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2014년 9월 재난보도준칙이 제정된 이후 재난 보도가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다만, 속보성 취재 경쟁, 자극적인 보도 행태, 사건 사고 중심의 보도, 전문 역량을 갖추지 못한 취재 행태 등이 여전하고 기자 스스로도 언론 보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20일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과 KBS, 2‧18 안전문화재단 공동 주최(후원 대구시)로 열린 ‘효과적인 재난 관리를 위한 언론의 역할’ 토론회에서 김현정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언론사 기자와 PR 담당자) 심층인터뷰를 통해 나타난 점은 언론의 재난보도에 대한 태도나 행태가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나 재난보도준칙 제정 이후로도 크게 달리진 것은 없다는 인식”이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015년 1월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재난’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언론 보도(11대 중앙일간지, 지상파 3사, OBS, YTN)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모두 15611건의 기사가 검색됐다고 밝혔다. 연도별로 보면 2015년 2131건, 2016년 2739건, 2017년 3053건, 2018년 4805건, 2019년 7월 31일까지 2883건으로 나왔다. 재난을 키워드로 한 보도의 절대량이 늘어났다는 것인데 2017년 포항지진, 2018년 밀양세종화재사고, 강릉발 KTX 탈선사고, 고양시온수관 파열사건, 초미세먼지 등 재난이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하면서 언론 보도량도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특이한 것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에서 재난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가 단 한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같은 기간 한겨레 신문과 한국일보가 해마다 100건 이상 보도한 것과 비교된다.

재난이 들어간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에서 ‘대응’이라는 단어를 재검색한 결과 모두 4697건으로 나왔다. 전체 검색기사 건수의 30.09%에 해당한다. 김현정 교수는 “재난이 갖는 뉴스의 가치성 등으로 하여 평소 재난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다가 재난사고가 터지면 그때서야 재난에 관한 대응상황을 주로 보도하는 언론의 보도 관행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반면 ‘예방’이라는 단어를 포함한 기사를 재검색했을 때는 모두 1943건이었고 전체 검색기사 건수의 12.45%로 나왔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거의 모든 매체에서 검색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재난 이후에도 언론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복구에만 관심을 두고 실제적으로 피해자의 심적 육체적인 재난 피해로부터의 회복에 대한 부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현상을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언론사 기자 4명, 안전 및 위기관리 정부부처 및 관련기관 언론 PR 담당자 4인, 재난관리 연구자 1인,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1인 등 총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중앙일간지 재난담당 기자를 했던 한 인터넷 언론사 대표는 “보통의 경우 재난 현장에는 막 언론사에 입사한 1년 미만의 기자들이 투입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경마식 단순보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보통의 사회부는 사건사고 중심으로 취재가 진행되다 보니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고 있다. 근무 기피부서로 인식되면서 재난전문 취재를 지시하는 데스크가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중앙일간지 사회부 차장을 맡고 있는 기자는 “여전히 지면 및 방송 분량 메우기, 특히 독자 및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유가족 심층 보도 관행은 여전하다. ‘보험금이 얼마다’라는 보도가 대표적”이라며 “망연자실해 있는 유가족들의 심경을 집요하게 묻거나 희생자의 생전 사연들을 캐묻는 행태 또한 고쳐지지 않아다. 이는 단독거리에 목말라 있는 현장기자들의 본능일지 모르겠으나 관련 결과물을 요구하는 데스크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난보도준칙에는 과도한 보도 경쟁을 막기 위해 현장취재단을 운영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를 지키는 재난 현장이 많지 않고, 현장 기자의 안전을 강조하고 있는 준칙에 어긋나게 무리한 르포 기사 작성을 지시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언론사 편집국장이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현장기자에게 잠입 르포를 지시한 경우도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현정 교수는 “심층응답에서는 확인한 재난 언론보도 문제들로는 속보경쟁으로 인한 재난 사후 사건 사고 중심 보도가 많다는 것, 팩트 확인 없이 보도되는 일도 흔하다는 것, 과도하게 데스크가 취재결과물을 요구한다는 것, 재난 현장을 취재할 노련한 전문 기자가 없다는 것 등이 주요 문제로 지적됐다”고 밝혔다.

▲ 20일 국회의원 회관 3세미나실에서 열린 '효과적인 재난관리를 위한 언론의 역할' 토론회.
▲ 20일 국회의원 회관 3세미나실에서 열린 '효과적인 재난관리를 위한 언론의 역할' 토론회.

이번 토론회는 지난 4월 4일 강원산불 당시 재난방송주관사로서 KBS 보도가 미흡했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방송통신위원회의 후속 대책이 나온 뒤 재난 대응을 위한 방송사의 역할을 재고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김성한 KBS 재난방송센터 팀장은 산불의 원인이 됐던 ‘양간지풍’에만 반복해 보도했다면서 산불의 진행 상황, 정부의 대응, 대피소 정보 등에 제대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진단했다.

김 팀장은 특히 “정부는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보다는 오히려 인터넷 포털 등의 매체를 통해 재난 정보를 전파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행정안전부는 네이버와 협약을 맺고 재난 문자를 실시간 시스템 연계를 통해 제공하고 있지만, 법으로 명시된 KBS의 요청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복덕 방통위 재난방송관리팀장은 강원산불 재난방송의 문제점에 대해 “정부의 재난방송 요청 지연으로 산림청은 산불상황을 방송사에 직접 문자로 전달하였으나, 화재 진화와 인명구조에 집중하느라 행안부에는 재난상황을 전달하지 못한 재난방송 요청이 없었으며 방통위 또한 뒤늦게 상황을 인지하고 재난방송을 요청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방통위는 재난방송 요청 혼란을 막기 위해 재난방송 요청을 행안부로 일원화했다. 방송사 재허가 또는 재승인 심사시 ‘재난방송의 충실성’을 평가하기로 했다. KBS는 재난방송 컨트롤타워를 보도본부장에서 사장으로 격상시켰다. KBS와 행안부 상황실 간 핫라인을 구축하기로 했고, 재난정보 제공을 강화하기 위해 수어방송과 영어자막 방송도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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