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맹’보다 위험한 자들은 누구인가  
‘사노맹’보다 위험한 자들은 누구인가  
[기자수첩]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사노맹’ 논란을 바라보며 

“사회주의의 진정한 목적은 인류 발전의 약탈적 관계를 극복하고 그것을 넘어 전진하는 것이다. … 자본주의 경제에서 생산은 소비가 아니라 이윤을 위해 수행된다. 무제한의 경쟁은 노동의 거대한 낭비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식의 불구화를 초래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49년 쓴 ‘왜 사회주의인가’(why socialism?)라는 원고의 한 대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인슈타인’ 맞다. 아인슈타인처럼, 20세기를 살아온 지식인에게 사회주의는 피할 수 없는 주제였다. 더욱이 한국은 군부독재가 30여 년간 지속했다. 청년학생과 지식인들은 지독한 사회모순을 마주해야만 했다. 

1971년 4월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는 선거유세에서 이렇게 외쳤다. “오늘날 이 썩은 정치, 이것은 공산당을 키워 주는 온상이오. 오늘날 이 몇 사람을 잘살게 하는 특권 경제, 공산주의는 이런 특권 경제 속에서 자라나요. 따라서 박(정희) 정권은 말로는 반공하지만 그 하는 정치는 오히려 공산당을 기르는 반공을 하고 있어요.”

정치인 김대중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게 30년 전인 1989년 11월12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마침내 이 땅에 실제로 등장했다’며 ‘부르주아 지배체제를 사회주의 혁명의 불길로 살라버리자’는 내용의 유인물을 뿌렸다. 

1991년 6월2일 부산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학생 결의대회를 마치고 교문밖으로 나온 사노맹 대형깃발을 한 노동자가 흔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91년 6월2일 부산대에서 열린 전국노동자학생 결의대회를 마치고 교문밖으로 나온 사노맹 대형깃발을 한 노동자가 흔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년 뒤인 1990년 10월30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88년 10월 백태웅(가명 이정로), 박기평(가명 박노해) 등이 무장봉기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을 지도할 노동자당 건설을 목표로 사노맹이라는 “1600여 명에 달하는 전국 규모의 조직”을 결성했다고 발표했다. 

동아일보는 다음날인 10월31일자 사설에서 “인명 살상을 불사하는 무장투쟁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용서될 수 없다”며 사노맹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들은 왜 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그런 극단적 모험주의에 유혹·함몰되었는지를 깊이 파고들어 생각할 일이다. 지금의 기성 정치 경제 엘리트들이 벌이는 작태를 보면 그것의 치유를 위해 극약을 쓸 수밖에 없는 처방을 젊은이 나름대로 마련해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최소한 이 극좌 모험주의자들은 그 행동 동기가 사리사욕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노동해방문학’에 소개된 사노맹의 주요 투쟁강령은 △양심수 전면 석방과 수배해제 △독점재벌의 비업무용 토지몰수로 임대주택 대량 건설 △각 계급·계층 대표로 ‘물가관리위원회’ 설치 △농축산물 수입개방 저지 △국가보안법·노동악법 철폐 △노태우정권 타도 및 임시민주정부 수립 △광주학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 등이었다. 

지금은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가 된 백태웅씨는 지난 17일자 한겨레 지면에서 “삼십년 전의 일을 가지고 법무장관 후보를 공격하는 것도 우습지만, 철 지난 색깔론을 들이대는 게 한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안기부에서 고문으로 조작했던 (사노맹) 수사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대로 옮겨서 주장하고 있다. 국가를 전복하려고 했다는데 우리가 그때 전복하려고 했던 것은 군사쿠데타로 광주항쟁을 짓밟고 들어선 독재정권이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그러면서 백 교수는 “학생들과 노동자 등 모든 구성원들이 많은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우리 사회 민주주의와 변화를 이뤄왔다”고 말했다. 최근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는 사노맹과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27년 전 사회주의과학원에서의 활동을 가리켜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20대 청년 조국이 부족하고 미흡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심장이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아픔과 같이 하고자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도 많은 고통과 시행착오를 겪어온 이들 중 한 명이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16일 조 후보자의 사노맹 관련 이력을 강조하며 “조국 후보자는 이석기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수많은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조 후보자는 과연 위험한 인물일까. 정말 위험한 인물은 시대의 모순에는 눈을 감고, 30년 전 안기부 감성은 잊지 못한 채, 철 지난 색깔론으로 우리 사회를 ‘사노맹이 있던 과거’로 되돌리려는 민주주의 ‘무임승차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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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8-18 16:17:42
조금 극단적이었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민주주의는 공짜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야차 2019-08-18 21:35:00
민주주의 좋아하고 자빠졌네. 사회주의가 뭐고 민주주의가 뭐고 독재가 뭐고 친일파가 뭔지 모르는 한심한 인간들

김태욱 2019-09-04 13:56:30
민주주의에 '자유'를 붙인 애들 보면 참 웃긴게 이승만으로부터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는 정권에 반하는 사람들의 말하는 자유마저 박탈했는데 그 거대한 정권들에 반기를 들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정착시킨 사람들이나 단체에 좌빨이라는 낙인을 찍고 못살게 군다는 거죠.
김영삼 전대통령 대에서 민주주의의 씨를 뿌리고 김대중 전대통령 대에서 싹을 틔워 노무현 전대통령 시기에 잘 가꿔 이제 열매를 수확하려나 했더니
이명박 전대통령 대에서 가지치기 한답시고 난도질을 하고 박근혜 전대통령 대에서는 뿌리까지 뽑아버릴 작정이었다.
시민들이 하나되어 촛불로 다시금 민주주의를 살리려는데 전 정부의 난도질에 앞장서 온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방해만 하고 앉아있네.
이제 그만 철 좀 드시길...