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이 이달부터 시행됐다. 대학들이 이를 앞두고 강사 자리를 대거 줄이자 정부가 뒤늦게 추가 지원사업을 벌이는 가운데, 일부 언론은 ‘해고대란’, ‘혈세낭비’ 등 표현으로 강사법을 원흉으로 지목해 반발을 사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추가경정 예산 280억원으로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 과제 2000개를 추가 선정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교육부는 올 상반기 이미 1272개 과제를 선정했지만, 강사법 시행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강사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한다는 취지다. 2000명 규모는 지난해 강사법이 통과한 뒤 강사 자리를 잃은 1만4000여명(교육계 추정)의 14.3% 수준이다.

강사법은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해, 대학이 강사를 1년 이상 임용하고 3년 간 재임용 절차를 보장토록 했다. 방학 중 임금과 퇴직금도 지급하게 했다. 또 공개임용과 ‘주당 6시간 이하’ 강의를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대학이 법 시행을 앞두고 비용 절감을 위해 대거 강사 자리 줄이기에 나섰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등이 꾸린 ‘강사 제도개선과 대학연구 교육 공공성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강사공대위)’에 따르면 올 1학기 최소 1만여명이 강사 자리를 잃었다.

‘강사법=대량해고법’ 프레임

일부 언론은 교육부의 이번 지원사업을 놓고 ‘혈세낭비’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2일 ‘정부, 강사법으로 1만명 일자리 잃게 해놓고…280억 들여 뒷수습’ 기사에서 “정부가 시간강사 대량실업 사태를 만들어 놓고는 세금으로 강사들 생계 대책을 내놓는 게 적절하냐”며 “강사법으로 연간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게 된다”고 했다. 문화일보는 같은 날 ‘시간강사 대란, 세금으로 땜질말고 악법 폐기해야’ 사설에서 “폐기가 근본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일부는 강사법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는 근본 방안엔 입을 닫았다. 동아일보는 13일 사설에서 “강사법이 출발부터 난항을 맞는 것은 좋은 취지의 정책이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단 것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라며 “세금으로 1년 간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강사법 폭탄’의 근본 처방은 될 수 없다”고 비판하는 데 그쳤다. 한국경제와 세계일보, TV조선 등도 사실상 ‘재정지원 때리기’ 논조를 이어갔다.

▲강사공대위와 각 대학별 공대위 관계자들이 지난 6월11일 오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강사법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요구하는 학생·강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사공대위와 각 대학별 공대위 관계자들이 지난 6월11일 오후 서울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강사법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조치를 요구하는 학생·강사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상 정부의 강사법 ‘연착륙 지원’은 2학기까지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해고’ 규모에 견주면 뒤늦을 뿐 아니라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강사법 시행에 2965억원이 들어간다고 추산했는데 정부가 올해 확보한 관련 예산은 방학 중 임금 지급을 위한 288억원과 이번 추가지원사업(280억원)이 전부다. 한겨레는 같은 날 ‘강사법 해고 강사 2만명 넘는데···추경으로 연구비 지원은 2천명 그쳐’에서 이같이 보도했다.

보수언론은 ‘대학은 10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터라 강사 처우개선에 쓸 돈이 없다’며 학교 재정난도 강조해왔다. 그러나 강사단체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이 재정 탓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강사공대위에 따르면 수도권 대형 사립대의 전체수입 대비 강사 인건비는 1~2%정도다. 처우개선에 드는 비용은 이 액수의 40%가량이다. 김어진 한국비정규직교수노조 수도권분회장은 “규모 작은 대학, 특히 중소 지방사립대는 형편이 어려운 게 사실이나, (대표적으로 재정난을 호소하며 강사 자리를 대폭 줄인) 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사대문 안 사립대는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다. 이들은 실제 재정운용 상황을 공개토의하자고 제안하면 거부한다”고 꼬집었다.

“편법 회피하면서 강사법만 탓”

강사공대위는 12일 이와 관련해 긴급성명을 냈다. 강사공대위는 “일부 언론, 특히 보수언론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라며 “개정 강사법이 강사를 해고한 게 아니라, 대학자본이 기업처럼 운영되면서 비용을 절감하려 비정규교수를 양산하고 언제든 강사를 해고해왔다. 그럼에도 (언론은) 처음부터 이 사실을 꽁꽁 숨긴 채 강사법을 ‘대량해고법’이라 작명하는 데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언론에 “공개 끝장토론의 장으로 나와라. 공개적으로 방송과 지면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차려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천막 옆에 고 서정민 조선대학교 강사의 유서가 놓여있다. 서씨가 2010년 논문대필 문제와 교수가 되려면 돈을 내라는 제안을 유서에 언급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강사법 제정의 기폭제가 됐다. 사진=정민경 기자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차려진 전국대학강사노동조합 천막 옆에 고 서정민 조선대학교 강사의 유서가 놓여있다. 서씨가 2010년 논문대필 문제와 교수가 되려면 돈을 내라는 제안을 유서에 언급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강사법 제정의 기폭제가 됐다. 사진=정민경 기자

김진균 강사공대위 대변인은 “새 강사법이 진행 과정에서 한계가 있음을 피해당사자인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고용안정을 추구하자는 법을 만들었고, 대학 측이 강사자리를 축소해 법 취지를 위반하고 있다. 대학 측 결단과 정부의 지원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조중동’을 중심으로 언론은 왜 ‘대량해고’ 문제가 생기는지 따지지 않고 문제 자체를 없애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를 지적한 일간신문은 많지 않았다. 한국일보는 지난 2일 사설에서 “법 취지와 달리 대학들이 강사‧강좌 수 축소로 대응하면서 시간강사와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라며 “교육당국은 강사법 시행 초기 부작용과 허점을 꼼꼼히 살펴 강사 권익과 학생 학습권이 더는 침해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사설 ‘출발부터 난항 빠진 새 강사법, 근본해법 모색해야’에서 “정부는 강사법 시행에 따른 소요 예산을 파악해 추가로 재정 지원해야 한다. 대학은 강사 구조조정에 앞서 공생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이 강사법의 근본 취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영곤 전국대학강사노조대표는 언론이 ‘교원 지위 회복’이 가지는 의미를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사법은 1977년 박정희 정권의 대학강사 교원 지위 박탈을 40여년 만에 되돌리는 조치이기도 하다. 강사는 교원으로 논문을 의무적으로 쓸 여건이 마련되고, 연구와 강의 내용이 해고사유인지 따질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갈 수 있게 돼, 학자로서 입지를 확보할 계기가 열렸다는 뜻이다. 김영곤 대표는 “강사가 교원으로서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강의할 수 있게 됐다”며 “언론이 강사법의 1차적 의미도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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