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남북 정상이 만난 판문점부터 만찬에 나온 평양냉면까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북한’이라는 낯선 문화에 열광했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멀다고 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한 말은 남한 표준어와 북한 문화어의 관계를 드러내는 문장이 아닐까.

남한에서 북한 말을 가장 많이 접한 것은 뉴스 화면에서 본 조선중앙TV일 것이다. 북한 아나운서가 등장해 곧 전쟁이라도 터질듯한 고압적이고 딱딱한 문장과 말투, 이걸 본 사람들은 북한 말은 과격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북한 말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이해하도록 돕는 노력이 부족해 생긴 오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포옹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4월27일 오후 경기도 파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직후 포옹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화어 수업> 저자는 북한 사람들 일상으로 들어가 그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 보려고 가상의 평양살이를 시도했는데 식사, 부엌풍경, 교통수단, 방언, 세탁, 미용 등 실생활과 관련된 분야에 남한 표준어와 북한 문화어의 차이점을 말해준다.

남한 사람들이 접하는 북한 방송에는 낯설고 어색함을 느끼는데 북한 사람들은 남한 방송의 말투가 너무 간드러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남한 방송은 여성 진행자와 남성 진행자 가릴 것 없이 톤이 너무 낮고 박력이 없어 나약해 보인다고 할까. 북한에서는 감정을 이입해 격앙된 목소리로 뉴스를 보도하는데 준전시 상황과 관련된 보도나 정령을 발표하는 보도는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해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지만 최근 북한 방송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데 예전 북한 방송은 단조로온 화면 구성에 틀에 박힌 말투로 이뤄졌지만 요즘엔 화면 구성도 다양해졌고 뉴스 포맷이나 말투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남북한 신세대가 만나면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질까? 요즘 북한 신세대들이 남한의 영화와 드라마를 접하면서 남한 어투를 따라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엄격한 통제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남한 말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 젊은 남녀는 남한 말투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연인들 끼리는 ‘오빠 지금 뭐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늘여 남한 말투로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 문화어 수업 / 한성우·설송아 지음 / 어크로스 펴냄
▲ 문화어 수업 / 한성우·설송아 지음 / 어크로스 펴냄

 

북한 말을 접할 때 가장 많이 보이는 게 두음법칙과 사이시옷이다. 남한에서는 두음법칙과 사이시옷을 인정하지만 북한에서는 이 둘을 인정하지 않는다. 두음법칙 얘기를 해보자면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남한에 입국할 때 합동심사조사기관에서 개인 출생지와 이름, 경력 등을 기록하는데 북한에서는 ‘리’씨 성을 썼던 사람들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괄로 ‘이’씨로 등록된다. 북한에서 ‘리려화’였는데 남한에서는 ‘이여화’로 기록된 주민등록증을 받는다. 

우리 언론도 남북정상회담 보도 때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이름과 호칭을 어떻게 할지 논란이 많았는데 ‘리설주’인지 ‘이설주’인지 ‘여사’인지 ‘씨’인지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북한의 표기와 발음대로 ‘리설주’로 하고 호칭도 ‘여사’로 하는 것이 대세가 됐다.

사이시옷은 국어학자들이 무척이나 애 먹이는 문제인데 단어와 단어가 만나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질 때 소리의 변화가 나타나는 경우 이를 어떻게 할까라는 문제다. 1933년 맞춤법 통일안을 정하면서 나름대로 세운 기준이 남한에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지만 북한은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아예 사이시옷을 없애버렸다. 단어가 합쳐질 때 된소리가 나든 없던 소리가 첨가되든 관계없이 사이시옷을 쓰지 않는다. 예외로 ‘샛별’ ‘빗바람’ ‘샛서방’ 등은 사이시옷을 인정하긴 하나 남한과 북한 국어학자가 만나면 사이시옷을 어떻게 할지 논쟁거리다.

북한말은 ‘낯설거나 이상하거나 웃기거가 과격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이러한 선입견이 남북 언어 차이를 심각하게 만들고, 북한말을 희화화해 개그 소재로도 쓴다. 이런 고정관념으로 북한말을 접근하면 남북한 소통도 점점 줄어들지도 모른다. 격차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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