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 생의 끝자락에서 이용마 MBC 기자가 곁을 지키던 동료에게 했다는 말. 지난 2년 그가 복막암(복막 중피종)과 어떤 사투를 벌였는지 짐작할 말. 그래도 살고자 한 이유는 12살 쌍둥이 아들. 그런 동료를 끝까지 옆에서 지켜본 정영하 MBC 정책기획부장은 21일 빈소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용마. 애썼다. 욕봤다. 편히 잠들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정 부장과 이 기자는 2012년 노조위원장과 노조 홍보국장으로 김재철 전 MBC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170일 공정방송 파업을 이끈 동지다.

▲ 이용마 MBC 기자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21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사진=김도연 기자.
▲ 이용마 MBC 기자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21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사진=김도연 기자.
▲ 이용마 MBC 기자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21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의 모습. 밝게 웃고 있는 이 기자의 영정 사진. 사진=김도연 기자.
▲ 이용마 MBC 기자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21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밝게 웃는 이 기자 영정 사진. 사진=김도연 기자.

이 기자가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고인을 추모했다.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MBC 기자들, 붉어진 눈으로 조문객을 맞는 최승호 MBC 사장 및 관계자들,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각계 인사들. 모두 이 기자의 짧은 생이 아쉽고 아팠다.

최승호 사장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는데 옆에서 지켜봐도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며 “더 잡아두는 게 무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유족으로부터 마지막은 편히 가셨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21일 오전 6시44분 서울아산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2012년 파업 참여 이유로 이 기자와 함께 해고됐던 박성제 MBC 보도국장은 “오늘 오전 용마 소식을 듣고 (서울아산병원에) 달려왔다”며 “눈을 다 못 감고 있었다. 손으로 감겨주려고 했는데 마치 할 일이 남았다는 듯 그의 눈은 잘 감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2년 노조 집행부이자, MBC 정상화로 이어진 2017년 공정방송 파업을 주도한 김민식 MBC 드라마 PD는 “마지막으로 용마를 본 날, 등산을 좋아했던 용마에게 ‘몸 다 나으면 아이들과 함께 안나푸르나를 다녀오자’고 했다. 그랬더니 용마는 ‘나는 못 갈 것 같으니까. 네가 아이들이랑 다녀와’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그 약속 꼭 지키려 한다. 그곳에서 현재·경재에게 ‘너희 아빠가 너희들과 참 같이 오고 싶어 했어’라고 말해줄 생각”이라고 밝혔다.

▲ 21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이용마 기자 빈소에 남긴 조문객들의 메시지. 사진=김도연 기자.
▲ 21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이용마 기자 빈소에 남긴 조문객들의 메시지. 사진=김도연 기자.
▲ 21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이용마 기자 빈소에 남긴 조문객들의 메시지. 사진=김도연 기자.
▲ 21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이용마 기자 빈소에 남긴 조문객들의 메시지. 사진=김도연 기자.

빈소에는 조문객의 ‘흔적’도 있었다. 벽에 붙인 색도화지에 누군가는 “용마야. 그토록 원하던 언론자유 되찾았는데, 그토록 원하던 취재 한 번 못해보고 가다니 너무나 안타깝다”고 썼다. 누군가는 “늘 이용마 기자의 성에 차는 그런 세상 만들려고 애써볼게요”라고 다짐했다. “용마야. 보고 싶을 거다”라는 짧은 글귀도 눈길이 갔다.

이용마 기자는 공정방송 투쟁의 상징적 인물이다. MB정부 방송장악에 170일 동안 파업으로 맞선 투쟁은 유례 없었다. ‘MB 낙하산’ 김재철 사장은 이 기자를 해고하며 정권이 하명한 ‘방송장악’ 임무를 완수했지만 이후 법원은 2012년 투쟁에 “공정방송은 방송 노동자의 근로조건”이라며 이 기자 손을 들어줬다. 방송 공정성 기준이 방송사 내부 민주적 의사 결정이라는 법원 판결은 이 기자가 이끈 파업의 최대 성과이자 방송사 노조 존재 이유를 확인시킨 결과였다. 언론인 스스로의 투쟁만이 언론 노동자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는 ‘성공 기억’이다.

이 기자는 ‘깐깐한 기자’였다. 자기 조직 일이라고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삼성 비판 기사가 MBC 뉴스데스크에서 자주 빠지자 보도국 게시판에 ‘삼성공화국’이라는 제목으로 자사를 비판했다가 사회부 법조팀에서 쫓겨난 일은 유명하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사내 ‘비주류’에 가까웠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내 출입처는 서울시청이 유일하다. (중략) 정권이 바뀐 뒤 나는 현업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보수 성향의 선배들이 보도국을 장악하면서 내가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 조전을 전하기 위해 21일 빈소를 찾은 MBC 기자 출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사진=김도연 기자.
▲ 21일 문재인 대통령 조전을 전하려 빈소를 찾은 MBC 기자 출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사진=김도연 기자.
▲ 21일 이용마 기자 장례식장 벽에 붙은 생전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 21일 이용마 기자 장례식장 벽에 붙은 생전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 조전을 전하기 위해 21일 빈소를 찾은 MBC 기자 출신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용마 기자는 ‘적당히’나 ‘타협’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면 사내 고위직으로 갈 수 있다는 유혹에 휩쓸리지 않았다. 도리어 보도를 막는 간부라면 저항했다”며 “‘인맥’과도 거리가 멀었다. 후배들이 그를 존경하고 선배들이 그에게 함부로 못했던 이유는 ‘올곧음’에 있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2012년 또다시 권위주의 정권이 장악할 수 있는 어려운 상황인 줄 알면서도, 그는 선후배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투쟁에 나섰다”고 말한 뒤 “앞에 나서지 못한 선배들을 대신해 죽은 것 아닌가 싶다. 동료들 짐을 홀로 지고 참 외롭게 싸워왔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MBC 기자 출신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고 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복직 및 MBC 정상화 등 빨리 해결됐어야 할 문제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해소됐다. 시대를 잘 만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빈소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남은 자의 몫’을 되새겼다. 생전 이 기자는 시민의 집단지성을 믿었다. 2017년 펴낸 책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변화와 개혁을 꿈꿨다. 줄곧 직접 민주주의 요소가 반영된 시민 참여만이 검찰·언론 등 기득권 집단을 개혁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참여재판을 원용한 방식의 국민대리인단이 검찰총장이나 공영방송사 사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KBS 사장 선임 절차에 시민이 참여했지만 KBS 이사회가 임명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안을 재가하는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박성제 보도국장은 “이용마 기자가 가장 원했던 것은 공영방송 독립성 확보였고 이를 위한 제도 마련이었다”며 “그가 못다 이룬 건 남아있는 사람들 몫”이라고 밝혔다. 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대표는 “이용마 기자가 바랐던 것은 제대로 된 언론을 만드는 일”이라며 “제도적 미완의 공영방송 정상화와 정치적 독립은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볼 테니 이 기자는 이제 좀더 편안히 쉬셨으면 한다”고 애도했다.

▲ 2017년 12월12일은 이용마 기자가 복직 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당시 언론은 ‘첫 출근’을 환영하는 보도를 쏟았지만 이날이 ‘마지막 출근’이 될 줄은 몰랐다. 이용마 기자가 퇴근을 위해 차량에 탑승하기 전 최승호 사장(왼쪽)과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2017년 12월12일 이용마 기자는 복직 후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 첫 출근했다. 당시 언론은 ‘첫 출근’을 환영하는 보도를 쏟았지만 이날이 ‘마지막 출근’이 될 줄은 몰랐다. 이용마 기자가 퇴근을 위해 차량에 탑승하기 전 최승호 사장(왼쪽)과 손을 맞잡았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2017년 12월 이 기자는 5년9개월 만에 복직하면서 MBC 동료들에게 이처럼 말했다. “작년 엄동설한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와 주셨던 촛불 시민의 위대한 항쟁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여기에 서있을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직도 우리는 암담함과 패배감에 젖어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뉴스와 시사, 교양, 드라마,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그분들 목소리가 담기도록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공동체와 우리사회에 애정과 관심이 고인의 유지였다.

최승호 MBC 사장은 “생전 고인의 뜻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너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용마 기자와 작별은 정말 MBC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우리 언론은 어때야 하는지 MBC 구성원 모두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6년 MBC 기자로 입사한 고인은 보도국 사회부, 문화부, 외교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두루 거치며 날카로운 시각으로 한국사회 기득권을 고발했다. MBC는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뜨겁게 싸웠던 고 이용마 기자를 기리기 위해 장례를 사우장으로 치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우장은 23일 오전 9시50분부터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치러진다.

[관련기사 : “공영방송 정상화 되는 길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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