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국내정보 수집기능이 폐지된 지금, 경찰 정보수집은 어디까지 허용돼야 할까. 경찰의 정보수집 남용을 막고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과 더불어 정보경찰 존폐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홍익표 의원 주최로 ‘정보경찰의 효율적인 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당 소속 행안위원 중 행안위원장인 전혜숙 위원과 김병관, 소병훈 의원도 참석했다.

발제를 맡은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안전융합연구소장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사회·노동 등 분야 정보활동은 해외 정보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방첩 정보활동보다 개인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정치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여타 사회 부문이 담당할 수 있는 해당 분야에 대한 경찰 정보활동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범죄 혐의가 있거나 발생하는 경우에 한해 정보를 수집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석재왕 소장은 정치정보 수집·활용 기능은 폐지를 주장하면서, 범위·대상이 모호하고 오해 소지가 있는 정치정보를 사전에 비밀리에 수집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석 소장은 “정책정보 생산을 위한 정치정보 수집이라면 이는 여야 정당이나 정치NGO가 하는 게 맞다”며 “범죄정보나 법집행정보 생산에 역량을 강화해 국민 생명·안전을 유지하는 것이 경찰의 존재 이유에 부합한다”고 했다.

▲ 경찰청  ⓒ연합뉴스
▲ 경찰청 ⓒ연합뉴스

석 소장은 “우리 경찰은 일부 정무적 기능도 담당해온 관행과 함께 순수 국내 정보기관이 부재한 탓에 광범위한 보안정보 수집 및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과 국정원 국내정보활동 폐지에 따른 경찰 권력의 비대화 가능성 우려 또한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다”라며 “경찰은 국정원과 기무사의 정보 일탈·남용으로 조직과 구성원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통제시스템으로는 국회 역할 강화, 정보협의체 신설, 경찰위원회 개혁을 주장했다. 우선 미국FBI처럼 국회 동의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독립된 감사관을 경찰청 내에 설치하고, 경찰청을 소관하는 행안위의 기밀자료 접근권 강화, 행안위 소속 전문위원 2명 중 1명을 정보전문가로 임명하자는 것.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정원·외교부·법무부·행안부 협의체를 신설해 정보기관 업무를 조정·보고·평가하는 한편, 경찰위원회 7명 중 2명을 경찰위원으로 임명(현재 변호사 2명·학계 2명·전직관료 1명·NGO 1명·언론인 1명)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경찰청 정보국의 김성재 정보1과장은 “지나치게 광범위한 정보수집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면서도 “범죄 뿐 아니라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한 경찰의 정보수집 영역을 ‘범죄 혐의’ 관련 영역으로 지나치게 제한하면 교통소통, 각종 재난, 집회·시위, 다중운집 행사 등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이나 재산 보호 등을 위한 경찰 기본 임무에 큰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치안정보’ 개념을 구체화하고, 정보경찰활동규칙(훈령)에서 불법적 활동을 세부 구분해 무분별한 정보수집이 이뤄지지 않도록 제한할 방침”으로 “이중삼중 통제장치를 함께 구축한다면 공공안녕에 위험과 무관한 정치정보 수집 및 민간인 사찰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찰청 자체 통제 시스템으로 지난해 ‘준법지원팀’을 신설하고, 경찰청 감사관실 정기 사무감사 수감 도입, 경찰위 정례보고 등을 구축했으며, ‘부당한 지시 금지 및 거부권’ 조항을 최초로 제도화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보경찰의 효율적인 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보경찰의 효율적인 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정치정보 수집에는 “이미 정치정보 수집을 원천 차단하는 조치와 함께 법집행정보 수집 역량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김성재 과장은 △정보경찰의 국회·정당 상시출입 전면 금지 △정보부서 소속의 국회 협력관 전면 폐지 △특정 정당·정치인 동향 파악 및 풍문 공유 등 ‘정치 관여’로 오해받을 일체 행위에 ‘징계 및 수사의뢰’ 하도록 제도화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정보경찰이 폐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오민애 변호사는 “국회·정당 상시출입을 중단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출입이 계속됐고 통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보경찰의 자체 개혁 내지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일례로 “경찰청은 직무분석·조직진단을 통해 조직을 개편하고 법적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나 인력만 11%가량 축소했을 뿐 구체적 직무분석·조직진단을 실시하지 않았고 그 결과를 반영한 조직개편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그룹 노조와해 공작에 지역경찰서 정보경찰과 경찰청 정보국 간부 개입 혐의 △경찰청 간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실행과정 정보 파악·공유 △세월호 유가족 감시·동향 파악 등 사례를 들었다. 오 변호사는 “경찰청 자체 분석 결과 정보국 외근 정보관들의 전체 업무 중 ‘범죄 첩보’ 작성은 1.3%에 불가했고,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청와대에 보고할 자료를 작성하는 업무(정책자료)로 22.5%에 이르렀다”며 “위 사실들이 드러난 과정만 보더라도 사전적 혹은 즉각적 정보경찰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근본 문제는 정보기능과 수사기능이 통합돼 정보경찰이란 형태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는 점”이라며 “정책정보는 유관 기관·부서에서 1차 수집하고, 공직 후보자에 대한 인사·복무 점검은 각각 인사혁신처, 감사원 등 권한 있는 기관에서 실시하도록 해 (경찰에는) 수사기능에 필요한 정보수집 외에는 정보기능을 부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홍익표 의원은 “정보경찰은 한국 근현대사와 여러 아픔을 함께 안고 있는 조직이다. 동시에 과거를 넘어 미래의 정보사회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한 축”이라며 “현재 경찰법 전부개정안이 제출돼있고 그 안에 정보경찰 관련 내용이 다 포함돼있다. 심의 과정에서 의견을 소중하게 담아 법안 뿐 아니라 정책적 측면에서 정보경찰 어떻게 운용하고 체계를 만들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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