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반민특위를 다룬 다큐멘터리(‘독립유공자’ 편) 불방 사태 등 방송 공정성 훼손 사례에 대한 EBS 특별감사 결과 당시 인사권자들의 비합리적 의사 결정으로 EBS 신뢰 하락이 초래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주 공개된 EBS 특별감사 결과는 EBS 노사가 박치형 현 부사장 임명을 두고 갈등을 겪으며 주목됐다. 박 부사장은 2013년 다큐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를 제작하던 담당 연출자 김진혁 전 EBS PD(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를 수학교육팀으로 인사 이동시키는 등 제작 중단 사태 책임자로 ‘내부’에서 평가되는 인물. 박 부사장은 그 시기 EBS 평생교육본부장을 지냈을 뿐 사태 ‘주범’으로 모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4월 박 부사장 임명 이후 전국언론노조 EBS지부는 박 부사장 사퇴를 주장해왔다. 김명중 EBS 사장은 같은 달 EBS 감사에게 특별감사를 청구했다. 김 사장은 “EBS 방송의 공영성 훼손에 관한 문제 제기는 현재 재정 적자보다 더 심각한 문제다. 다시는 이런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이 확보한 특별감사 결과를 보면 EBS 감사는 김 전 PD의 다큐 ‘독립유공자’ 편 불방 사태에 “인사권자 등의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 결정으로 제작 유보, EBS 신뢰 하락, 인력과 예산 낭비를 초래했지만 해당자들은 퇴직했고 징계시효는 경과했다”고 밝혔다. 인사권자 책임을 인정하면서 퇴직과 징계시효를 이유로 ‘처분 불가’ 결과를 내놨다.

또 당시 제작 중단을 위해 EBS 다큐멘터리 제작 부서에 ‘표적 감사’가 있었다는 의혹에 “해당 특별감사(다큐프라임 자체 제작 인력의 복무 기강 점검)는 규정 위반에 대한 특별감사 요청으로 실시됐다. 제작 중단을 위한 표적 감사 여부는 확인이 어렵다”고 밝혔다.

독립유공자 편 제작이 중단된 의사 결정 과정 및 보복 인사 의혹에도 “관련 의혹 등이 EBS 방송 독립성 및 공정성을 훼손했는지 여부는 확인 불가”라는 결과를 내놨다. EBS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방송 공정성 이슈 대부분을 ‘확인 불가’, ‘처분 불가’ 등으로 마무리했다.

▲ 박치형 EBS 신임 부사장(왼쪽)과 김진혁 전 EBS PD. 사진=EBS·미디어오늘
▲ 박치형 EBS 신임 부사장(왼쪽)과 김진혁 전 EBS PD. 사진=EBS·미디어오늘

언론노조 EBS지부는 “박치형은 제작 본부장으로서 소속 직원 인사 관리 책임이 있고 EBS 제작 상황에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었다. 인사발령으로 인한 제작 중단 및 노조, 협회의 문제 제기를 충분히 예견했는데도 인사 조치로 결국 제작이 중단되도록 한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감사 보고서에 명시됐다며 박 부사장 사퇴를 촉구했다.

이종풍 지부장은 24일 통화에서 “감사가 밝힌 ‘처분 불가’ 등이 쟁점은 아니다. 제작 중단에 역할을 했느냐가 쟁점이다. 사장은 방송 공정성을 지켜낼 인물을 임명해야 하는데, 이를 명시한 단협을 위반한 셈”이라며 “월요일(26일)부터 박 부사장 퇴진 서명에 들어가겠다. EBS 사장이라면 공영방송에 맞는 후속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BS PD협회도 23일 성명을 통해 “소모적 혼란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오직 박 부사장 자리 욕심 때문”이라며 “즉시 부사장을 인사조치 하라”고 요구했다.

반면 박 부사장은 24일 통화에서 “노조 등은 일부 자기에 유리한 증언을 인용해 각종 성명으로 나를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번 특별감사는 박치형 개인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을 호도하고 있다”며 “본부장을 했다는 이유로 나를 방송 독립성·공정성 훼손 주범으로 몰아가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박 부사장은 “당시 신용섭 EBS 사장에게 대들면서까지 김진혁 PD 인사 조치에 항의했다. 신 사장도 이번 감사에서 (김진혁 전 EBS PD의 수학교육팀 발령은) 자신이 당시 EBS 부사장과 함께 지휘했다고 진술한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부사장은 김 전 PD도 비판했다. 감사가 “기획안 선정을 위한 다큐 심사 시 응모자를 심사위원에서 제외해 공정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개선 필요’를 밝힌 것 등이 김 전 PD 탓이란 주장이다. 박 부사장은 “김 PD는 당시 다큐 심사위원인데도 다큐를 응모했다. 김 PD 기획서는 불충분했고 복무 기강이 해이했다는 등의 감사 내용도 있다. 그런 내용은 왜 관심이 없느냐”고 했다.

하지만 김 전 PD는 지난 4월 고발뉴스 인터뷰에서 “방송국 PD들은 근태가 좋지 않다. 프로그램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매우 불규칙해서다. 외부 강의할 때 사측에 신고해야 했는데 제가 잘 안 지켰다. 저 말고 다른 PD들도 이 부분에 약점이 있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도리어 김 전 PD는 사측이 이를 빌미로 ‘표적 감사’를 했다고 반박한다.

김 전 PD는 ‘다큐 기획안 선정 심사위원이면서 응모자였다’는 박 부사장 주장도 반박했다. 그는 26일 통화에서 “다큐 기획안 선정을 위한 1차적 심사와 평가는 편성부가 한다. 당시 나는 편성부 소속이었으나 내부 방침에 따라 내 기획안(독립유공자 편)을 제외하고 평가했다”며 “그때도 문제가 제기돼 확인 절차가 이뤄졌고 내가 내 기획안을 평가·채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돼 문제없음으로 해결된 사안이다. 아울러 다큐위원회는 1차 심사가 아니라 최종 결정 역할을 담당했으며 나는 심사위원도 아니었다. 박 부사장이 그렇게 주장하는 건 굉장히 악의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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