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황산가스가 누출돼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우연히 접한 뉴스 한 꼭지에 꼭 머리를 스치는 물음이 있다. ‘우리 동네는 화학물질사고에서 안전한가?’ 포털이나 지자체 홈페이지를 뒤져도 마땅한 답을 찾기 힘들고 환경부 사이트에선 통계자료 홍수 속에서 필요한 정보만 집어내기 더 어렵다.

한 인터랙티브 뉴스가 이 궁금증을 덜어줬다. 지난 17일 경향신문이 공개한 ‘공장 안전 프로젝트, 우리 공장이 달라졌어요’ 페이지다. 본인이 살고 있는 시·군·구만 입력하면 가독성있는 시각 자료로 ‘우리동네 화학물질 현황’을 볼 수 있다. 사고대비물질(사고 위험성이 커 별도 지정된 100여 개 화학물질군) 취급량 기준으로 매긴 229개 지자체 순위부터 관리·감독 조례 존재 여부, 관련 공장 개수와 화학사고 발생 건수 등이 차례로 실렸다.

환경부가 2016년부터 추진해온 ‘화학사고 지역대비체계 구축 사업’이 콘텐츠 기반이 됐다. 장은교 기자가 같은 날 관련 사업을 소개하는 “우리 동네 공장, 유독물질 사고가 걱정된다면?”이란 제목의 1면 기사를 썼다면 뉴콘텐츠팀의 이아름 기획자와 김유진 디자이너는 ‘독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보’에 맞춰 인터랙티브 뉴스를 제작했다.

▲왼쪽부터 경향신문 이아름 뉴콘텐츠팀 기획자, 장은교 토요판팀 기자, 김유진 뉴콘텐츠팀 디자이너. 사진=경향신문
▲왼쪽부터 경향신문 이아름 뉴콘텐츠팀 기획자, 장은교 토요판팀 기자, 김유진 뉴콘텐츠팀 디자이너. 사진=경향신문

 

‘화학사고 지역대비체계 구축사업단’은 정부·지자체·기업·시민사회가 함께 지역 화학물질사고 위험에 대비하는 기구다. 기업은 사고대비물질 취급량과 물질 내용을 공개하고, 지자체는 이 기업들을 관리·감독하고 사고대응 매뉴얼을 구축하면서 시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알린다. 시민사회는 전문지식 등을 제공하며 협력한다. 이를 조례로 제정하고 각 주체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화학사고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사업단의 핵심 내용이다.

장 기자는 3개월 전 환경부의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지역대비체계 구축 보고서’를 단독입수해 보도를 준비했다. 환경부는 사고대비물질 취급량, 인구, 산업단지 생산규모 등을 종합 분석해 우선관리가 필요한 60개 지역을 꼽았다. “1년에 4곳씩 사업을 진행하면 전국 229개 지자체에 모두 구축하기까진 50년이 걸리니 우선관리지역을 미리 정한 것”이다. 전남 여수시가 1위, 경기 안산시가 2위, 울산시 남구가 3위, 경기 평택시가 4위로 대부분 공단 밀집 지역이다. 60개 순위는 장 기자 기사에 공개됐다.

사업단이 만들어지기까진 “뼈 아픈 과정”이 있었다. 피해자 6505명 중 1424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2011년 알려졌고 2012년엔 경북 구미 한 공장에서 불산 가스 누출사고로 노동자 5명이, 청주에선 다이옥산 폭발사고로 9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용노동부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산재 발생 현황‘을 보면 2014년~2018년 7월까지 화학물질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100명, 부상자는 2169명이다. 2014년 삼성전자 수원공장 주변 클로로포름이 검출된 하천에서 물고기 1만마리 이상이 폐사된 사건은 공장 밖 위험성을 드러냈다. 정부·지자체가 책임지는 화학물질사고 관리가 꾸준히 요구됐다.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기사 전국 공장 안전 프로젝트 '우리공장이 달라졌어요' 페이지 갈무리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기사 전국 공장 안전 프로젝트 '우리공장이 달라졌어요' 페이지 갈무리

 

사업의 핵심 원동력은 ‘기획단’이었다. ‘화학사고 대비 전국네트워크 기획단’이 정식 명칭으로 환경부·지자체 공무원, 시민사회단체, 화학물질 전문가 등 10여명으로 구성돼 각 지자체에 ‘노하우’를 전수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 기자가 이들을 “어벤져스”라 부른 이유는 이들의 열성 때문이다. 장 기자는 “정부 사업 관련 회의를 많이 참관해봤지만 이렇게 모두가 진정성을 가지고 참여하는 재밌는 회의는 드물었다. 회의 발언 중 버릴 말이 하나도 없었고, 한 파주시 공무원은 다른 자리로 인사 발령이 난 뒤에도 책임감으로 계속 기획단 회의에 참여할 정도”라 말했다.

장 기자는 사업의 성패 여부도 지자체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기업들의 ‘화학사고관리위원회’ 참여를 설득하는 역할이 막중하다. 자체 사고대응 역량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중소기업, 미등록사업장의 참여도 필수적이다. 장 기자는 “시범 사업을 하고 있는 수원·청주·파주에서 ‘기업을 위해서라도 사고 관리를 해야 한다’거나 ‘사고 발생 시 지자체가 대응을 지원할 수 있다’며 공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한 공무원들을 봤다”고 말했다.

장 기자는 또 “조직과 예산이란 구조적 힘도 중요하다”며 “현재 화학사고를 담당하는 조직을 갖춘 지자체가 매우 드문 상황에서 공무원의 의지만 강조할 수 없다.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가 나설 부분”이라 말했다.

보도 내용을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엔 뉴콘텐츠팀의 공이 컸다. 화학물질사고는 구체적으로 다룰수록 전문 내용과 수치가 많아져 내용 전달에 한계가 있었다. 이아름 기획자와 김유진 디자이너는 국가 산업단지 현황, 사고대비물질 취급공장 7909개 현황, 화학사고 이력, 이번 사업단 보고서 등 원자료를 끌어모아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 위주로 재가공해 읽기 쉽게 편집했다. 그 결과 ‘우리 동네 현황’으로 모아졌고, 229개 지자체의 사고대비물질 취급 지수를 전수 파악했다. 환경부가 추린 60개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자료다.

이 기획자는 “일반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이 사업이 힘을 얻을 수 있으니, 관심을 독려하고 싶었다”고 의도를 밝혔다. 김 디자이너는 “어쩔 수 없이 (지역을) 위험군, 보통군으로 나누게 됐지만 위험군 자체가 나쁜 게 아니다. 공장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관리가 필요하다’는 데 방점을 찍으려 노력했다”며 “완벽하게 안전한 동네는 없다. 탱크로리 사고 등 화학물질유출 사고는 어느 동네에서나 일어날 수 있기에 다양한 현황 자료를 시각화하려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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