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폐를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 첫 고용노동부 장관은 적폐청산TF인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회)’를 설치해 노동부를 조사했다. 위원회가 지난해 8월1일 내놓은 조사결과를 보면 2007년부터 법원(대법원은 2010년)은 자동차업종 사내하도급을 불법으로 판단했지만 노동부는 불법파견을 방치했다. 노동부의 사건처리 지연, 검찰의 부당한 수사지휘 등이 드러났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 일부는 현대기아차 정규직 노동자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내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구조다. 당연히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 자동차를 생산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 실질적인 업무지시는 현대기아차에서 받고 있다. 법원은 이런 일이 불법파견이니 현대기아차가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11번을 판결했다. 

[관련기사 : 현대차 불법파견 11번째 판결… “노동부, 판결 따라야”]

▲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설치한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설치한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 사진=장슬기 기자

 

지난해 당시 위원회는 노동부에 “현대기아차 등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 판결 기준에 따라 조사해 직접고용 명령, 당사자간 협의·중재 등 적극적인 조치를 조속히 취할 것”을 권고하고 “불법파견 판정기준 관련 법원판례를 반영해 노동자파견 판단기준 지침, 사내하도급 파견 관련 사업장 점검요령을 정하라”고 했다.  

약 50일이 흐른 지난해 9월19일 현대기아차 원청 노사는 이들 비정규직을 배제한채 사내하청 비정규직 특별채용에 합의했다. 비정규직 근속을 인정하지 않고 체불임금도 인정하지 않는 등 법원의 직접고용 판결과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같은달 22일부터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천막을 세우고 단식을 시작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권 노동부는 현대차가 하청업체 127곳과 맺은 9234개 도급계약이 불법파견이라고 판단했다. 2005년 기아차 하청업체들도 불법파견이라고 봤다.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소속 업체가 아닌 현대기아차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부는 재벌기업에 시정명령 한번 내리지 않았다. 

노동부는 지난해 추석연휴를 단식농성으로 보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기아차 노사와 교섭 중재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10월7일 농성을 풀었다. 그럼에도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현대기아차가 직접 고용하고 그동안 덜 받은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원판결과 노동부 약속이 1년 가까이 방치되자 다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쌓인 폐단을 깨끗이 해결할 의지가 보이지 않아서다. 

▲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농성 중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미디어오늘은 지난 22일, 단식 25일차인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을 농성중인 천막에서 만났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울산공장 탁송 업무를 맡은 사내하청(무진기업) 노동자들을 현대차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김 지회장은 “노동부는 법원 판결이 났는데도 최소한의 할 일을 하지 않고 재벌 편만 들고 있다”며 “법대로 해달라고 곡기를 끊었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2004년과 2005년 노동부가 불법파견이라고 결정해놓고 15년째 시정명령조차 하지 않는다”며 “지난해 18일이나 집단으로 단식하며 농성했고 그때의 노동부 약속을 지금 뒤엎고 직접생산공정(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공정)만 불법파견으로 보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수원지검 공안부가 지난달 9일 박한우 기아차 사장을 기소하며 직접생산 공정만 불법파견으로 판단했는데 노동부가 이 기준을 가져왔다. 

김 지회장은 “11차례나 직접·간접공정 구분 없이 자동차 생산공정 모두를 불법파견으로 본 법원 판결을 거스르는 것이고 노동부 스스로의 판단도 부정하는 것”이라며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이 안 났다는 말도 하는데 대법원 판결대로만 할 거면 노동부가 왜 있느냐”고 지적했다. 

노동부가 필요할 때마다 법원판결이나 검찰판단을 핑계 삼아 재벌 편을 들고 있다는 게 김 지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노동부가 1심 판결 나지도 않았는데 파리바게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등을 조사해 불법파견에 대해 직접고용 명령을 내렸다”며 “어디는 1년 만에 즉각 조사하면서 왜 현대기아차는 15년이 걸리느냐”고 한탄했다.    

비정규직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처럼 재벌을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김 지회장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2심까지 불법파견 소송에서 이겼는데 한국도로공사는 직접고용을 주장한 노동자(1400여명)를 해고했다”며 “문재인 정부 스스로가 법을 따르지 않고 비정규직을 해고시키는데 어떤 기업이 법을 지키려고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지난 7월1일자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서울톨게이트 캐노피와 청와대 앞에서 고공·노숙농성 중이다. 대법원은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불법파견을 지적하며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취지) 판결 기일을 오는 29일로 확정했다. 

▲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단식 25일째다. 사진=장슬기 기자
▲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지난달 29일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22일 기준 단식 25일차다. 사진=장슬기 기자

 

김 지회장이 단식중인 천막에는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과 함께 현대차 공장 내 ‘현대그린푸드’ 임금 문제를 지적하는 현수막이 붙었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면서 현대그린푸드와 같이 최저임금을 받던 노동자들은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린푸드는 두달에 한번 받던 상여금을 쪼개 매달 주기로 하면서 이를 임금에 포함했다. 과거 정부 땐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더라도 그만큼 실제 임금이 올랐으니 더 상황이 나빠진 셈이다. 

김 지회장은 “언론에서는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서 난리가 난 것처럼 말하지만 상여금을 포함하면서 임금이 그대로”라며 “현대그린푸드 쪽 관리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거다. 5년간 임금 동결’이라고 한다”고 전했다. 

노조는 이재갑 노동부 장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김영주 전 노동부 장관(민주당 의원) 등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천막농성장을 찾은 노동부 공무원도 없었다고 했다. 

언론 관심에 대해 묻자 김 지회장은 “천막만 쳐선 (기자들이) 오지도 않는다”며 “곡기라도 끊어야 오는데, (단식) 20일 넘으니까 좀 오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부가 약속했던 대로 직접고용 명령하겠다는 입장을 들을 때까진 (농성을) 접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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