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2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군복을 입은 채로 울산으로 내려갔다. 박 의장은 미국의 해외 원조를 전담하던 대외원조처(유솜·USOM)의 킬렌 처장을 초청해 한겨울 울산에서 공업도시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그렇게 울산은 공업단지법도 제정되기 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됐다. 울산과 함께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곳은 구로공단(지금의 구로디지털단지)이다.

박 정권은 1961년 9월 논밭이었던 구로동 일대 약 30만평의 농지를 강제로 빼앗았다. 하루아침에 논밭을 잃은 소작민들은 실업자가 됐다. 땅 주인들도 황당했다. 이에 땅 주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들어갔다. 법원은 1966년 주민들 손을 들어줬다. 

난감해진 박 정권은 이상한 해결책을 사용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와 검찰은 1968년부터 소송을 제기한 농민과 관련 공무원까지 잡아들였다. 불법연행과 가혹행위 끝에 143명은 땅 권리를 포기했고 끝까지 버틴 41명은 재판에 넘겨져 그 가운데 26명이 ‘소송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 1968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회 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 1968년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열린 제1회 무역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40년이 흐른 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토지강탈 사건을 재조사한 끝에 2008년 7월 진실규명과 재심을 권고했다. 유죄 판결 받은 26명 중 23명은 형사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대법원은 2016년 초 50년 만에 구로공단 땅 주인들 손을 들어줬다. 

경향신문은 이 소식을 2016년 1월4일자 지면에 알리면서 ‘재재심서 재심 취소… 사상 첫 판결’이란 제목을 달았다. 피해자들은 1000분의 1의 확률이라는 ‘재심’에 ‘재재심’까지 열고서야 국가 폭력을 입증받았다.  

그러고도 국가 권력은 멈추지 않았다. 검찰은 소송을 제기한 주민 중에 ‘가짜 피해자’도 있다며 2016년 재수사에 들어갔다. 검찰이 내세운 명분 중엔 1968~1970년 국가권력의 가혹행위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숨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정부 막바지 때 일이다. 

아버지의 죄를 덮기 위해 권력을 잡은 딸이 차일피일 국가 배상을 미루고 검찰은 이를 적극 도왔다. 정권이 바뀌고 정부는 2017년부터 배상에 나섰다. 더 미룰 수 없었다.

지난해 8월24일자 한국일보는 법원이 인정한 피해농민에게 줄 국가배상금이 4103억원인데, 이자인 지연손해금이 4584억원에 달해 ‘배보다 커진 배꼽’이란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다시 1년이 지나 내일신문이 지난 19일 ‘구로농지사건 국가배상액 1조737억+α’라는 제목으로 또다시 보도했다. 

정부는 2017년 3209억원, 지난해 5544억원, 올들어 68억원을 배상했지만 앞으로도 1916억원 이상을 더 배상해야 한다. 한 번 잘못된 국가정책이 이렇게 50년을 넘어 두고두고 국민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수많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누구는 공업화의 전초기지가 된 구로공단이라고 말하지만 그 땅에 살던 이들은 ‘구로 농지강탈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나마 땅 주인들이야 50년 만에 배상금이라도 받지만 그 땅을 직접 일구던 그 많은 소작농은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다. 가장 최근에 이 내용을 보도한 내일신문 기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박정희 정권이 1960년대에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50여년이 지나 후세들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이토록 황망한 국가 폭력을 휘두른 50년 적폐세력의 적장자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은 제발 자중자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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