 시장에 문이 열리면서 기대를 높였다. 정부는 보조금을 대폭 늘리며 전기 이륜차 판매 촉진을 돕겠다고 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보조금에 있었다.

환경부는 올해 초 전기 이륜차 보조금으로 1만대에 250억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대상은 1회 충전 거리와 최고속도, 배터리 종류 등의 기준을 통과한 9개사 10개 차종이었다. 그러나 이 중 3개 제품은 중국 현지에 팔리는 모델을 수입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들 제품의 현지 판매가격은 100만원 수준이었지만 한국으로 들어오며 판매가격이 350만원 이상으로 책정됐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황당하게도 이들 제품에 수입원가보다 높은 23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수입업체들은 약간의 업그레이드를 거친 중국산 제품을 국내에서 2배 이상의 가격에 판매했다.

환경부의 정책 목적은 애초에 대기 질 개선과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전기 이륜차 보급 확대에 있었다. 최대한 많이 보조금만 지급하면 할 일은 다 한 셈이다. 첫 보도가 나가기 전까지 환경부는 중국산 전기 이륜차의 원가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2017년 33억원이던 예산만 2년 만에 250억원으로 거의 8배 늘었다.

기존 휘발유를 사용하던 오토바이, 스쿠터 등을 전기 이륜차로 대체하겠다는 정부가 고려해야 할 게 환경문제 단 하나뿐이었을까. 정부가 올 초 발표한 전기 이륜차 보급사업 보조금 업무지침 문서의 사업 목적을 보면 ‘보급 확대’와 함께 ‘기술 개발’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A업체 사장은 “보조금 정책이 국내 업체가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유인이 되기는커녕 중국산의 난립만 부추기고 있다. 없애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목소리 높였다.

▲ 지난 4월24일 서울시는 프랜차이즈 및 배달업체와 배달용 오토바이를 전기 이륜차로 전환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 직후 배달용 전기이륜차들이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4월24일 서울시는 프랜차이즈 및 배달업체와 배달용 오토바이를 전기 이륜차로 전환하는 내용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협약식 직후 배달용 전기이륜차들이 도로를 주행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이륜차 생산기반은 브랜드파워가 높은 일본산과 값싼 중국산에 밀려 거의 황폐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차세대 전기 이륜차 시장에선 가능성을 본 국내 중소기업들이 15년 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초기엔 한국제품의 성능이 압도적이었지만 이제는 정부의 지원 속에 중국제품들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국내 오토바이 브랜드 1, 2위를 다투는 업체들마저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지경이다. 국내 전기 이륜차 B업체 대표는 “한국에서 장기적으로 보조금이 늘어날 것이라는 소식에 ‘돈 냄새’를 맡은 수입업자들만 전기 이륜차 시장에 대거 뛰어들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정부는 환경문제에 더해 국내 이륜차 산업의 현실도 냉정하게 바라봐야 했다. 국내 전기 이륜차 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으로 산업을 키워 자연스럽게 미세먼지도 저감하는 방향의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맞았다. 환경부 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다른 부처가 보조금 정책에 대해 교감을 나눴다면 이런 미숙한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 송상현 뉴스1 산업1부 기자
▲ 송상현 뉴스1 산업1부 기자

환경부는 보도 이후 향후 전기 이륜차 보조금 액수 책정에 성능 외에 생산 원가도 반영하겠다고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러나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업체들은 “아직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우려한다. 그러는 사이 주요 지자체의 전기 이륜차 보조금은 이미 동이 난 상태다. 서울, 부산, 대구 등은 이미 예산 소진으로 보조금 접수를 중단했다. 보조금 신청이 대거 몰린 서울과 부산, 경기에는 34억7000만원의 추가 예산도 투입된다. 아직도 중국산 전기 이륜차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수혜 속에, 오늘도 부지런히 판매 대수를 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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