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다른 반이 복잡한 문장을 독해하고 작가 이름을 외울 때, 우리 반은 문학 선생님이 선별한 도서목록에서 책을 골라 읽고 함께 감상을 발표하거나 모둠을 이뤄 토론했다. 그 중 특별했던 수업은 보수·진보 일간지 사설을 비교하며 읽는 것이었다. 한 이슈를 각 언론사가 어떻게 바라보는지 분석하며 각자 생각과 느낌을 이야기했다. 보수와 진보가 뭔지도 모르던 내가 봐도 보수 일간지 사설은 가진 자들에게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논조였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화가 나 해당 언론사 홈페이지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언론사라는 곳이 부끄럽지도 않냐”는 글을 썼다. 이후 사회이슈와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책을 섭렵하며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인상깊이 읽은 책에 <전태일 평전>이 있었고, 지금 나는 전태일기념관 5층에서 서울시민을 위한 노동교육을 연구·기획한다. 

이처럼 교육 효과를 몸소 체험했기에 교육 기획 때마다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지 가장 먼저 고민한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노동존중특별시’를 꿈꾸는 서울시 정책방향을 기반으로 ‘서울노동아카데미’라는 노동교육과정을 운영한다. 노동법 교육을 주로 한다. 수강생들이 딱딱하고 어려운 노동법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효과적인 교육이겠다. 우리 팀은 교육 효과를 높이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일터에서 필요한 노동 상식을 정리해 동영상으로 만들고, 노동법 핵심을 설명하는 교재를 발간했고, 청소년을 위해 재밌는 노동법 퍼즐도 만들었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 서울노동권익센터 홈페이지
▲ 서울노동권익센터 홈페이지

그러나 나는 노동교육이 조금 더 근본적 효과가 있길 바랐다. 자신의 노동경험을 성찰하고 사회와 연결 지어 생각해볼 기회를 주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이 필요했다. 마침 서울노동아카데미 과정에 노동인문학 교육을 편성해달라는 수강생들의 요청이 늘어나고 있었다. 지체 없이 노동인문학 강사를 찾아 나섰고,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인 김민섭 작가가 흔쾌히 강사를 수락했다. 그가 진행하는 교육을 두 번 참관했다. 그 중 한 번은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신청한 것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노동경험을 바탕으로 일하는 사람의 존엄성, 서로의 존재에 존중을 잃지 않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늦은 저녁시간인데도 모두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작가의 얘기에 집중했다. 교육 뒤 어떤 수강생이 메일로 다음과 같은 후기를 보내주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우리 사회는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은,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이 조금 생겨났습니다.” 후기를 보내준 수강생은 20대 취업준비생이었다. 첫 노동을 준비하며 사회와 사람에게 상처 받고 최소한의 권리조차 짓밟히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 노동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부당한 현실에 맞서 자기 권리를 말하려면 우리 사회가 아직은 살만하고, 그래서 더 좋은 쪽으로 변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 

▲ 이담인 서울노동권익센터 교육홍보팀
▲ 이담인 서울노동권익센터 교육홍보팀

일을 하면 할수록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 수업을 준비하며 들였을 마음속 희망을 조금씩 이해한다. 노동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일하는 사람이 노동하는 삶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자기 권리를 이야기할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효과적 노동교육은 그래야 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